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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선(防疫線, cordon sanitaire)을 확보하라!

忍齋 黃薔 李相遠 2020. 2. 2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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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이러스 전염병 대처를 보며 생각난 방역선(防疫線)의 창시자 아드리앵 프루스트]

 

한국 대구의 코로나19 방역선이 붕괘된듯한 인터넷 뉴스 보도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습니다. 작금의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고자 자국의 방역선 확보를 위해 나라에 따라서는 발병국 사람이나 해당국에서 들어오는 사람의 입국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과 같은 나라는 발병국의 눈치를 보는듯 입국금지 같은 강력한 방역선 확보를 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발병의심자가 의료진의 권고도 무시한체 교회 대중집회에도 참석하고, 대중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자신의 지역사회를 벗어나 수도권의 직장 본사에 출장도 다녔다고 합니다. 그에 대해 방역책임자는 지역사회 행정력에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아타까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1877년 전염병 방역선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아실 아드리앵 프루스트가 떠 올랐습니다.  

 

아실 아드리앵 프루스트 (Achille Adrien Proust, 1834~1903)는 프랑스의 공중보건의학과 식품위생학 그리고 역학조사학의 창시자 중 한명입니다, 특히 전염병 콜레라를 제어하는 방법이 "정치적인 국경을 넘어 국제위생 방역(防疫)범위로 확대하여야 한다"고 방역선(防疫線, cordon sanitaire)의 창설을 역설한 분입니다. 

 

그 당시의 영국의 무역패권주의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1877의 봄베이에 창궐한 콜레라 전염병 검역을 적절하게 대처했다는 찬사를 받고있습니다. 1884 년, 육류포장공장의 위생기준 개선을 위한 미국과 프랑스간의 공식적인 계약을 주도적으로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잘 알다시피, 그의 아들은 유명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입니다. 아드리앵 프루스트는 천박한 하층민의 아들로 태어나 개천에서 용난 의사가 되었고 부유한 유태인 부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903년 뇌출열로 사망할때까지 아들 마르셀 프루스트를 프랑스의 대문호로 키우는데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2014년에 작고한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유명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의작품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화장실에 비치한 비누한장으로 쫀쫀하게 싸우던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당시 가장 유명한 전염병 학자이자 방역선(防疫線)의 창시자이며 위대한 소설가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아드리앵 프루스트의 제자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방역 전문가라면 아실 아드리앵 프루스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방역선의 강력한 확보는 전염병 창궐시에 대처하는 방역의 기초중에 기초입니다. 방역선 확보에는 정치적 고려는 있을수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한국은 방역선 확보에 심혈을 기우려야 할겁니다.

 

 

 

아실 아드리앵 프루스트 (Achille  Adrien Proust , 1834~1903)는 공중보건의학과 식품위생학 그리고 역학조사학의 창시자 중 한명입니다, 특히 전염병 콜레라를 제어하는 방법이 "정치적인 국경을 넘어 국제위생 방역(防疫)범위로 확대하여야 한다"고 방역선(防疫線, cordon sanitaire)의 창설을 역설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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