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여행스케치

['한국인 최초로 북극점을 밟았던 MBC 이용우 카메라 기자'의 북극점 도달 일기]

忍齋 黃薔 李相遠 2018. 5. 8.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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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한국인으로 북극점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제 영동고등학교 1회 선배님인 이용우 선생님이십니다. 1991년 11월 9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는 제4회 한국TV카메라기자상 수상작 시상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때 대상의 영예는 MBC가 6월에 방영하고 한국인 최초로 이용우 기자가 북극점을 밟은 "여기는 북극점 (방송제작부문)"이 차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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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중앙일보 동양방송 팀은 북극점을 정복하고자 험난한 북극탐험에 나섰지만 아쉽게도 북극점 도달에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탐험에 동행취재했던 홍성호 기자는 그 과정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1979년 중앙일보 중앙신서 포켓판 북극탐험이란 책으로 남겼습니다. 중앙일보 편집국장을 끝으로 은퇴한 홍성호 기자는 현재 미국 엘에이 북쪽 75마일 지점 테하차피 산중턱에 농장을 일구며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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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북극점 도달의 꿈은 1991년 5월 7일 문화방송의 이용우 카메라기자가 북극점을 정복하므로서 이루어 졌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뒤 이용우 기자도 문화방송에서 퇴직하여 설악산 내림천변에 농장을 일구며 은퇴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이용우 기자의 페이스북 담벼락에는 북극점 도달일기를 사진과 함께 올렸습니다. 그 내용을 이곳에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5월7일 이면 생각나는 추억...

"여기는 극북점"

태초에 주어졌던 대로 가장 고요하고 가장 깨끗한 생명력을 쫒아 한없이 열려 있고 끝없이 침묵하는 공간 북극! 
숱한 탐험가들의 발목을 잡아 영원한 잠에 취하게 만든 공포의 빙원 북극!
1827년 영국 윌리암 패리가 첫 도전장을 낸 이래 수많은 탐험가의 모험심을 자극한 북극점.
인류 탐험사상 최대의 비극으로 영국 프랭클린 탐험대 1백명 넘는 전 대원이 망망대해 북극해 얼음판에서 생죽음 한 것은 혹한 북극 대자연의 험난함을 한마디로 설명해 주는 것이다.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가 1909년 9개의 발가락을 잘라 내며 7전8기 끝에 인류사상 최초로 북극점을 밟은 뒤로 1991년 현재 북극점 탐험에 성공한 팀은 18개 팀, 우리까지 9개국 뿐이다.

혹독한 북극권의 끝없는 빙원 위 길 없는 길 가는 데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으로 돌아 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있을 리 없다. 한국등산학교 정규반, 동계반(冬季班) 과정을 거치며 설악산 동계훈련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혹한의 북극권 대자연을 대하기에는 한참 멀었다는 생각 뿐이다. 여러가지로 부족한 상태에서 지구 최대의 오지를 가는 것에 호기심과 함께 중압감이 느껴지지만 북극탐험대에 동행하게된 인연은 최고의 행운이요 무한한 영광이다.

1991.2월 기계적인 도시, 여의도를 벗어나 강변길을 따라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은 이날 따라 유난히 다감하게 느껴지는 것이 북극의 냉기가 어느새 가슴속에 들어 온 탓이리라.긴 비행 끝에 밴쿠버에 도착 며칠 묶으며부족한 장비 식량등을 보충하고 다시 비행기로 베이스캠프인 레셀루트로.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본 북극의 장엄한 山河는 끝없는 백색 뿐이다. 우리 일행을 실은 비행기는 카나다 북쪽 섬 레설루트(Resolute)공항에 착륙한다. 
트랩에서 내려 대합실로 걸어 오는 짧은 거리에서
난생처음 맛 보는 북극의 바람 역시 듣던대로 무지하게 차겁다. 
앞 사람이 대합실로 들어 가려고 문을 여는 데 온몸이 오그라들 것같은 냉기에 그 짧은 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강한 블리자드를 정면으로 맞으면 숨도 쉬기 힘들다. 말로만 듣던 북극권 예사롭지 않음을 실감한다.

우리가 묵을 예정인 인도 출신 베젤씨의 집으로 가는 도중 혹한에 자동차도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조금 가다가 멈추고, 조금 가다가 멈추곤 한다. 차안에 앉아 있는데 발 또한 무지하게 시렵다. 영하 40도. 블라자드가 몰아치면 체감온도는 영하 70여도가 된단다. 서울서 입고온 옷차림으로는 단 일분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은 살인적인 추위다.

