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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김사복 관련 기사 - 굳모닝충청, 오마이뉴스

忍齋 黃薔 李相遠 2017. 9. 1.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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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김사복, "실마리 모두 풀렸다!" /2017.08.25

[굿모닝충청=서울 정문영 기자] 김사복 씨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 아들 김승필 씨가 아버지의 생전 모습이 담긴 여러 장의 사진을 공개한 데 이어, 당시 김사복 씨와 함께 일했다는 동료 직원들의 증언이 추가로 나온 것이다.

이로써 영화 속 주인공 김사복 씨에 대한 의혹의 실마리는 모두 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확인된 내용을 쟁점별로 재구성했다.

◇ 김승필 씨가 공개한 사진들

김사복 씨는 1970년대에서 1984년까지 주로 호텔 투숙객을 상대로 호텔택시 영업을 했다. 사진에는, 당시 카메라와 조명장치 등을 들고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과 함께 찍은 모습이 눈에 띈다. 외신 기자들과 함께 다녔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자료다.

영화에서는 개인택시가 등장하는데, 일반 승용차 모습의 호텔택시를 몰았다는 게 김승필 씨의 주장이다. 힌츠페터가 직접 촬영한 자료를 KBS가 <일요스페셜>을 통해 공개했던 <80년 5월-푸른 눈의 목격자>편의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차량도 검정색 세단이다. 바로 그 세단이 사진에서도 보인다.

◇ 힌츠페터 기자가 이용한 차량


힌츠페터 기자는 자신이 택시를 탔다고 밝힌 적은 없다. 그의 저서 <The Kwangju Uprising: Eyewitness>(광주 봉기)에서는 김사복 씨를 ‘Driver’ (운전자)라고만 표현했다. 그런데 김 씨가 운전한 챠랑은 택시가 아닌 최고급 검정 세단이었음이 확인됐다. 컬러도 영화에서처럼 연두색이 아닌 것이다. 힌츠페터의 다큐멘터리에서도 실제 검정색 세단이 등장한다.


◇ 추가 증언자들

1970년대에 김사복 씨와 가깝게 교류했던 두 사람을 찾았다. 당시 조선호텔에 근무했던 직원들인데, 이추열 씨와 이명구 씨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그때 외국 손님이나 바이어가 오면 모시고 가고 그랬던 분이다......도어맨들이 손님을 불러준다. 당시 3명이 있었는데, 김사복 씨의 매너가 제일 좋았고, 굉장히 책임감 있고 젠틀한 분이었다. 첫째 ‘김사복’이란 이름을 가진 다른 운전사는 없었다. 또 아들이 갖고 있는 사진이 모두 맞다.” (이추열 씨)


“당시 김사복 씨는 한 사람이었고. 외신기자가 조선호텔에 많이 투숙했다. 영어도 하고 일본어도 하고. (외국인들하고) 말이 통하니까.” (이명구 씨)

◇ 왜 조선호텔인가

결국 김사복 씨가 이 호텔에 상주하다시피 근무하며 영업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그때 조선호텔은 외신기자들의 집합소였다. 광주 취재를 위해 한국에 도착한 힌츠페터가 하루 묵은 곳이 바로 조선호텔이었던 셈이다. 이는 힌츠페터가 쓴 <The Kwangju Uprising: Eyewitness>라는 제목의 책에서도 확인된다.

"그날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김포에서 세관원들은 필름과 음향장비를 두고 시간을 끌며 연거푸 검색하던 때와는 달랐다. 밖에는 김사복이 우리를 기다렸다. 서로 인사한 뒤 우리는 서울 도심의 조선호텔로 내달렸다. 가는 도중에 김사복은 현 상황을 브리핑해주었다."

◇ 영화와 실제 간의 차이

① 김사복 씨는 연두색 개인택시가 아니라 호텔영업용 검정 세단을 몰았다.
② 꾀를 내어 가로채다시피 힌츠페터를 손님으로 태운 게 아니다.
③ 가족관계도 어린 딸이 아닌 아들 둘을 둔 점이 다르다.
④ 살림살이도 차량 3대를 가지고 있을 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⑤ 영화에서 가명처럼 묘사된 김사복이라는 이름은 실명이었다.
⑥ 영화와 실제가 일치하는 대목은 김사복 씨가 광주의 진실을 전하고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다. 이는 힌츠페터의 <80년 5월-푸른 눈의 목격자>편 다큐멘터리에서도 확인된다.


故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

"한 시간 정도를 달린 후에 우리는 우회 표시를 맞닥뜨렸다. 김사복은 이를 무시한 채 그대로 광주를 향해 내달렸다. 우리는 그렇게 쉬지 않고 나아갔다......광주에 이르는 마지막 몇 마일의 길이 가장 험난했다. 계엄사령관이 외신기자들의 광주행을 완강히 막으려 했다. 고민 끝에 김사복은 시골 농부에게 물었고, 우리는 다시 길을 찾아냈다.”

한편 본지 취재 결과,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영화에서는 힌츠페터가 광주에 한 번 간 것으로 나오지만 그의 회고록을 보면 두 차례 다녀온 것으로 나온다. 2000년 출판된 <The Kwangju Uprising: Eyewitness>를 보면, 택시운전사 김사복은 힌츠페터의 5월 23~27일 광주 2차 취재 때도 동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는 일본에서 돌아온 후, 서울에서 5월 23일 오전 10시 30분경 김사복과 함께 다시 광주로 향한다..."

또한 영화에서 김만섭이 몰았던 택시 모델은 기아 브리사다. 당시 택시 중에서 현대 포니만큼 흔했던 모델이었다. 그러나 힌츠페터는 회고록에서, 그가 탔던 자동차 브랜드를 '오펠'이라고 기록했다. 추정컨대, 힌츠페터가 탔던 자동차는 당시 국내에서 조립한 오펠의 세단 '새한 레코드'로 보인다. 2003년 <80년 5월-푸른 눈의 목격자>편 다큐멘터리의 영상 속에 등장한 사진(위 캡쳐 사진 참조)을 보면, 실제로 당시 GM코리아가 생산한 검정색 '새한 레코드(D형)'의 뒷 부분이라는 사실을 가늠해볼 수 있다.

정문영 기자 polo876@goodmorningc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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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제공된 김사복 관련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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