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5_李喆珪技手

오촌당숙 영찬 숙부님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10. 20.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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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찬(http://blog.daum.net/yclee) 숙부님이다. 내 조부(성구)님의 동생(용구) 할아버님의 둘째 아드님이다. 첫째 아드님 현찬 숙부님은 금촌역장으로 재직하시다 간질환으로 사십도 못사시고 어린 남매 세원이와 동원이를 남기고 내 어린시절 작고하셨다. 영찬 숙부님은 연대 법대를 나와 외환은행을 시작으로 몇일전 인천저축은행장으로 은퇴하셨다. 일가친척중 가장 가까운 오촌당숙 일가분이다.


지난주 회승지공 소종중일과 관련하여 저녁 10시 넘어서 영찬이 아저씨 댁으로 찾아가 뵈었다. 무려 2십수년만의 만남이었다. 멋쟁이 은행원의 모습으로 기억되던 영찬이 아저씨 모습도 이제 노년의 흔적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그때 영찬아저씨댁에 놓여 있던 작은할머니 당고모 사진들을 찍어왔다.


참고: http://blog.daum.net/enature/15851553

회승지공(澮承旨公)

  • 1 : 이 회 (李 澮忠義, 縣監左承旨), 부인: 전주 이씨 (全州 氏) 
  • 2 : 이덕기 (李德左承旨, 泰仁縣監), 부인: 청주 한씨(淸州 韓氏), 단산/단양이씨(丹山/丹陽李氏)
  • 3 : 이충연 (李沖淵安城郡守, 通訓大夫), 부인: 여흥 민씨 (驪興 閔氏), 파평윤씨(坡平尹氏); 이중연(淵)
  • 4 : 이창직 (李昌稷生員), 부인: 경주 최씨(烈女慶州 氏); 이흠직(稷)
  • 5 : 이수해 (李秀楷任實縣監, 通訓大夫兵馬節度使), 인 창원 황씨 (昌原 氏)이수열(烈)
  • 이사목공 (李思牧)

    • 6(澮承旨公),1 : 이사목 (李思牧, 仁同府使, 五衛將), 부인: 안동 권씨 (安東 權氏), 죽산 안씨 (竹山 安氏)제상(濟相)
    • 7(澮承旨公),2 : 이규첨 (李奎瞻, 連山郡守), 부인: 광산 김씨 (光山 金氏); 규동(奎東)
    • 8(澮承旨公),3 : 이원재 (李原載, 折衝將軍), 부인: 여흥 민씨 (驪興 閔氏); 이의재(載)
    • 9(澮承旨公),4 : 이원효 (李源孝, 僉正), 부인: 경주 정씨 (慶州 鄭氏); 이원기(李源基)
    • 10(澮承旨公),5 : 이승태 (李承台, 義禁府都事), 부인: 여주 이씨 (驪州 李氏), 청주 한씨 (淸州 韓氏)
    • 11(澮承旨公),6世 : 이명직 (李命稙), 부인: 전주 최씨 (全州 崔氏)
    • 12(澮承旨公),7 : 이철규 (李喆珪, 農商工部 金鑛局技手), 부인: 영일 정씨 (迎日 鄭氏), 밀양 박씨 (密陽 朴氏)
    • 13(澮承旨公),8 : 이성구 (李成求, 滿洲國 農林局 米穀檢査官), 부인: 순창 조씨 (淳昌 趙氏)
      • 14(澮承旨公),9 : 이성찬 (李盛, 初代 昌慶園 植物園長), 부인: 전주 이씨 (全州 氏)
        • 15(澮承旨公),10 : 이태원 (李泰遠, 眼科專門醫 醫學博士), 부인: 파평 윤씨 (坡平 尹氏, 醫學博士)

          • 16(澮承旨公),11 : 이은수 (李垠洙, 東鉉), 이주현
        • 15(澮承旨公),10 : 이창원 (李昌遠, 映畫學碩士), 부인: 파평 윤씨 (坡平 尹氏, 言語治療學博士)

          • 16(澮承旨公),11 : 이두수 (李杜洙, 杜烈), 이연수 (李沇洙)
        • 15(澮承旨公),10 : 이양원 (李良遠), 부군: 창녕 조씨(昌寧曺氏, 警察總警)
        • 15(澮承旨公),10 : 이상원 (李相遠, 環境工學博士 美聯邦에너지規制委 檢査官), 부인: 안동 김씨 (安東 金氏)

          • 16(澮承旨公),11 : 이경수 (李炅洙)
        • 15(澮承旨公),10 : 이정현 (李定炫, 英語學院長)
    • 13(澮承旨公),8 : 이용구 (李容求, 오리온,柳韓洋行勤務), 부인: 안동 권씨 (安東 權氏)
    • 14(澮承旨公),9 : 이현찬 (李賢,金村驛長), 부인: 전주 최씨 (全州 崔氏)
      • 15(澮承旨公),10 : 이세원 
      • 15(澮承旨公),10 : 이동원 (李東遠)

    • 14(澮承旨公),9 : 이영찬 (李榮仁川貯蓄銀行長), 부인: 성주 이씨 (星州 李氏)
      • 15(澮承旨公),10 : 이자원(滋遠) 
      • 15(澮承旨公),10 : 이제원(濟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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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부 이명직 선생이 1915년에 친일파에 살해당하시고 금광국 기수를 하시던 증조부 이철규 할아버지가 고종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다 1919년에 일제에 살해당하셨다. 그때 내 조부 성구 할아버지는 11살이셨고 동생분 용구 할아버지는 3살도 체 되지못했다. 비통스러운 가문의 역사다.


    용구 작은 할아버지의 부인이신 안동권씨 할머니다. 내 어린시절 부친이 하던 소사농장에서 자라서 가끔 역전에서 작은 할머니를 뵙곤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누가 나에게 작은 할머니며 현찬 영찬 오촌당숙이며 당고모와의 관계를 설명한 어른이 한명도 없었다. 내 주위에 어른들이 어른 구실을 못한 셈이다. 나도 그런 어른이 된건 아닌지 반성을 해본다. 


    큰집인 내 부친이 작은집인 현찬 영찬 아저씨네를 돌보았어야 했다. 평생 한량으로 내가 육성회비며 학비 하려고 애호박 팔아 벌어놓은 푼돈 조차 들고 서울 인사동 화가들과 잡기를 즐기러 가는 내 부친에게는 기대할수 없는 책임감이었을 뿐이다.  


    영찬 아저씨의 노고가 다복한 가정을 꾸미고 작은 할머니에게도 행복한 시절과 추억을 만들었다니 가슴이 먹먹 해온다.


    집안에서 가장 가까운 일가인데도 즐겁고 행복한 시절들을 함께 하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는게 무척 아쉽다.


    내 기억에 영찬 아저씨는 고시를 준비하던 멋쟁이 연대 법대생이었다. 그리고 세련된 외환은행 직원이었다. 지난주 소종중 관련하여 찾아뵙기전까지는 유학중 귀국하여 명동성당에서 올린 현찬이 아저씨 맏딸 세원이 결혼식 미사에 참석했을때 뵈었던게 마지막이었으니 무려 2십수년만의 만남이었다.  


    어찌하여 집안 내력과 집안 일가의 관계를 힘들게 힘들게 독학하여 공부해야만 했던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조상님과 후손에게 부끄러운 인간이 되지 않토록 남은 인생이나마 노력해야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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