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_091 지운서화

[4/11 - 과연 지운 선생은 종다리를 울릉도에 가지고 가셨을까?]

忍齋 黃薔 李相遠 2020. 11. 12.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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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4/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4번째 작품 [과연 지운 선생은 종다리를 울릉도에 가지고 가셨을까?]이다. 해설은 양금섭 교수님의 해설을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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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意東君 又復情

羣生俾得 邀善鳴

仁鳳猶及 痴聾痼

鼓舞相通 聲外聲

*東君 : 종다리를 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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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를 노래하려는데 정 또한 깊어서

뭇생명을 좇아 좋은 울음소리를 맞아 얻었네.

착한 봉새 소리가 오히려 귀머거리에게 미치니

북장단과 춤사위가 소리 밖의 소리로 서로 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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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酉(1975)春 謹和 遲耘 仁兄 雲雀詩 毅弟” 詩與書掛於壁右 而時吟時味 如對逝友之淸儀 丁巳(1977)春 八十五翁 芝雲

“을유년 봄 삼가 지운 인형의 종달새시에 화운하다. 의재 아우”. 시와 글씨를 벽 위에 걸어 놓고서 때때로 음미하면 벗과 이별하는 청아한 정면을 마주 대하는 듯하다. 1977 봄 85세 늙은이 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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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지운 선생은 종다리를 울릉도에 가지고 가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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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검색하면 이제는 제법 '종달새 할아버지'로 지운 선생과 종달새에 대한 인연을 소재로 이런저런 글들이 검색이된다. 또 지운 선생과 사사로운 인연이 있었노라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부안 백산 대수리에 들어가는 버스정류장 앞 점빵에는 동네 경찰이 상주하기도 하고 또 점빵 아줌마가 대수리 지운 선생댁을 오가는 사람들을 경찰서에 보고하는 모습을 쉽게 볼수 있을 정도로 군사정권의 감시를 받던 지운 선생은 종다리와 울릉도가 숨 한번 제대로 쉴수있는 숨통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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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선생은 진달래 묘목과 종달새 3쌍을 들고 울릉도로 향했다. 실제 함께할 지인들을 꾸려 도전은 그 이전에 3차례가 있었으나 기것 포항에 도착하였더니 기상이 좋치않아 울릉도행이 무산되기도 했다. 그러다 4번째 도전만에 포항에서 무사히 울릉도행 배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포항에 다다르기 전에 종다리 한쌍이 죽었고 또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배안에서 나머지 두쌍이 죽어서 결국 지운 선생의 종다리는 울릉도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말았다. 결국 요란한 종다리 사육 덕에 우리에게 '종달새 할아버지 지운 김철수'를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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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선생은 군사정권의 감시 덕분에 대수리를 벗어날때 마다 명분이 필요했다. 종다리는 최소 3~4년은 대수리를 벗어나기에 충분한 명분을 주었다. 비록 울릉도에 종달새를 이식하지는 못했지만 울릉도와 독도에 한국의 토종 텃새 종다리를 이식해서 일본이 날름거리는 속내를 막는데 일조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아쉽게도 종다리의 삶터인 보리받과 밀밭이 남한땅에서 사라져 버렸다. 남한 전체가 이제는 보리밭 상공을 차고 올라가 지지배배 코르르 하는 종다리의 상쾌한 노래소리를 잊어버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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