이곳 레설루트의 천문기상대에서 일하는 밥(BOB)이란 카나다 친구는 여기서 옷을 벗고 15분가량 서있으면 곧 바로 동태가 된다고 은근히 겁을 주며 너스레를 떤다.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긴장되고 조심스럽다. 
레설루트 베이스캠프에서 일주일 정도 현지 적응훈련을 하고 3월 8일이면 본격적으로 북극점 탐험을 향한 본 여정이 시작될 예정이다.

도착한 다음 날 레설루트 마을 야경에 현지 적응 훈련겸 탐색 정찰하러 나간다. 망망대해 빙원에 처음으로 내딛는 일이고 야간이라 길을 잃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북극은 차갑지만 깨끗하고 조용해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북극 적응훈련>
3월 4일

대원들 첫 훈련에 나선다. 역시 바람이 세차다. 
20분 정도 지나자 지니고 있던 카메라가 얼어 붙는다. 이리저리 아무리 해 봐야 소용없다. 블리자드가 몰아치는 혹한의 빙원 위를 걷는 대원들의 모습은 마치 神 앞에 다가가는 행위라도 되는양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과 급한 마음에 북극권에 서 있다는 사실을 순간 망각하고 장갑을 벗어 버린다. 
그러자 바로 손이 얼어 옴을 느낀다. 통증이 온다. 벗어놓은 장갑은 순식간 강한 블리자드에 어디론지 날려 찾을 수도 없다. 손이 곳바로 꿋꿋하게 얼고 있지 않은가? 공포감이 밀려온다. 재빨리 손을 녹이려고 가슴 속에 넣으려 하는데 손이 곱아 겉옷 자크를 여는데 어찌나 몸이 말을 안듣고 열기 힘든지 순간 공포감이 엄습한다.

세차게 몰아 치는 눈보라로 방향 감각까지 잃었다. 블리자드에 바로 코앞 한치 앞조차 보이질 않는다. 어디가 어딘지....... 사방은 온통 흰색의 빙원 뿐, 도무지 방향을 알 수가 없다. 망망의 빙원 위! 이래서 조난사고로 이어 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얼핏 스친다. 겁이 덜컥 났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미미하고 허약한 존재인가.

모든 대원들이 방금전까지 같이 있었으니 잠간사이 멀리는 못갔을 거고 분명 근처에 있었을텐데 블리자드가 몰아쳐 한치 앞이 보이니 아무리 찾고 기다려 봐도 도무지 한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혹한 속의 대자연 앞에서 생명은 아주 간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두려움이 다가온다. 이제 시작인데, 다가올 앞날이 무거워 진다. 대오를 이탈 혼자 떨어져 두려움으로 헤매고 있는 데, 무슨 소리가 바람소리 사이로 들린다. 천만다행 스노우모빌을 탄 고정남 단장이 옆에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을마나 반갑고 고맙던지...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잠간 혼자 헤맨 10여분 남짓한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것도 시간이 지나서였다. 
사람이 거주하는 비교적 안전한 베이스켐프에서 한번의 죽음이 스쳐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3월 6일

내일 새벽이면 모든 준비를 끝내고 북극점을 향한 첫 날이다. 이제 본격적인 출발이 몇 시간 남지 않았기에 대원들은 잠을 설치 가며 아직도 마지막 짐을 꾸리느라 여념이 없다.

외국팀의 경우 탐험대원들이 직접 짐을 꾸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한다. 모든 일은 베이스캠프 매니저가 맡고, 대원들은 훈련에만 전념하는데 우리는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식량담당 최종렬 대원은 출발도 하기 전에 훈련을 하느라, 짐을 꾸리느라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북극탐험 혀지 전문가인 베젤씨가 최종렬 대원에게 오늘만큼은 푹 쉬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3월 7일 새벽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래야 할 수도 없는 출발하는 날이다. 새벽 4시에 기상하여 대충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모두가 부산하게 움직인다.

자동차에 많은 짐들을 챙겨 비행장에 도착해서 경비행기로 갈아 타며 막 출발하려는 그때 최대원이 "어!" 하며 멈칫한다. 파일 자켓을 잊어 버리고 그냥 왔다고 한다. 모두가 난감했지만 서로 어떤 불평도 어떤 투정도 쉽게 할 수 없는 냉엄한 상황.
북극의 냉혹한 추위 앞에 나서는데 없어서는 안될 결정적으로 중요한 방한 옷을 두고 온 것이다. 말 그대로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총을 놓고 온 것과 다름 없다. 출발하기 전 날까지 잠도 못자고, 이런저런 잔일을 했던 터라 어쩌면 예정되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식량과 장비들, 그중 어느 것 하나만 빠뜨려도 끝장이다. 북극 차가운 벌판은 인간의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경비행기에 몸을 싣고 끝없는 눈밭 위를 다섯 시간 정도 비행하여 일행은 출발 지점인 북위 83도 5분 워드헌트 섬 어름판 위에 조심스럽게 착륙한다. 여기서부터 우리들의 북극점을 향한 혹독한 여정은 시작이다. 몸 놀림도 바빠진다. 대원들의 표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이리 저리 뛰느라 얼굴이 얼어 오는 것도 잊는다. 숨도 턱턱 막힌다.오라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건만 대원들은 이제 모든 운명을 자신과 대자연 앞에 떠맡기며 북극점을 길 없는 길 북극해 얼음판을 걸으려 하는 것이다.

