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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문법적으로 [It's I]가 바른 표현인가요? [It's me]가 바른 표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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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단상에 '에로곤트'를 '에로곤'으로 잘못 썼다가 지적을 받은 이야기를 쓰면서 민망해서 San Jose가 '산호세'냐? '새너제이'냐?의 이야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왕 이어진 김에 문득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It's me]가 문법적으로는 틀린데 어찌 자연스럽게 사용되는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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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문법만 중학교에서 대학까지 무려 10년을 공부한 우리네는 문법적으로 [It's I]가 바른 표현임을 압니다. 하지만 영국이고 미국이고 [It's me]를 대부분의 사람이 사용하다 보니 마치 [It's me]가 바른 표현인 줄 알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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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그 이유를 알고 계신가요? 바로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때문입니다. 잘 알다시피 세상은 승자들이 좌지우지하며 흘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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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은 '이튼스쿨'에서 낙제해서 꿈꾸던 영문학도의 꿈을 접고 '해로스쿨'로 전학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합니다.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도 3수 만에 입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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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처칠이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이해가 갑니까? 한림원은 수상이유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그의 회고록에 있는 연설문 때문이라고 발표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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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역사상 연설문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일이 발생한 겁니다. 그 연설문에서 처칠은 [It's I]라고 할 것을 [It's me]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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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에 사람들이 [It's I]초차 [It's me]로 잘못 사용하는 처칠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놀림거리로 [It's me]를 사용하다가 입에 붙어 버려서 지금은 [It's me]가 바른 표현처럼 사용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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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도 노벨문학상은 모든 사람이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가 받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업고 엉뚱하게도 처칠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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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노인과 바다'가 출간되어 헤밍웨이는 미국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처칠의 정치적 입김이 문학가들의 잔치판마저 휩쓸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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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가들에게는 잊지 못할 씁쓸한 기억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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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은 내무부 장관 시절 10만 명에 달하는 장애인들을 상대로 '영국인의 우성학적 품종개량'을 이유로 강제 불임시술을 시행한 인종주의자 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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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식민지 벵골의 대기근 때에도 턱없이 부족한 곡물조차 강제로 군용으로 징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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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은 산처럼 쌓여가는 아사자를 보다 못한 루이스 마운트배튼(Louis Mountbatten, 1900~1979) 인도 총독의 지원요청을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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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물자를 보내겠다며 긴급 구호식량을 싣고 벵골만까지 들어 온 호주와 미국의 구호선조차도 '인도인들을 증오한다'는 말 한마디로 거절하고 돌려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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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 동안 무려 2천만 명의 인도인이 아사로 죽어갔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이처럼 많은 숫자의 인간을 그것도 아사로 죽게 만든 사람은 처칠이 유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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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푼이가 정권을 잡으면 [It's I]가 [It's me]가 되고 무고한 생명이 수천만 명씩 죽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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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지도자의 선택이 그래서 중요한 법이고 인류와 역사를 속인다는건 결국 손꾸락으로 해를 가리는 꼴이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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