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주자십장부시(朱子十丈夫詩) 중 서화 2폭 병풍 236~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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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김철수 선생 – 좌우익 소아병을 극복한 정치인이자 독립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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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15 광복의날에 독립장을 추서 받은 지운(遲耘) 김철수(1893~1986) 선생은 일찌기 사회주의 운동이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보고 실천에 옮긴 분이다. 지운 선생은 한중일 동양3국에서 가장 먼저 초기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며 일본•러시아•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13년8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분의 독특한 점은 1920년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까지 지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지운 선생은 혼란스런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북조선을 택하지 않고 1986년 돌아가실때까지 남한 땅을 지키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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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주의자를 연구하는 이들은 “거물급 사회주의자인 지운 선생이 남한 땅에 계속 생존해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를 한다. 1893년 전북 부안군 백산면 원천리에서 태어난 지운 선생은 1908년 서당을 열고 있던 한학자 서택환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 선비정신과 함께 민족의식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구한말 궁궐의 관리를 지내다 이완용 등 친일파의 준동을 보고, 나라 망할것을 예견한 이명직 선생이 돌린 “똑똑한 자식있으면 해외로 공부하러 보내라”는 사발통문을 접하고 유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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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학과로 유학을 간 뒤 1915년 이명직 선생이 일제에 독살당한 소식을 듣고 지운 선생은 독립운동과 사회운동에 매진한다. 1915년 재일본 유학생들과 ‘열지동맹’을 결성하고, 이듬해에는 조선인•중국인•대만인과 함께 ‘신아동맹단’을 결성, 대일 항쟁을 선언한다. 그때 동경제국대 농학실과생이던 나가하루우(우장춘)를 만나 “너의 부친, 우범선은 민황후를 살해하고 도망와 살해된 매국노이지만, 너는 조선인으로서 조선의 독립과 조선의 발전에 너의 인생을 바치라”고 5살 어린 청년 우장춘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의식화시켜 해방후 우장춘 박사가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감자, 옥수수, 배추등을 육종하여 한국이 농업강국이 되는데 크게 이바지 하도록 만들기도 한 장본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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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에는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운 선생의 주도하에 동양에서 최초로 조선에 사회주의 결사체인 ‘사회혁명당’을 결성을 한다. 이듬해에는 이동휘와 함께 ‘고려공산당’을 창립하고 재무담당 중앙위원을 맡는다. 1923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민대표회의에 참가한다. 1926년에는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로 취임한다. 1927년에는 러시아의 코민테른에 가서 유창한 영어로 조선공산당의 창립을 선포하고, 코민테른의 추인을 받고, 거액의 활동자금을 수령하여 독립운동 제반 단체에 나누어 주는등 사회주의 운동사에 굵직한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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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로는, 지운 선생이 이승만의 목숨을 구명하여 주었다는 거다. 당시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은 이승만을 미주한인 독립운동기부금의 횡령착복과 조직원 살해미수 혐의로 암살하도록 명령을 내렸는데 이때 지운 선생이 이승만이 착복한 기부금을 코민테른에서 받아온 자금으로 대납하여 목숨을 구해주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우남 이승만은 우리가 알고 있던것 만큼 착한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박사학위 조차도 하바드, 위싱톤, 프린스톤대학에 흥정편지를 보내 받았다고 한다. 또 당시 미국에서 금지되어 있던, 여비서를 고용하여 대동하고 여행을 다니다 체포되어 벌금을 문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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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일은 바로 미주한인들이 상해임시정부를 위해 모금한 독립운동기부금을 착복하여 개인용도로 사용한것이고 이를 탓하는 조직원들을 깡패를 고용하여 살해하려 했다는 거다. 