탐험대의 첫 위기, 허영호 탐험대장 부상

대원들이 출발한 후 10일 간 쾌조의 행군.베이스캠프와 정기적으로 약속된 무전교신 두절 !
통신이 없으니 베이스 켐프에서는 대원들이 바닷물속에 빠졌는지, 곰의 습격을 당했는지, 블리자드에 쓸려 나갔는지 조바심에 별의별 공상에 방정맞은 생각을 다하게 된다.

3월 17일 저녁에야 드디어 대원들로부터 무전이 연락이 됐다. 대원들은 쾌조의 속도로 얼음덩어리의 연속으로 힘든 구간 난빙대를 무사히 통과했다.

3월 중순을 지나며 어느덧 북극은 백야의 시기로 접어든다. 24시간 내내 벌건 대낮뿐이다.

연일 몰아치는 블리자드 때문에 생리 현상까지도 사흘간 참았다. 혹독한 추위에 맨 엉덩이를 내미는 일조차 참기 어려운 고역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목욕을 해본 지도 한 달이 되어 간다. 이를 못 닦아 몹시 거북하지만 그런 고통쯤은 여기서는 사치다.

4월 14일 
쾌조의 행진을 하던 탐험대에 문제가 발생한다. 유레카(ureka-캐나다의 기상 관측대 & 탐험대의 중간 통신기지) 의 신정섭 대원이 베이스캠프에 긴급 환자가 발생했다고 무전. 처음에는 무전기 소리가 희미해서 무슨 말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베이스 켐프 모두가 비상이다. 다급히 경비행기를 전세내고 베이스에 있던 대원으로 교체 투입할 만반의 준비 한 채 대원들 쪽으로 향한다.

5시간 가량의 지리한 비행끝에 경비행기는 대원들이 있는 장소에 도착한다. 그러나 빙질이 좋지 않아 비행기는 상공을 빙빙 돌기만 할 뿐 얼른 내려앉지를 못한다. 한참을 선회하다 겨우 착륙한 곳은 대원들로부터 2km가량 떨어진 곳이다.

허영호 대장은 안보이고 최종렬, 최종인 두 대원이 무언가를 침낭으로 덮은체 썰매를 힘겹게 끌며 오고 있다.
중화상을 입은 허대장이 썰매에 실려 끌려 오고 있는 것이다. 차가운 얼음판에서 화상을 입다니...ㅠ

종인이가 텐트 안에서 버너에 끓고 있는 물을 순간의 실수로 쏟았단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허영호 대장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종인이는 죄책감에 어쩔줄 모르고 서있고.
엉덩이와 왼쪽 발 전체에 눈으로 보기에 처참할 만큼 물집이 부풀어 올라 있다. 최종열대원은 그때 천만다행으로 텐트 밖에서 볼 일을 보고 있었다. 최종렬 대원이 허대장을 붙들고 흐느낀다. 이탐험을 해 10여년을 같이 준비했는데.......

대원들사이에서 묘한 긴장과 심리적 갈등이 흐른다. 허대장이 컨디션이 좋지 않은 정재환대원에게 "죽어도 갈 수 있느냐"고 물어 보자 정대원은 "죽어도 걸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최종렬 대원은 갑자기 새로운 대원으로 교체되면 적응하는 데 시간을 빼앗기고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5월 초까지 북극점을 밟지 못하면 얼음이 녹아 빙판이 갈라지게 되면 철수도 못하고 영원히 얼음 대륙의 미아로 떠돌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허대장은 신정섭 정재환과 투입을 최종 결정한다.

그리고 대원이 교체된 지 이틀 후 최종렬 대원은 다시 1인용 텐트를 준비해 달라고 베이스 켐프에 요청한다. 여차하면 혼자라도 가겠다는 심산이다.스키에 익숙치 못한 정재환 대원의 발목이 부러졌고, 벌건 살이 드러나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한것이다.

4월 26일

허대장에 이어 정재환 대원이 2차로 철수하고 북극의 허허 벌판에는 최종렬, 신정섭 두 대원과 나 세사람 뿐이다. 
동계 훈련 때 무릎에 이상이 생긴 것이 마음 한구석에 걸린다. 오래 걸으면 무릎 통증이 재발 되지나 않을까 .여기까지 왔는데 오도 가도 못하고 주저 앉을까 심히 걱정된다.

