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구한말 1900년초 친일파가 득세하는 것을 보고 나라 망할것을 예견한 내장원경, 규장각직학사, 궁내부특진관 칙임관1등을 지낸 이명직 대감이 전국에 똘똘한 자식 둔 부모는 나라 망할것에 대비하여 세계각지로 유학을 보내라는 사발통문을 돌린다. 이 사실은 조선공산당 창당의 주역으로 레닌의 40만마르크 공산혁명 자금을 집행했고 3차 책임비서로 코민테른에 참가하여 스탈린을 독대하여 추인받고 군자금을 수령받아 조선독립운동 자금으로 전용했던 독립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의 증언으로 김철수 선생이 와세다대학 유학을 하고 이명직 대감이 일제에 제거되던 1915년 조선독립투쟁에 길에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 http://blog.daum.net/enature/15854888)
정재원(1893년~1954년, 鄭載謜, Jaone Chung, 아호는 담재(淡齋))선생은 1893년 8월 9일에 경남 진주에서 만석부호의 아들로 출생하여 1903년경에 일본 동경의 청산외국어학원(靑山外國語學院)에서 1년간 영어교습을 받았다. 그리곤 뉴욕시에 정착하여 6개월간 Williston Seminary의 입학시험 준비를 하여 입학하였다. 매사추세츠 서북부에 위치한 이스트햄프톤에 있는 Williston Seminary는 4년제 기숙학교로 졸업후 유니버시티 오브 펜실바니아 Wharton School에 입학 하였다. (참고: http://blog.daum.net/enature/15853215)
1914년 Wharton School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전 세계 해상 봉쇄령 (Global naval blockade)이 내려 미국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한국에서 결혼까지 하며 지냈다. 11년후인 1925년, 두 번째로 도미하여 학업을 이어가려 하였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해서 자신의 짐의 일부를 찾아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YMCA의 초대영어교사로 수주 변영로(영문시인), 성재 이관구(성균관대학교수), 이원철(기상대장)등을 가르쳤다.
일본경찰로부터 요시찰인(要視察人)명단에 올라서 항상 고등계형사가 배치되었고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하였다. 1953년 부산 완월동에 위치한 ‘부산아동자선병원’에서 행정 병원장으로 일하다가, 지병으로 대구서부시립병원에 입원하여 1954년 2월 20일 돌아가셨다. 그의 제자였던 수주 변영로는 정재원 선생의 오랜 술친구로 장재원 선생과의 술에 얽힌 일화를 그의 수필 '담제(淡齋)의 관인(寬忍)'으로 1950년 1월호 신천지라는 잡지에 남겼다.
수필에서는 펜실바니아에서 상과를 마쳤다고 하였으나 이는 유펜 와튼스쿨을 입학하고 학비마련을 위해 뒤국했다가, 1차대전 해상봉쇄로 복귀하지 못하고 11년뒤 재차 방미하여 학업을 이으려했으나 결국 마차지 못한것을 수주 선생이 혼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수주 변영로 선생은 경남 김해 출신으로 경기도 부천군 오정면에 본적을 옮겨 부천을 제2의 고향삼아 살다간 문인이다.
수주 변영로의 "담재의 관인"을 소개한다.
반응형
'1. Dr. Sam Lee > 13_미국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박한 백인 극단자본주의 사상에 절어있는 한국!] (0) | 2019.06.07 |
---|---|
팔로알토에 내린 눈 2019-2-5 (0) | 2019.03.01 |
[가난한 미국인들] (0) | 2019.01.30 |
An Arizona Man Made An Amazing Backyard Discovery After Hearing A Rumor (0) | 2019.01.23 |
2011 Tennis BNP Paribas Open (0) | 2019.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