이 내용들은 2013년 초 미국의 문서보관소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어 파문이 일기도 했다. 바로 그런 이승만의 목숨을 구명하여 준분이 지운 김철수 선생이셨다. 지운 선생이 이승만을 구명하여준 이유는 방법과 절차가 어찌되었건 미국박사이고 영어를 잘 구사함으로 회심하면 우리민족의 인재로 거듭날 것이라 여겼다. 그렇지 않아도 김구 선생은 코민테른 자금을 차지하기 위해 적지 않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을 암살해 왔는데 지운 선생도 이승만을 두둔한다는 이유로 김구 선생의 암살대상이 되어 김구 선생에게 격노했고 해방정국에서도 서로 만나는 자리조차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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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으로 1930년에 붙잡혀 8년8개월의 옥고를 치룬 지운 선생은 1940년 다시 감옥에 들어가 해방을 맞아서야 공주형무소에서 출옥했다. 당시 항소를 하자는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지운 선생은 “일본 제국주의 법률을 인정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1999년 ‘김철수 자료집’을 낸 한국정신문화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일제시대 지운 김철수 선생의 활동에 대해 ‘전통적인 유학의 선비사상에 기초한 민족주의 운동’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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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김철수 선생은 해방 이후 “자발적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를 제외한 좌•우익의 통일정부 수립과 모든 파당은 통일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늘 주장하며 이승만과 박헌영의 회담을 추진하는 등 좌익과 우익의 가교역을 자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운형 선생이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이필형등 백의사(김구 암살범 안두희도 백의사 단원이다)단원들에게 암살 당한 후, 이승만이 친구 설산 장덕수를 통해 언론에 정치를 떠나 조용히 살겠다고 광고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제의를 받아드려 1947년 모든 정치활동을 접고 낙향한다. 물론 좌•우익 대결과 세력 다툼 등 혼란스런 해방 정국에 대한 환멸도 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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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김철수 선생은 “원래 좌나 우가 같이 필요하다.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어야 발전하는 것”이라며 당파성을 초월해 활동했다. 하지만 선생의 노력은 빛을 보지 못했다. 박헌영과 당내 갈등을 빚은 뒤 당으로부터 정권 처분을 받은 선생은 사회노동당 창당에 이름을 올리지만 1947년 2월 이승만에 의해 사로당이 해체되자 ‘그만 죽고싶은 심정’이라 토로하고 이승만이 제안한 목숨보존책을 수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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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지운 선생에게 신문에 정치은퇴를 선언하고 낙향하면 예전에 빚진 목숨값으로 목숨만을 살려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여 지운 선생은 지방일간지에 정치은퇴를 선언하고 부안 백산으로 낙향하여 움막을 짖고 칩거하다 1986년 생을 마쳤다. 이승만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보은의 차원으로 해방후 유일하게 이승만 정권으로 부터 목숨을 보존받은 유일무이한 사회주의계열 독립지사라는 의미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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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사학과 임경석 교수는 김철수 선생에 대한 평에서 “식민지 사회 또 해방 공간에서 민족과 공공의 가치를 개인적 이해 관계보다 앞세워 추구했다”면서 “ 선생은 사회주의운동, 독립운동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권력자적인 지위를 갖지 못했다”며 나름대로의 낙향 배경을 설명하기도 한다. 김철수 선생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전 부안 백산고 교장 고산 정진석 선생은 생전에 선생에 대한 평에서 “그는 좌익 중심의 정치 행태를 극복하려 했다”면서 “비록 통일정부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 모두에게서 존경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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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선생은 낙향 뒤에는 자연과 벗하며 농사에 전념했다. 지운 선생은 의제 허백련, 오지호 화백 등 지역의 예술인과도 교류했다. 지운 선생은 사회주의자로서의 면모와 남한 사회 개혁에 대한 관심을 잃지는 않았다. 