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2_한국역사

조선을 망친 사람들

忍齋 黃薔 李相遠 2018. 12. 27.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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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학자가 정리한 한국 족보의 실태자료입니다. 이 자료들을 통해 한국을 가장 크게 망친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세도정치라 불리는 왕의 외가들입니다. 이성계가 정도전이 주창한 경국전을 중심으로 유교 사상의 이상 국가 건설을 위해 혁명을 일으켜 고려를 붕괴시키고 조선을 1392년에 건국했습니다. 정조가 집권하던 1800년 이전까지는 유교이상국가는 나름 잘 유지가 되었던 거 같습니다. 그러나 정조 이후 조선은 신안동김씨(장동김씨)와 풍양조씨 그리고 여흥민씨들로 인해 도륙되고 결딴이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라는 일본에 강탈당해 나라 없는 백성들만 남아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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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홍국영의 세도정치는 유교지도이념에 대한 투쟁과 공정한 언로 확보를 위한 사상적이고 도의적인 세도(世道)정치였습니다. 결국 백성과 나라를 위한 세도정치였습니다. 그런데 1800년 정조 이후 순조가 11살의 어린 나이로 집권하자 신안동김씨 김조순의 딸 순원왕후가 대리청정을 하면서 60년 신안동김씨의 장기집권 서막이 펼쳐집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사리사욕을 위해 매관매직을 일삼고 불법으로 신분세탁을 일삼으며 조선 방방곡곡에 권세를 부리는 세도(勢道)정치를 일삼는 백성의 피를 빨고 나라를 거덜 내는 적폐세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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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영조계비인 경주김씨 정순왕후가 효명세자 섭정을 구실로 득세하고 박원준을 중심으로 반남박씨가 득세하였지만 일사불란한 신안동김씨 김조순 일파를 당해내지는 못했습니다. 요절한 효명세자의 아들 헌종이 1834년 7살의 나이로 순조의 뒤를 잊자 풍양조씨 조만영의 딸이 순조의 며느리 세자빈이 되자 득세하여 잘 나가다가 조득영 등 같은 풍양조씨 간의 분란과 신안동김씨의 집요한 공격으로 세를 잃고 말았습니다. 신안동김씨는 영원히 세도정치를 이어가고자 강화도에서 나무꾼을 하며 살던 철종을 준비했다가 헌종이 죽자 1849년 꼭두각시 왕으로 옹립을 합니다. 이때 조선을 대표적으로 말아먹은 신안동김씨로는 장인 김문근, 김좌근, 김재근, 김수근, 김병익, 김병국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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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매관매직뿐만 아니라 과거 진사 생원 합격에도 가격표를 공공연하게 매겼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수입원으로는 족보위조로 철종 때 인구의 8%였던 양반은 66%까지 올라갔습니다. 중인 상민 천민이 신안동김씨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뇌물을 바쳐 양반으로 신분세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양반이 될 가격이 부족하면 천민에서 중인이나 상민으로 신분세탁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져서 40%에 달했던 천민은 철종 때 인구의 0.56%에 머무르게 되었고 노동력이 극소수 빈민계층에게 집중되어 사회경쟁력은 떨어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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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동김씨들의 견제를 피해 호랑 말코처럼 살던 대원군이 1864년 아들 이명복을 고종에 등극시키자 신안동김씨들의 거점이었던 서원을 철폐하며 토호적폐세력척결에 나섰지만 60년 신안동김씨 기득권 세력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신안동김씨 세력과 맞서기 위해 여흥민씨 민비(명성왕후는 추증된 것이므로 민비로 쓴다)를 며느리로 들였다가 결국 민비의 야욕으로 인하여 신안동김씨 풍양조씨 여흥민씨의 연합 세도정치세력에 밀려 발버둥 치다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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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조선을 망친 가장 큰 적폐세력은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일명 장동김씨로 불리는 신안동김씨 세력이었습니다.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조선 인구의 8%가 점유했던 양반집권구조를 자신들의 사리사욕과 치부를 위해 철저히 붕괴시켜 천민해방, 인구 대다수 양반국가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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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긍을 시조로 하는 구 안동김씨는 신안동김씨와 동성동본이라고는 하지만 시조와 연원을 달리하여 같은 씨족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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