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7_芳園(李盛粲)

방원 선생 사망 경위서

忍齋 黃薔 李相遠 2018. 4. 24. 21:23
반응형

사망경위서 보충설명



이 보충설명서는 사망하신 제 부친 이성찬 선생의 사망 경위를 제 모친 이춘연 여사의 말씀을 들으며 보충하여 작성합니다.



이성찬 선생께서는 1927년 12월 5일 출생하셔서 경성원예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창경원식물원 원장으로 근무하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자진 참전하여 1950년 6·25전쟁 당시 화천전투에서 6사단의 일원으로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수류탄이 옆에서 폭발하여 전신에 파편상(좌복부 파편창과 좌배부 맹관 파편창)을 입고 폐가 손상되는 죽음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화천에서 부산통합병원까지 3일간에 걸쳐 후송되었습니다.



마침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Jutlandia)호가 참전하여 기적적으로 그 병원선에 입원하여 배와 등 그리고 폐에서 파편을 빼내고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하였습니다. 1953년 4월 6·25 전쟁 부상으로 인한 상이용사로 명예제대를 할 때까지 오랜 재생 환우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사회로 복귀하여 이춘연과 결혼은 하였으나 폐가 손상되어 정상인보다 기능이 감소한 상태로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없어 힘든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정상적인 노동 활동을 할 수 없어 경제적으로 가정을 돌볼 수 없어 부인 이춘연이 경제적으로 부군 이성찬을 돌보며 3남 2녀를 키우고 공부시켜 사회에 내보냈습니다. 지난 10여 년 전부터 부군 이성찬의 건강이 악화하여 이성찬의 병시중에 전념하다 올해 초 폐렴으로 인한 호흡 부전이 악화하여 요양원에 부군 이성찬을 모시고 결국 호흡 부전이 악화하여 2018년 4월 13일 금요일 오후 8시 11분, 인하대학교 병원 12층 내과 병동 2호실에서 지병으로 부군 이성찬 선생이 사망하셨습니다.



2018년 4월 24일

모친 이춘연의 말씀을 들으며 그 내용을 정리합니다.

셋째아들 이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