지운 선생에 관한 논문을 집필한 정혜경 박사는 지운 선생에 대해 “해방 이후에 북으로 가지 않고 남한에서 사회 개혁을 이루려고 노력했다”면서 “지역에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조봉암 지지 활동을 했으며 지금으로 보면 일종의 시민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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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백산면 대수리 한 야트막한 구릉에 자리잡은 10평 안팎의 초라한 토담집은 지운 선생의 생애를 잘 말해주고 있다. 앞으로 논밭, 뒤로는 소나무숲이 이어진 토담집은 지운 선생이 1968년 손수 지은 거다. 지운 선생은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고 통일을 염원하며 작은 고통이라도 나눈다는 자세로 ‘이 정도면 편안하다’는 뜻으로 ‘이안실(易安室)’이라 이름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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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김철수 선생의 삶은 그다지 편안하지는 못했다. 명백한 독립운동 공적이 있고 별다른 친북활동의 전력이 없었음에도 사회주의자였다는 이유만으로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정권하에서 1급 감시대상으로 분류돼 한평생 해외여행 한번 못하고 공안당국의 감시를 받았다. 또 사회주의자이면서도 ‘민족적이고 유교적’인 성향 때문에 북한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남북 분단 현실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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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지운 김철수 선생이 설파하시던 “원래 좌나 우가 같이 필요하다.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어야 발전하는 것”이라던 말씀이 떠올라 그 뜻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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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이트:
1. http://ko.wikipedia.org/wiki/이명직_(문신)
2. http://ko.wikipedia.org/wiki/김철수_(1893년)
3. http://ko.wikipedia.org/wiki/우장춘
4. http://blog.daum.net/enature/15850324
5 .http://blog.daum.net/enature/15851296
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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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 선생의 유품 중 지운 선생의 서화보다리에는 주자십장부시(朱子十丈夫詩, 丈夫로서 必히 갖추어야 할 열가지 德目)의 일부 항목도 2폭 병풍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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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번째 작품으로는 4번째 항목과 3번째 항목을 2폭짜리 병풍용으로 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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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폭은 4번째 항목으로 '雪滿窮巷 孤松特立 丈夫之志節 (설만궁항 고송특립 장부지지절)'로 '눈 가득한 궁색한 거리에 외로운 소나무 홀로 선 것은 장부의 뜻 절개다.' 또는 '萬壑千峰(만학천봉)에 흰눈이 쌓였는데, 소나무 한그루가 외로이 우뚝서 있으니 이는 丈夫의 志操(지조)이다.'의 뜻이다. 이 구절은 '雪滿窮巷'을 '雪滿窮壑'으로 쓰기도 하는데 뜻은 대동소이하다.
• 志節 : 굳게지켜 변암없는 節槪(절개).
• 萬壑千峰 (만학천봉- 만개의 골짜기와 천개의 봉우리) : 첩첩히 겹쳐진 골짜기와 산봉우리.
• 雪滿窮壑 : 흰눈에 쌓인 궁벽한 골짜기.
• 孤松特立 : 홀로 우뚝선 외로운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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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폭은 3번째 항목으로 '花爛春城 萬化方暢 丈夫之新容 (화란춘성 만화방창 장부지신용)'으로 '꽃이 난만한 봄 성에 만물이 화해서 창성한 것은 장부의 정신 용모다.' 또는 '江山(강산)에 아름다운 꽃이 滿發(만발)하는 和暢(화창)한 봄날처럼 丈夫(장부)의 容貌(용모)는 환하게 밝아야 한다.'의 뜻이다. 이 구절은 '丈夫之新容'을 '丈夫之容貌'로 쓰기도 하는데 뜻은 대동소이하다.
• 容貌(용모) : 얼굴모양
• 花爛春城 : 江山에 봄꽃이 만발한 모양.
• 萬化方暢 : 따뜻한 봄날, 온갖 生物이 한창 피어나 자라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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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외의 항목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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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항목으로
'靑天白日 廓乎昭明 丈夫之心鏡 (청천백일 확호소명 장부지심경)'으로 '푸른 하늘과 흰 태양이 크고 밝은 것은 장부의 마음 거울이다.' 또는 '장부의 마음은 푸른하늘 淸明(맑고 깨끗한) 날씨처럼 넓고 더없이 밝아야 한다.'는 뜻이다.