"제발 무릎만 성해다오." 간절하게 기도한다.

걷는 것도 功德이라는데 즐거운 마음, 修行하는 마음으로 걷자. "죽지 않으면 간다." 최종렬 대원과 함께 굳게 손을 잡는다.

4월 27일

6시간쯤 썰매를 끌었을때 배에 힘이 쭉 빠진다. 썰매줄이 배에 힘을 가할 때마다 숨이 헉헉거린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일로 몸의 이상함이 느껴진다. 신정섭 대원도 쓰러질 듯 말듯 힘없이 걷고 있다.

온몸이 떨리고 손 전체가 얼어 온다. 몸 전체가 그 야말로 의지할 곳 없는 얼음판 위에서 식어 가는 느낌이다. 이런 일은 난생 처음.장갑을 벗고 손을 비벼 보지만 소용이 없다. 점점 더 차가워질 뿐이다. 최종렬 대원이 내 손을 자기 품속에 넣어 본다. 별 효과가 없다. 몸의 상태가 상당히 위험하다.

갈 길이 바쁜데....... 대원들에 방해나 되지 않을까 미안한 생각에 쉬지 말고 그냥 가자고 억지 주장을 하자 최종렬 대원은 아무리 급해도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고 판단 텐트를 치고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한다. 당연 그의 판단이 현명하고정확한 것이었다.저체온증(Hypothermia)에 걸리면 의지할 곳 없는 얼음판 위에서 곧 죽음을 맞는 것 뿐이다.

4월 말부터 얼음이 갈라지고 날이 더워지면 오도 가도 못 하고 의지할 없는 망망북극어름판 위에서 돌아 갈 수 없는 길 모든 게 끝장이다.

속옷 깊숙이까지 성애가 가득한 데 준비해간 화장실 청소용 솔로 털어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몸에 난 열이 식어 그대로 몸 속에서 얼어 붙는데, 옷을 대충 터는둥 마는둥 그대로 침낭에 들어 가면 잠자리에 한동안 온몸이 으스스해진다.

최종렬 대원이 바늘로 손끝을 따 주고는, 비장하고 있던 사향을 입에 넣어 준다. 두어 시간 쯤 잠을 자는데 갑자기 입에 침이 가득 고이며 구토를 하기 시작한다. 조금 속이 편해지더니 몹시 갈증이 난다. 이상하게도 갈증이 나는데도 목으로는 한모금 물조차 넘어가질 않는다. 몸이 이쯤 되니 우선 살고 볼 일이다.

4월 28일

한숨 잠을 자고 깨어보니 기운이 하나도 없고, 음식마저 넘어가질 않는다. 이런 상태로 혹한 속을 걸을 생각을 하니 아득하다. 그렇다고 얼음판에 마냥 누워만 있을 수도 없는 일. 이때 최종렬대원은 베이스켐프에 연락 비상조치를 한뒤 망망대해 어름판 위에 떼어 놓고 갈 생각까지 했었다고...ㅠ.
간신히 물만 먹고 출발한다. 한 시간 후, 끓는 물에 먹다 남은 밥을 말아 만든 미음을 두어 모금 마신다.

짐이 무거워 뺄만한 것은 다 태워 버리고 아내가 챙겨준 두어 장의 육포를 배낭 속에 비상용으로 남겨 두었는데 망망대해에서 그것이 이렇게 요긴한 생명줄일 줄은 몰랐다.

북위 88도를 지나면서부터 여우 발자국이 보이기 시작한다. 반갑고 신기하다. 먹을 것도 보이지 않는 눈밭에 여우가 있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 여우가 있다는 것은 곰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노르웨이 팀은 작년(1990)에 88도 지점에서 곰을 만나 싸운 적이 있다. 가지고 간 총조차 짐이 되어 버리자고 했던 최 대원도 총만은 안 버린 것을 다행스러워한다.

여기서 식량, 장비, 배터리 등 줄일 수 있는 짐은 다 줄이고 최소한의 것만 휴대한 채 극점까지 신속히 도달하기로 작전을 바꾸고 연일 몸이 부서져라 걷는다. 보통 2시간 정도 행군하고 5분간 휴식을 취하는데, 휴식을 오래하고 싶어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몸이 식어 버리니 쉬는 것이 추위의 공포에
더 견딜 수가 없다. 선택의 여지 없이 이래저래 얼어 죽지 않으려면 걸어야만 하는 운명이다.

