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8_黃薔(李相遠)

이기형 선생과 김기선 어른

忍齋 黃薔 李相遠 2019. 1. 8.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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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난 여민(與民) 이기형(李基炯) 선생은 함흥고보를 나와 일본대 창작과를 2년 수료했다. 일제시절 학병거부등 항일투쟁혐의로 1년간 옥살이도 했다. 해방후 일간지 기자생활을 하며 여운형의 지지자로 가까이 했다. 1944년 몽양 여운형의 6촌여동생 여운창과 결혼을 할때 몽양이 주례를 서고 임화와 김태준이 축사를 했다. 1947년 여운형이 이승만에게 암살당하자 가족동반 월북하여 민주조선의 기자를 했다. 6.25동란중 종군기자로 빨지산 취재를 할때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북에는 여운창과 삼남매를 남겼다. 감옥에서 나온 후 1959년 방현주와 재혼을 했고 학원강사, 번역일, 사설학원 운영을 하며 1961년 아들 휘권이 태어나자 구멍가게 운영에 전념하여 휘권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하자 통일시인으로 세상에 나와 통일운동의 길에 여생을 받첬다. 

 

1938년 함흥고보 20회 졸업생 명부에 장인어른 함흥시 만세리 함흥여관집 아들 김기선 어른의 성함과 친구인 한양대 회힉과 이휘권 박사의 부친인 이기형 시인의 성함이 나란하게 나와있다.

1917년 함경남도 함흥시 만세리 함흥여관집 아들로 태어난 김기선 어른은 내 장인어른이다. 함흥고보를 졸업하고 고향에 남아 함흥여관 운영에 전념했다. 1.4후퇴때 흥남부두에서 피난내려와 속초에서 고향갈 날만 기다리며 술로 마음을 달래다 술병으로 간에 문제가 생겨 내 각시 6살때인 1969년에 작고 하셨다. 1980년대 초반 포구기행 연작시를 준비하던 곽재구 시인이 시 '화진포'에 "함흥여관집 아들 기선이 아재"를 취재하여 부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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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정말 우연하게 지금은 작고한 함흥고보 출신으로 선후배를 줄줄 꾀고 있는 분이 함흥여관집 아드님으로 곽재구 시인의 포구 연작시 '화진포'에도 등장하는 내 장인어른 '김기선'을 잘 안다시며 친구분들을 줄줄 꾀는데 몽양 여운영 선생의 비서(친했던걸 비서로 착각했다)를 지내고 2013년에 작고 한 이기형 시인과 내 장인 어른 김기선 어른이 함흥고보 동창으로 친한 친구사이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1938년 함흥고보 20회 졸업생 명부에 장인어른 함흥시 만세리 함흥여관집 아들 김기선 어른의 성함과 친구인 한양대 화학과 이휘권 박사의 부친인 이기형 시인의 성함이 나란하게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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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기형 시인에 대하여 구글링을 해보니 나의 친구로 콜롬비아에서 화학박사를 받고 지금은 한양대 화학교수로 있는 이휘권 박사의 부친이다. 이휘권 박사가 브라운 대학에서 포스닥을 할때 자주 어울렸는데 술만 마시면 못된 주사를 부려 내 각시의 기피인물 1호이다 보니 그 뒤 한국에 가도 회포를 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가 막힌 인연이 아니겠는가? 이휘권 박사는 1999년 변호사인 부인 윤석희와 혼인하여 슬하에 채현과 현서 2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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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전의 이기형 선생의 모습과 활동사진

 

 

 

 

 

 

 

 

 

 

 

 

 

 

 

 

 

 

 

 

 

 

 

 

 

 

 

2. 이기형 시집

 

 

 

 

 

 

 

3. 이기형과 부인 방현주 그리고 아들 이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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