• 靑天白日 : 淸明한 하늘과 밝은 낮. (마음씨가 음침하지 않고 밝은 모양)
• 廓乎昭明 : 마음이 넓고 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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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항목으로
'泰山喬嶽 崒乎高大 丈夫之氣像 (태산교악 줄호고대 장부지기상)' 또는 '泰山嶠岳 聚乎高大 丈夫之氣象 (태산교악 취호고대 장부지기상)'으로 '태산과 높은 메부리가 우뚝하여 높고 큰 것은 장부의 기상이다.' 또는 '莊嚴(장엄)하고 雄壯(웅장)한 泰山(태산)처럼 높고 큰 性品(성품)을 가진 氣槪(기개)를 떨치는 것이야 말로 丈夫의 氣象이다.'의 뜻이다.
• 氣象 : 사람의 타고난 性品과 정신,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몸가짐.
• 氣槪 : 굽히지 않는 강한 意氣(의기). 씩씩한 기상, 굳건한 절개.
• 泰山嶠岳 : 크고 높은산.
• 泰山 : 중국 五岳의 하나.
• 聚乎高大 : 높고 큰 산을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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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항목으로
'北海南溟 浩無涯岸 丈夫之局量 (북해남명 호무애안 장부지국량)'으로 '북쪽 바다와 남쪽 바다 넓어서 가이 없는 것은 장부의 국량이다.' 또는 '바다가 끝없이 넓음과 같이, 丈夫의 度量(도량)도 廣闊(광활)하고 생각은 깊어야 한다.'는 뜻이다.
• 局量 : 너그러운 마음과 깊은 생각. 度量과 才幹(재간)을 뜻함.
• 北海南溟 : 북극해에서 남극해까지.
• 浩無涯岸 : 한없이 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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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째 항목으로
'光風霽月 淨無塵埃 丈夫之胸襟 (광풍제월 정무진애 장부지흉금)' 또는 '光風霽月 毫無塵埃 丈夫之胸衿 (광풍제월 호무진애 장부지흉금)'으로 '비온 뒤의 맑은 바람과 갠 달이 깨끗하여 티끌이 없는 것은 장부의 흉금이다.' 또는 '장부의 가슴속에 품은 생각은, 비가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달과 같이 티끌하나 먼지하나 없이 맑고 밝아야 한다.'는 뜻이다.
• 胸衿 : 가슴속에 품은 생각.
• 光風霽月 : 비온뒤에 부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
• 霽月 : 비겐뒤의 밝은 달. - 근심없는 快闊(쾌활)한 마음.
• 毫無塵埃 : 티끌 먼지가 전혀 없음. (毫無 : 전혀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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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항목으로
'鳳翔千仞 飢不啄粟 丈夫之廉隅 (봉상천인 기불탁속 장부지염우)'로 '봉황새 천길을 날아도 곡식을 쪼지 않음은 장부의 청렴함이다.' 또는 '鳳凰(봉황)이 千里길을 날아 배고파 아무리 주려도, 좁쌀따위를 쪼아 먹지 않는것은 장부의 廉恥(염치)이다.'의 뜻이다. '鳳翔千仞'을 '鳳飛千仞'으로 또 '丈夫之廉隅'를 '丈夫之廉潔'로 쓰기도 하는데 그 뜻은 대동소이하다.
• 廉潔 : 마음이 깨끗하고 人品이 조촐하여 貪慾(탐욕)이 없음.
• 貪慾(탐욕) : 事物(사물)을 탐내는 욕심. 善心根(선심근)을 해침.
• 鳳飛千仞 : 鳳凰(봉황)이 천길을 날다.
• 飢不啄粟 : 주려도 좁쌀을 쪼아 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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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째 항목으로
'鴻鳴水國 飛必舍蘆 丈夫之戒謹 (홍명수국 비필함로 장부지계근)'으로 '기러기 물나라에서 울며 날을때 반드시 갈대를 머금는 것은 장부의 경계하고 삼가함이다.' 또는 '기러기가 청아한 목소리를 내며 넓은 호수위를 날 때, 반드시 입에 갈대를 무는것은 丈夫의 智慧이다.'의 뜻이다. '丈夫之戒謹'을 '丈夫之智慮'로 쓰기도 하는데 그 뜻은 대동소이하다.
• 智慮 : 슬기롭고 민첩한 생각. 생각해서 헤아리는 能力(능력).