무선 교신을 위해서는 번거로운 준비를 해야하기야 시간에 쫓긴 우리는 베이스에 무전 연락도 끊는다. 정기적으로 연락을 안하면 베이스에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무척 걱정할 거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먹은 게 없어 힘도 없는데 갑자기 구토가 난다. 나는 얼음 위에 엎어져 구토를 한다.토하면서도 최종렬 대원에게 눈밭에 엎어져 토하는 장면을 사진에 담으라고 카메라를 넘겨준다. 최 대원은 "죽는 마당에 토하는 사진은 찍어서 무얼하려고 ?"하고 퉁명스레 빈정댄다. 각오들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극한 상황에서도 그런 여유를 부려 보는 것이다.

미음과 물로 연명하며 조금밖에 안 되는 생명줄인 육포를 어린애들의 과자 아껴 먹듯 손톱 만큼씩 반찬 대신으로 아껴 먹는다.

막바지에 이르자 하루에 취침시간이 두어시간 정도나 될까? 우리는 잠조차 자는둥 마는둥 하루 20시간 이상 걸으며 강행군을 계속한다. 나와 신정섭 대원은 눕기만 하면 이내 곯아 떨어 지는데, 최대원은 두어 시간 자고 나면 먼저 일어나서 깨운다. 정신력이 정말 대단한 친구다.그도 피로에 지쳐 더 자고 싶겠지만 시간에 쫓기고 꼭 성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티는 것이다.

지친 탓인지 잠을 자고 일어나는 순간은 몸이 무거워 늘 일어나지질 않는다. 이제 세 사람 모두 빨리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마음 뿐이다. 모두 제 정신이 아니다. 삶이냐 죽음이냐 앞에서 초인적인 정신력도 나오는 듯하다.

스키를 신어 발 뒤꿈치가 몹시 아프고 배낭 무게에 짓눌려 다리가 마비되어 주저앉을 것만 같다. 차라리 죽으면 이런 고통도 없겠지... 죽음을 생각할 적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4월 29일

눈을 붙이고 일어나 보니 천만다행 다시 컨디션이 어지간히 좋아 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텐트에서 수첩에 메모를 하려는데 내가 쓴 글씨가 보이질 않는다. 이중으로 보이거나 눈이 무지무지하게 따끔거리기만 할 뿐 조금도 읽을 수가 없다. 설맹증세가 온 것이다. 미칠 노릇이다. 글씨가 이중으로 보이다니...... 아직 할 일이 태산 같은데 눈이 망가지다니......

자고 일어나 다시 출발하기 전에 텐트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정성을 드린다.

" 두 다리만 성해다오."

눈이야 아프고 쓰라려도 다리만 성하면 다른 곳이 아무리 부러지고 으스러 져도 갈 수 있다는 각오와 계산이다.

사나흘 지나며 차츰 입맛이 돌아 왔다.최종렬 대원이 하나 남겨 두었던 김치찌개 다시다가 그렇게 입맛을 돋굴 수가 없다. 하느님이 따로 없다. 밥과 김치찌개가 꿀맛이다. 김치국물을 아껴 먹느라 되도록이면 양을 늘리려고 얼음을 많이 집어넣고 끓인다. 기운이 난다.

사경길 지나 마침내 북위 89도 통과

4월 30일

내일까지 89도를 통과하고 마지막 극점까지 4~5일 이내로 신속히 끝내기로 세 사람은 각오를 다진다. 5월 초순을 넘기기 시작하면 얼음이 갈라지고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시야가 가려지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이 위험해진다.

거친 얼음과 리드(빙원이 갈라지며 바닷물이 드러나는 현상, 또는 그런 곳)를 만날 때마다 중압감을 떨칠 수 없지만, 묘한 스릴도 맛본다.

어려운 고비일수록 기록을 해야겠는데 쉽지가 않다. 카메라에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잠간 사이에 대원들은 벌써 저만치 앞서 가 있다. 혹한의 행군하는 도중에 카메라 배터리를 끼우는 시간은 상당히 길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배터리를 미리 장착하여 차가운 곳에 노출시켜 버리면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바지속 맨살에 이 배터리가 닿도록 하여 보온을 해야만 한다.

북위 88도 54분을 통과할 즈음, 착시현상인지 뭔지 모르게 태양이 눈밭 위에 3개로 보이는 신기한 장면이 나타난다. 하필이면 이때 또 다시 배터리가 얼어 붙을 건 뭐냐ㅠ. 
시종 극지에서 순조로운 일이 하나도 없다.

5월 1일

드디어 우리는 북위 89도를 통과. 
최 대원이 가급적이면 극점 도착일을 어린이 날에 맞추어 자라나는 세대에게 꿈과 용기를 주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날씨가 흐려 앞이 보이질 않아 마음대로 전진할 수가 없다.

