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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숙대 입구 굴다리 파리제과점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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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로 유명한 소사에서 화훼농장을 하던 부친이 도시화하여가는 농장을 접는 바람에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 형들이 있던 숙대 앞쪽에 있던 서울집으로 왔고 근처에 있던 선린중으로 전학도 왔다. 70년대 그 근처에서 빵집으로는 파리제과점이 독보적인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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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는 첫 키스를 나눈 여자아이와 효창공원이며 숙대 근처를 쏘다니다가 출출하면 파리제과점에 들어가 가슴 콩닥거리는 데이트를 했던 곳이니 파리제과점과는 무엇인가 운명적인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등하교 때는 그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내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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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는 지방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방학 때면 또 늘 접하던 곳이다. 전두환이가 과외를 금지시켜 마땅한 아르바이트 거리가 없었을 때 숙대입구역 공사가 한창이었고 나는 막노동의 힘듦도 감내하겠다고 경력 많은 노무자로 위장하여 그 공사판에 취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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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노무 담당이 동내 형, 그래서 공사판 교통정리나 하라고 파리제과점 앞에 배치를 시켰다. 공사판이라 파리제과점 앞은 주정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파리제과점 주인아저씨가 조용히 불렀다. 몇만 원인가를 주머니에 찔러주며 '덥고 힘들면 들어와서 냉차도 마시고 케이크도 먹고 그리야. 같은 동네 사람끼리 먹고살아야지, 응'하며 윙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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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학 기간은 황금기(?)였다. 요령껏 택시들이 파리제과점에 손님을 편하게 내리도록 공사판 교통정리를 잘했다. 노임은 노임대로 받고 파리제과점 아자씨가 찔러주던 용돈은 용돈대로 불고. 출출하면 빠다빵 곰보빵 냉차 주스 커피까지. 공사판 복장에 교통신호봉으로 큰 벼슬을 했던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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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종로에 있던 잡지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할 때도 늘 파리제과점 앞을 오갔다. 가끔 다른 사업을 구상 중인 주인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나도 오퍼상을 하다 흑자 부도를 당한 바가 있어서 '그냥 빵집 계속하세요. 한국에선 흑자가 나도 줄이 없으면 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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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올림픽에 한국잡지풀기자단 총무를 마치고 미국 버지니아텍으로 유학을 떠났다. 2003년 파리제과점 아자씨 소식이 궁금해 수소문했더니 아뿔싸 내가 유학 떠난 다음 해 그 구상하던 사업을 강행하다가 부도가 나서 망했고 연락도 안 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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뻑뻑하고 목메던 삼립빵 만들던 파리바케트가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진출해서 문전성시를 이룬다. 미국 애들이 이 빵집이 한국 빵집인 줄 모르고 프랑스 빵집으로 알고 줄을 서서 한국 빵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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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숙대 입구 굴다리 파리제과가 1989년에 부도로 사라지지 않았다면 마치 불란서제과점처럼 세계에 진출할 거대 빵집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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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는 지방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방학 때면 또 늘 접하던 곳이다. 전두환이가 과외를 금지시켜 마땅한 아르바이트 거리가 없었을 때 숙대입구역 공사가 한창이었고 나는 막노동의 힘듦도 감내하겠다고 경력 많은 노무자로 위장하여 그 공사판에 취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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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노무 담당이 동내 형, 그래서 공사판 교통정리나 하라고 파리제과점 앞에 배치를 시켰다. 공사판이라 파리제과점 앞은 주정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파리제과점 주인아저씨가 조용히 불렀다. 몇만 원인가를 주머니에 찔러주며 '덥고 힘들면 들어와서 냉차도 마시고 케이크도 먹고 그리야. 같은 동네 사람끼리 먹고살아야지, 응'하며 윙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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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학 기간은 황금기(?)였다. 요령껏 택시들이 파리제과점에 손님을 편하게 내리도록 공사판 교통정리를 잘했다. 노임은 노임대로 받고 파리제과점 아자씨가 찔러주던 용돈은 용돈대로 불고. 출출하면 빠다빵 곰보빵 냉차 주스 커피까지. 공사판 복장에 교통신호봉으로 큰 벼슬을 했던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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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종로에 있던 잡지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할 때도 늘 파리제과점 앞을 오갔다. 가끔 다른 사업을 구상 중인 주인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나도 오퍼상을 하다 흑자 부도를 당한 바가 있어서 '그냥 빵집 계속하세요. 한국에선 흑자가 나도 줄이 없으면 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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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올림픽에 한국잡지풀기자단 총무를 마치고 미국 버지니아텍으로 유학을 떠났다. 2003년 파리제과점 아자씨 소식이 궁금해 수소문했더니 아뿔싸 내가 유학 떠난 다음 해 그 구상하던 사업을 강행하다가 부도가 나서 망했고 연락도 안 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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뻑뻑하고 목메던 삼립빵 만들던 파리바케트가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진출해서 문전성시를 이룬다. 미국 애들이 이 빵집이 한국 빵집인 줄 모르고 프랑스 빵집으로 알고 줄을 서서 한국 빵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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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숙대 입구 굴다리 파리제과가 1989년에 부도로 사라지지 않았다면 마치 불란서제과점처럼 세계에 진출할 거대 빵집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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