• 鴻鳴水國 : 기러기가 울며 호수위를 날다.
• 飛必舍蘆 : 날때는 반드시 갈대를 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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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항목으로
'虎嘯風烈 戰慴百獸 丈夫之威嚴 (호소풍열 전습백수 장부지위엄)' 또는 '虎哺谷風 百獸逐跡 丈夫之威容 (호소곡풍 백수축적 장부지위용)'으로 '호랑이 휘파람이 매서운 바람되어 모든 짐승 두려워 떨게 하는것은 장부의 위엄이다.' 또는 '호랑이의 咆哮(포효)가 골짜기에 퍼지면 모든 짐승이 놀라 숨어 버리듯 丈夫의 威風(위풍)은 凜凜(늘름)해야 한다.'는 뜻이다.
• 威容 : 威風, 威嚴(위엄)이 서리는 風采(풍채).
• 咆哮 : 사나운 짐승의 울부짖음.
• 虎哺谷風 : 호랑이의 咆哮(포효)가 바람이되어 골짜기에 휘몰아 침.
• 谷風 : 골짜기에 부는 바람.
• 百獸逐跡 : 모든짐승이 자취를 감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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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번째 항목으로
'龍泉快劒 割絶兩端 丈夫之能斷 (용천쾌검 할절양단 장부지능단)' 또는 '龍剪快劒 一切兩斷 丈夫之明斷 (용전쾌검 일절양단 장부지명단)'으로 '용천검 쾌한 칼이 용단을 내려 잘라 끊는것은 장부의 능한 결단력이다.' 또는 '용도 벨수 있는 아주 잘드는 칼로 한칼에 두동강을 내듯이, 어떤 상황에서도 뚜렷한 판단을 내릴수 있는 용기야 말로 丈夫의 勇斷(용단)이다.'는 뜻이다.
• 明斷 : 훌륭하고 뚜렷한 判斷(판단)
• 龍剪快劒 : 용도 벨수 있는 아주 잘드는 칼.
• 一切兩斷 : 한번에 두쪽을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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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朱子, 1130~1200)는 자가 元晦(원회)·仲晦(중회)이고 호는 晦庵(회암)· 晦翁(회옹)·雲谷老人(운곡노인)·遯翁(둔옹)이다. 존칭하여 朱子(주자)라고 한다. 중국 남송(南宋) 때의 유학자로 주자학을 집대성하여 중국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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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선생은 나이 90을 넘어 작고하기 직전까지 장부의 기개를 유지하려고 부단하게 노력했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와 해방되던 1945년 52세에 창경궁 식물원에서 만난 18세의 원예가 방원 청년을 작고하던 1986년까지 41년간 같은 장부의 기개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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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친 방원 선생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6.25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6사단에서 중공군을 막아낸것도, 수류탄 파편창으로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Jutlandia)호에서 구사일생 살아난 뒤 상이유공자 등록도 안한체 살다 가신것도, 사리사욕에 물들지 않고 청빈하게 살다 가신것도 바로 지운 선생이 전한 장부의 의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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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Kyzbma Yang 화란춘성 만화방창 [2]* 앞의 雪滿~과 대련(對聯) 작품이네. |
1 Kyzbma Yang 설만궁항 고松특립 눈이 가난한 거리에 가득해도 외로운 소나무는 우뚝하게(특별하게) 서 있고, |
2 Kyzbma Yang 鴻鳴水國 飛必含蘆 큰기러기 물 나라에서 울다가 날을 때는 반드시 갈대를 머금는다(물고 있다) * 앞의 鳳翔~ 句와 대련을 이루는 작품 |
2 Kyzbma Yang 鳳翔千仞 飢不啄粟(봉상천인 기불탁속) 봉새는 천 길 위를 날면서 굶주려도 좁쌀을 쪼지 않는다. *鳳봉 , 凰황 |
https://youtu.be/DnFZ-fLbg3U?si=OzZU5vB9nV2W21wl
https://youtu.be/E7WRPguTV9E?si=LQxFBjQS2dsn1Y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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