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9_遲耘(金錣洙)

[지운 선생이 보낸 서찰의 주소를 통해 본 나의 주소지]

忍齋 黃薔 李相遠 2020. 11. 4.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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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 유품 중 지운 김철수(遲耘 金錣洙) 선생과 내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 간에 오간 세필 명필의 서찰들이 1945년부터 지운 김철수 선생이 작고하던 1986년 2월까지 166통이 고스란하게 모여 있다. 그 봉투를 시절별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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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종로 신신백화점 - 꽃집

2. 서울 용산 한남동 544 - 한남식물원

3. 경기 부천군 소사읍 조종리 199-2 - 방산식물원

4. 경기 부천시 원미동 199-2 - 방원식물원

5. 서울 용산 청파동 3가 1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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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방후 내 부친 방원 선생은 창경궁 식물원에 근무하면서 종로 신신백화점내에 친구분인 신구문화사 이종익 박사와 함께 꽃집을 운영하신 적이 있다. 지운 선생이 창경궁 식물원에 나드리하면서 내 부친과 친분을 나눈후 시작된 지운 선생이 보낸 초기 서찰의 배달처는 그 꽃집이었다.
2. 내 부친이 창경궁 식물원장, 6.15참전 부상으로 의병제대 후 우장춘 박사를 모시고 원예시험장 청량리분원장, 경무대에서 조경담당 을 하다 1950년말 한국일보 장기영 사장과 한남동에 원예식물원을 운영할때 서울 용산구 한남동 544번지 식물원으로 지운 선생의 서찰은 쉼없이 배달됐다. 필자인 나는 바로 그곳에서 5.16군사반란이 일어나던 1961년 출생했다.
3. 부친의 한남동 식물원의 동업자였던 백상 장기영 사장이 64년 박정희 군사정권의 부총리로 입각하면서 식물원 운영은 뒷전이 되어 내가 초등학교 입학 1년전인 1967년경 부친 방원 선생은 근교농업을 부흥시키겠다며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조종리 199-2번지 3천여평의 논에 방산식물원을 시설했다. 지운 선생의 서찰은 지속하여 그곳으로 배달되어 왔고 나는 소사북국민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했다.
4. 내가 소사북국민학교를 졸업하던해인 1974년 부천군 소사읍은 부천시로 승격하여 서울의 위성도시가 되었다. 주소도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 199-2번지로 바뀌었고 지운 선생이 보내오는 서찰주소에는 꼭 가로열고 북국민학교앞 가로닫고가 적혀 있었다. 나는 부천중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서울집이 있는 용산구 청파동 서울 선린중학교로 돌아갔다.
5. 부천 농장은 방치되어 원미동 사람들 집에는 부친 농장에서 키우던 식물을 마음데로 가져다가 온 동네가 꽃동네가 되었다. 국민학교 동창 태열이네 집 정원은 우리집 정원에 있던 보라빛 꽃이 아름다름 등나무로 정원이 꾸며지기도 했다. 부친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3가 107-36으로 들어가 이후 인사동을 오가며 친구분인 옥산 선생 등 서예가 동양화가 들과 어울리며 남은 인생을 보내셨다. 그때부터 지운 선생도 본격적으로 자신의 서화보급(?)에 나서게 되었다. 지운 선생의 서찰은 이곳으로 지운 선생이 작고할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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