오늘도 눈보라가 세차게 불어 텐트가 날아갈 듯하다. 그렇다고 언제 좋아질지도 모를 날씨를 탓하며 마냥 텐트 속에서 기다릴 수도 없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화이트 아웃에 高低를 분간하기 어려워 툭하면 넘어진다. 색안경도 깨졌고 다리의 인대마저 늘어났다. 이때 다시 끝없이 갈라져 길을 막는 바닷물이 눈 앞에 시퍼렇게 넘실거린다.

발밑은 수천 미터 깊이의 북극해! 깊이를 알 수 없다. 아스햄머에 줄을 연결, 빙빙 돌려서 건너편에 걸어놓고 얼음 조각에 몸을 의지한 채 갈라진 바다를 건너려고 사력을 다한다. 신정섭 대원이 깨진 얼음조각 위의 떠있는 최종렬 대원에게 "형 빠지면 어떡해?" 하자 
최종렬 대원은 "죽으면 되지" 하며 퉁명스레 내뱉는다.

나는 인정 없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신정섭 대원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마당에 찍어서 뭐하느냐는 눈치로 짜증스럽게 바라 보는듯 .
극한 피로 앞에 모두가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서로 서로를 배려하지 않으면 안된다지만 나로서는 무엇보다 내 역할에 충실할 수 밖에 것이다 .. 
이윽고 최종렬 대원이 얼음 조각을 타고 먼저 건너는데 성공. 두 번째로 신정섭 대원이 건너고. 그들 반대편 쪽으로 모두 건너는 것을 모두 기록한 뒤 마지막으로 내가 건넌다.망망대해 바다위의 얼음 조각배를 타고 갈라진 바다위를 건너는 목숨건 도하 작전 성공. 오랜만에 기념 사진을 찍어 본다.

겨우 고비를 넘기고 얼마쯤 더 가자 다시 갈라졌든 바닷물이 얇게 얼은 신빙대가 앞을 가로막는다. 걸을 때마다 힘주는 발 쪽의 얼음이 깨질 듯 말듯 출렁출렁거리며 스폰찌위를 걷듯이 발이 푹푹 들어간다. 망망대해의 얇게 얼은 얼음 위를 걷는 발걸음은 정말로 아슬아슬하다. 
아니나 를까 조심스럽게 앞장 서던 최 대원이 순간적으로 "엇!" 하고 얼음을 가르며 천길 바닷물 속으로 쑥 들어간다. 스키와 썰매가 몸에 매달려 있으니 천하에 용 빼는 장사라도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때 마침 바로 뒤에서 가던 나는 반사적으로 최대원의 허리끈을 휘어 잡고 뒤로 넘어지면서 물속으로 미끄러지는 최대원을 일단 확보하고 붙잡는다. 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는 차가운 바닷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내가 딛고 있던 얼음도 조금씩 부서지며 물속으로 들어 가고 있다. 모든 게 순간의 일이다. 정섭이 다가와 합세하여 장갑을 벗어던지고 스키와 배낭을 벗겨주며 위기의 순간과 사투한다. 몸이 바닷물에 젖어 세사람 모두 쩔쩔매며 얼굴이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다. 혹한의 망망대해....... 바닷물에 젖어 온몸이 저려 오는데...

옷이 젖어 쩔쩔매는 최대원이 옷을 갈아 입는데 도와 주지 않고 인정 머리 없게도 그가 온몸을 떨며 추워하는 모습에 카메라를 다시 들이댔다. 최대원의 옷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물에 젖어 피부가 갈라지는 듯한 추위에 젖은 신발과 젖은 옷을 입고 걷는 고통, 이 모습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최대원은 '죽더라고 가야지' 하며 들릴 듯 말듯 혼잣말로 읊조린다. 정말 최종렬은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 탐험가다.

북극점을 향한 마지막 발걸음 
5월 4일

이제 북극점이 멀지 않았다. 89도 30분을 통과할 무렵 기온도 영하10여도로 제법 포근하고 이제껏 난빙과 리드, 블리자드가 괴롭혀 왔던 것과는 반대로 바람 한점 없이 마치 북극의 여신이 우리를 반기듯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리만치 아름답고 환상적인 백설의 공간이 눈앞에 긑없이 펼쳐지고 있다. 태양의 역광속에서 은빛처럼 빛나는 빙원의 장엄함! 
카메라를 들이 대고 또 들이댄다. 여전히 최대원은 환상이고 아름다움이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듯 앞만 보고 걸어간다.

