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8_黃薔(李相遠)

[변한 게 없는 한국]

忍齋 黃薔 李相遠 2018. 3. 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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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게 없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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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성당 어른들이 누구 집 아들딸이 상놈 집안이라 신학교 입학이 거절되었고 수녀회입회가 거절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도 신부나 수녀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느님 앞에 인간은 평등하다며 장애인을 차별하고 양반과 상놈을 가르는 종교의 모습을 어린 시절에 보았습니다. 그 꼬락서니는 개신교나 불교도 대충 대동소이한 것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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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을 입학하던 때는 형들과 누나가 다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내 부친은 수입이 전혀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곤궁한 형편에 대학 구경을 하려고 대학수준을 많이 낮추어 지방농대를 장학금과 기숙사비를 지원받으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쪽으로 먼 집안 아저씨가 그 지방대학이 소재한 제지공장에 전무를 해서 한번은 고속버스비나 기차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그 아저씨 공장 내려가는 차를 얻어타고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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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내내 그 아저씨는 장황한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형이 서울의대를 다니고 하면 동생인 너희 형제들이 학교 같지도 않은 똥통 대학을 다닐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공돌이로 일을 해서 서울의대 다니는 형을 도와주어야지 꼴에 대학을 다니겠다고 그러냐를 몇 시간째 들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옳으신 말씀이라고 맞장구를 쳐주다가 마음에 거슬려서 하지 말아야 할 말대꾸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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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가 죽일 놈이긴 하지만 고위공무원들이 아파트 몇 채씩 해먹은 공무원들을 숙정시켰으면 자숙하고 살아가야지 대기업 임원으로 거들먹거리고 산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분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로 잘나가던 고위공무원에서 쫓겨 난 분인데 S자 들어가는 그룹의 계열사 시골 제지공장의 임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눈에는 서울의대 정도는 되어야 공부를 하는 것이지 아무리 장학생이라도 지방농대는 다니지 말아야 하는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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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에 책 보따리며 혼자서 짊어지고 가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짐과 함께 그 지방 외곽 허허벌판에 내 동댕이 처지고 말았습니다. 같은 인간을 공부 좀 잘하고 못하고로 차별하고, 돈이 좀 있고 없고로 차별하고, 빽이 좀 있고 없고로 차별하는 세상임을 알게 했고 방정 맞은 입을 잘못 놀리면 이런 비참한 꼴을 당한다는 걸 알았지만 난 달걀로 바위를 치듯 #살인마전두환 에 대들었고 5.18 유공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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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간을 차별하는 못된 놈들을 혼내주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도 하고 유학도 가고 아이비리그도 다녀보고 살아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내 인생을 돌아보니 내가 변화시킨 것도 없고 또 변화된 것도 없습니다. 인간을 있고 없고로 나누는 세상은 여전하고 여자는 말초나 자극하는 상품 정도로 취급받는 인식도 여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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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 쓸데없는 인권이네 한국이네 신경 쓰지 않았으면 당신은 더 출세했고 더 부유하고 윤택했을 거야."라는 내 각시의 원망 어린 푸념이 내 대갈빡을 후려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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