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산당' 2차후반기와 3차 집행부 책임비서'를 지내고 또 스탈린을 만나 조선공산당에 대한 코민테른의 승인과 동양공산혁명자금을 직접 수령했던 지운 김철수. 한중일 동양3국중, 1920년 조선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당의 강령을 갖춘 '사회혁명당'을 창당했으며 1921년 레닌의 자문으로 이동휘의 러시아 '한인사회당'과 결합하여 상해파 고려공산당을 만든 지운 김철수. 그런 지운 김철수 선생은 북으로 가지 못하여 정작 북한의 공산정권 창립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남과 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사회주의 혁명가 지운 김철수에게는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제가 여러분의 그 의문을 풀어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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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김철수 선생이 북으로 가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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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조선의 공산당 창설의 주역 지운 김철수 독립지사는 러시아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스탈린이 아끼던 러시아 비행 장교 이봉섭 선생의 주선으로 스탈린을 독대하여 조선공산당에 대한 코민테른의 승인과 특별공산혁명 자금을 수령하여 공산혁명 대신 조선독립운동자금으로 전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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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금 중에 가장 많은 자금을 지원받은 분은 의열단을 조직하여 무장 독립투쟁을 전개하던 김원봉 선생이었습니다. 또 일부는 미국에서 임시정부에 보내야 할 독립자금을 횡령하고 독립군 조직원을 살해하려 한 이승만을 살해하라는 김구 선생의 명령이 떨어진 것을 풀어주기 위해 이승만의 횡령자금을 대납하는 데도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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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김철수 선생은 '공산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민족주의 세력과 연합하여 일본제국주의를 몰아낸 후 공산혁명을 완수한다'는 코민테른의 원칙에 어긋남이 없었지만 1924년 렌닌 사망후 스탈린 치하의 코민테른의 원칙주의로 인하여 코민테른의 혁명자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전용하여 북으로도 갈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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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후 레시아에 의한 동구권의 공산화로 미국의 제2차 적색공포(赤色恐怖, Red Scare, 1947~1957)를 이어받은 미군정과 이승만을 비롯한 미국파의 대대적인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급진주의, 노동조합주의 등 비미국적 사상과 행위를 할 인사들을 빨갱이로 몰아 몽땅 살육할 때 자신의 목숨을 구원해준 지운 김철수 선생에게 신문에 정치를 떠나 고향에 칩거한다는 광고를 내는 조건으로 남한의 사회주의 계열 인사 중에 유일하게 목숨을 구명 받고 천수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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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방원 선생이 생전에 소장했던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화 26번 부터 50번을 2번째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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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제2차 적색공포(赤色恐怖, Red Scare, 1947~1957) - 소련의 스파이였던 엘리자베스 벤틀리와 휘태커 챔버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미연방정부 고위직에 침투해 있다었습니다. 1949년 국민당이 국공 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에게 패해 타이완으로 도망친 사건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그 후 미국에 의존하고 있던 한국 내 한국전쟁의 중국의 개입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는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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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nFZ-fLbg3U?si=OzZU5vB9nV2W21wl
https://youtu.be/E7WRPguTV9E?si=LQxFBjQS2dsn1Y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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