5월 5일

예정대로라면 오늘 어린이 날을 기념해 북극점을 밟기로 했다. 그러나 혹독한 북극의 자연은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눈이 바늘로 찌르는 듯 따갑고 눈물이 자꾸 나와 앞을 보기가 어렵다. 말로만 듣던 설맹증이 심하게도 온 것이다. 게다가 오늘 따라 날씨는 음산한데, 전에 없이 불길한 예감을 주며 소름끼치고 내키지 않은 리드가 다시 나타난다. 어름이 혹시라도 깨질까 두려움에 건너고 싶은 마음이 없어 진다. 극점에 까워지면 가까워 질수록 더 조심스러워진다.저 얇은 얼음판에 빠지면 세 사람 모두 헤어날 길이 없다. 그렇다고 시간이 없는데 한없이 우회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걷는다는 생각도 버리고 그냥 걸어가야 할 뿐이다. 오직 無心이다.

앞서가는 최대원에게 조심하라고 말을 건네 본다. 아슬아슬하다.

가면 갈 수록 발바닥이 몹시 저려 걸음걸음마다 통증이 더욱 껴 온다. 무릎 인대가 늘어나 걷는데 여간 고통스럽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 고통은 문제가 아니다. 가느냐 주저앉느냐만이 문제다. 설사 눈은 쓰라려도 두 다리 만큼은 성해야 걸을 수 있으니 여기까지 와서 주져 앉을 수는 없다.
북극점에 가까와질수록 그런 불안은 조바심으로 치닫는다. 앞장서서 걷는 최종렬 대원은 얼음상태가 위험할 때마다 뒤를 쳐다보며 조심하자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북극점을 향해서는 침도 함부로 뱉지 말자. 북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말자!" 세사람은 그렇게 기도와 정성을 드린다.

잠도 잊고 마지막 피치를 올린 지 며칠.

5월 6일

드디어 89도 50분을 넘어섰다. 하늘이 허락하고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오늘은 북극점에 도달할 수 있겠다. 이제는 걷는 것도 힘들고 지칠대로 지쳐있다.

"오늘만 참자"

날씨는 역시 흐리다. 4월 말부터 예상대로 연일 기상이 악조건이다. 정섭이는 발목이 까져서 시뻘건 살이 보이는 데 잘도 걸어간다. 그도 대단한 참을성이다. 앞장선 최대원도 설맹증으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 나는 눈이 따끔거려 5m 전방의 발디딜 곳을 미리 봐 놓고는 눈을 감고 걷기를 반복하며 전진한다. 정섭이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말듯 흐느적거리며 어렵게 전진한다.

5월7일!

더이상 전진할 곳이 없다.

북극점이다.!

마침내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좌표가 기어코 북극점을 가리키는 곳에 도착.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세 사람은 순간 말을 잊는다. 아무도 없는 白雪의 빙원 위에 무작정 엎드려 천지신명께 절을 한다.

"항상 경건한 마음을 갖자." 우리는 그렇게 정성스럽게 북극점을 밟고 있다. 이 순간 우리를 감싼 것은 감격이 아니라 두려움에 가까운 엄숙함이다.

태초에 주어졌던 대로 가장 고요하고 깨끗한 생명력을 좇아서 우리는 이곳 북극점에 온 것이다.

한없이 열려있고 끝없이 침묵하는 공간....... 북극!

탐험의 시대 이후 지구의 끝, 인간한계에 도전하려는 사나이들의 마지막 목표........ 북극점!

숱한 탐험가들의 발목을 잡아 영훤한 잠에 취하게 만든 공포의 빙원....... 북극!
감격의 북극점 도보 도달 
20여년 전부터 세계 여러나라의 탐험대에게 북극에 대한 정보와 장비를 빌려 주는 사업을 해온 북극탐험 전문가 베젤씨는 북극탐험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에게서 한결같이 변화된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그것은 혹독한 자연조건과 끝없이 밀려오는 고독과 죽음의 위협 앞에 인간의 세속적 가치는 도저히 설 자리가 없어지고 대빙원에 노출된 인간의 본 모습이 너무도 작고 작음을 몸으로 보았기 때문이리라.

섭씨 영하 30~40도(최대 영하 54도까지 내려간다). 체감온도 영하70도~에서 생존 한다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럽고 심지어 무모하기까지 하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그 절망스런 고통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리. 하지만 그런 고통을 이겨내고 방송 사상 처음으로 탐험대와 동행하며 도보로 북극점을 밟은 것이 보람있고 감사하다. 끝없는 빙원위에서 인간 한계에 맞서 싸우며, 의지할 곳 없는 망망한 눈밭에서 음식을 토하고, 물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을 때,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죽음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을 때, 힘을 주신 천지신명 모든 인연들께 감사드립니다.박채규 이성수 선배님.고정남 단장 허영호 최종렬 최종인 신정섭 정재환 대원들과 
도와 주신 모든 인연들 그리고 북극빙원 위에 있는 동안 내내 새가슴 졸이며 걱정해준 사랑하는 아내에게 감사한다.

 

관련사진을 소개합니다.


