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2_한국역사

해가 바뀔수록 지능화되고 거대화된 한국 입시부정 의 역사

忍齋 黃薔 李相遠 2019. 1. 10.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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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숙명여고에서 학교간부 아버지의 쌍동이딸 성적조작을 통한 한국대학 입시부정의 역사는 그 뿌리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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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까지는 입학 정원내에서 미달되거나 등록을 포기한 자리를 돈을 받고 입학시켜 주는 단순한 방법이어서 부정 입학자의 숫자가 매우 적었다. 사례금 또한 미미했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 이 없었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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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쿠테타를 통해 일확 신분상승이 일어나고 학벌을 갖추어 줄만 잘서면 권력에 기생하여 일확천금을 거머쥘수 있다는 신조가 만연했다. 그 기류에 편승하여 대학들이 이른바 청강생 제도를 악용, 정원의 6배가 넘는 학생을 입학시키기까지 했다. 이때 고려대와 한양대 같은 학원재벌이 생겨나면서 재단차원의 부정입학 비리가 싹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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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는 은밀히 기부금을 받고 입학시키는 수법이나타나 보다 노골적인 범죄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대입 시험지 유출사건이 처음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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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학년도 입시에서 이화여대 시험지를 현직고교교사와 대학관계자, 전문브로커들이 짜고 사전 유출, 50여명의 수험생들에게 팔아 넘겨 충격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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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그 규모가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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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격으로 대학이 생겨나고 학원의 규모가 커지고 무고한 양민을 학살해가며 정권을 잡아도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정권이 연속된 1980년대에 와서는 대입 부정도 보다 조직화되고 대형화됐다. 조폭같은 정권에 학벌로 무장하여 줄만 잘서면 인생 멎지게 산다고 너도 나도 대학에 몰려가던 사회분위기는 사학의 부정 입학과 거액의 돈거래를 부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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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재단이사장 등 고위관계자들이 가세하는가 하면 컴퓨터를 동원하는 등 수법도 한층 다양화 지능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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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도 입시에서 고려대가 교직원자녀 25명에게 가산점을 주어 특혜입학시킨 사실이 밝혀져 입시부정이 명문사립대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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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원주 상지대가 1983년부터 1985년도 입시까지 1백34명을 무더기로 부정입학시키는 등 규모는 대범해지고 더욱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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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이후엔 이른바 기부금 입학 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교정에 잔디밭이나 깔아주던 1980년 초기 기부금입학이 노골화되고 범죄화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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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과 1988년도 영남대입시에서는 1인당 2천만원씩 2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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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부터 1991년까지 건국대입시에서는 1백2명에게 32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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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전주 우석대입시에서는 86명에게 12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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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동국대입시에서는 46명에게 21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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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대학의 권위의 상징인 총장과 재단이사장이 구속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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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측과 재단측이 공모하여 입시를 장사에 이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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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한성대입시에서는 94명이 부정입학했고 
1991년 성균관대입시에서는 1백2명이 부정입학하여 해를 거듭하며 부정입학 숫자의 기록갱신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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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은 예체능계도 입시부정의 무풍지대가 아니었음을 보여준 한해였다. 1월 건국대를 시작으로 서울대, 이화여대, 동아대, 부산여대 음대에서 입시비리가 밝혀진 데 이어, 7월엔 이대 무용과의 입시부정이 폭로돼 무용과 교수 3명이 쇠고랑을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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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2000년대는 부정입학은 보다 지능적이고 권력화되어 발전해갔다. 교수부모가 고등학생인 자식의 논문을 대필하거나 공저자로 이름을 올려 고교생 논문저자도 양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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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는 부정입학의 양상은 그 끝을 모르고 고공행진을 해서 건국대 청강생이던 최순실이 이대에 부정입학시킨 자신의 딸은 유럽에 두고 교수의 땀따귀를 갈기고 삼성이 끼어들고 권력의 중심이 들먹거리는 부정입학까지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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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뻔뻔하게 자신이 복무하는 고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켜 성적을 조작하여 대입부정을 준비했던 충격적인 모습이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니 한국교육의 장래가 안쓰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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