북극점 도달의 꿈은 1991년 5월 7일 문화방송의 이용우 카메라기자가 북극점을 정복하므로서 이루어 졌습니다.

장엄한 북극빙원

베이스켐프적응훈련


얼음 바다가 갈라진 현상. 지구와 달의 만유인력현상으로 갈라진것이라는데 정확히 모름

사람 수증기를 먹고 자란 성애 꽃밭

설맹으로 눈을 바늘로 찌르듯이 아파요.

바다가 갈라진 곳

허영호

베이스켐프에서 이누이트들의 이글루 체험

차디찬 빙원에서 구토. 술은 냄새도 않맡았음 .

바다가 갈라진곳 어름조각 타고 건너기

북극점도달.태극기

신빙대 정찰

난빙대

어름조각 타고 리드건넘

최종렬과 함께


휴식중

어름조각타고 북극바다 건너기

북극곰 방어용 소총

마의 난빙대

Exploration equipment










[북극점 정복한 오로라 탐험대 무사 귀환]

● 앵커: 지난 7일 북극점을 정복한 오로라 탐험대가 베이스캠프에 돌아왔습니다.
탐험대원들의 건강상태 그리고 북극점 도착 장면 등을 북극을 연결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정동영 특파원!
● 특파원: 네.
북극의 전진기지입니다.
● 앵커: 바람이 몹시 부는 것 같은데 지금 우리 탐험대원들이 모두 무사히 베이스캠프로 돌아 왔죠?
● 특파원: 네.
북극 날씨는 아주 변덕이 심합니다.

건너는 장면이 지금 카메라에 잡혀있는데...
● 기자: 쪼가리 유빙을 타고선 일단 물에 떠 있는 얼음을 건너뛰어 가지고 타가지고 그 로프를 갖고선 아이스암마가 있습니다.
저희들 텐트를 치기 위해선 아이스암마를 가져가는데 아이스암마에다 묶어 가지고선 빙빙 돌려가지고선 저쪽 건너편에 있는 얼음에다가 잘 이렇게 걸어가지고선 그 얼음을 땡기면은 저쪽으로 건너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가지고선 그 얼음에다가 슬레이찌랑 사람이랑 실어서 날랐습니다.
● 특파원: 이용우 기자가 그 장면을 촬영을 했는데 이 기자가 맨 나중에 건너는 거죠?
그러니까...
● 기자: 제가 맨 나중에 건넜습니다.
촬영을 하기 위해서...
● 특파원: 위험하지 않았어요?
● 기자: 위험했습니다.
겁도 났습니다.
거기 물어보니까 한 깊이는 한 3-4천 미터 되니까 겁이 나죠.
● 특파원: 바나나 최라고 알려져 있는데 제일 지금 먹고 싶은 게 뭡니까?
● 최종열 대원: 역시 바나나인 것 같습니다.
● 특파원: 잘 들으셨죠?
서울 나오십시오.
● 앵커: 네, 수고했습니다.
오는 16일 서울에서 모두들 건강한 모습으로 보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한인인 최초의 북극점 정복자 이용우 기자도 백담사에 귀향간 전두환이 취재를 갔다가 설악산 내림천에 푹 빠져서 아예 그곳에 주저 앉아 내림천 신선이 되었습니다.

이용우 기자는 다리도 없는 내림천을 고무보트를 타고 농장과 문명세계를 오가고 있다.

내림천에서 이용우 기자는 선녀와 함께 신선 노름중이다.

이용우 기자가 가는 곳이면 내림천이라도 함께하는 내림천 선녀

북극점에 도전해서 실패했던 홍성호 기자는 미국 테하차피 산골에서 북극점에 도전해서 성공한 이용우 기자는 한국 철원 내림천 산골에서 신선이 된 것도 기가 막힌 인연이라 할수 밖에는 없습니다.

1979년 중앙일보 중앙신서 포켓판 북극탐험이란 책이 북극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만든 책입니다.

1978년 중앙일보 동양방송 팀은 북극점을 정복하고자 험난한 북극탐험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북극점 도달에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과정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홍성호 기자가 책으로 남긴겁니다.

홍성호 기자는 중앙일보 편집국장을 지내고 퇴직을 했습니다.

제가 미국 캘리포니아 엘에이 북쪽 75마일 지점 테하차피에 20만평정도의 토지를 마련하여 농장을 일굴 꿈을 꿀때 그 근처에서 농사를 짓던 바로 그 홍성호 기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연도 그런 인연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정말 좁다는것도 실감을 했습니다. 제가 선생이 쓰신 '북극탐험'을 읽고 북극탐험을 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농으로 그린랜드에 후손을 남기고 오시진 않으셨는지 농도 던졌습니다. 이용우 기자는 당연히 선녀때문에 아니겠지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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