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방원 선생의 유품 서화보따리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화가 나오고 또 나온다.
.
댓글로 양급섭(Kyzbma Yang) 교수님께서 소동파의 적벽부라고 아래와 같이 알려 주셨다.
"순서 제대로 잘 맞추어 놓았구만!
그 유명한 소동파의 <적벽부>네.
麗末 朝鮮年間에 조선인애송시 빌보드 차트에서 No.1을 놓치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하고.
蘇의 反髙麗 성향에도 불구하고. 마치 섬것들 反韓 정서 속에서도 BTS 음악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듯이.
심지어 현대문학 전공인 꾸지마도 청춘시절엔 이걸 다 암송했었을 정도.
未堂 선생께서 만년까지 당신이 기거하시는 방 아랫목에 세워둔 두폭 병풍도 바로 이 적벽부. 후반의 蘇子曰부터 끝까지를 초서로 쓴 것이었지."
.
하여 적벽부(⾚壁賦)를 찾아보았다.
.
적벽부(⾚壁賦)는 송나라의 소식(蘇軾, 1037년 1월 8일~1101년 8월 24일)의 작품이다. 소식의 호는 東坡이며 당송 8대가의 한명으로 아버지, 동생과 더불어 한 집안 인물이 당송을 대표하는 문인으 로 자리하여 삼소(三蘇)로 불린다. 소동파는 글뿐 아니라 서화, 그림에도 능하였다. 소동파는 왕안석과 대립하여 좌천되어 중국 호북성 황주에 유배되어 있을 당시 그 곳에다가 세웠던 서재의 이름을 따서 동파거사라 하였다. 1082년 가을과 겨울 황주 성벽 적벽에서 놀면서 지은 작품이 적벽부(⾚壁賦)다. 7월에 지은 것이 ‘전적벽부’라 하였고 10월에 지은 것을 ‘후적벽부’ 라 고 하였으며 그의 대표작이다.
.
적벽부는 소동파가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며 적벽대전의 영웅인 조조와 주유를 회상하면서 인생이란 덧없는 것이며, 무한한 본체의 관점에서 만 물이 다 같은 것임을 깨닫고 시름을 잊는다는 내용으로 대구법과 대화법으로 노래한 것이 주요내용이다.
.
그 구성은 적벽의 야경과 흥취, 주흥, 이 어서 손이 말하고 소자가 이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며 마지막에서 두 사람의 화해를 노래하였다. 잘 된 해석 하나를 인터넷에서 찾아 올린다. 출처는 2017년 5월 4일 사단법인 국어고전문화원 목요반의 고전 낭송반원들이 합작하여 해설한 내용이다.
.
적벽부(赤壁賦)
.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 泛舟遊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임술지추 칠월기망 소자여객 범주유어적벽지하. 청풍서래 수파불흥.
임술(壬戌)년 가을 7월 기망(旣望)에, 소자(蘇子;소동파)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
擧舟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거주촉객 송명월지시 가요조지장. 소언, 월출어동산지상 배회어두우지간.
술을 들어 손께 권하며 명월(明月)시를 외우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니, 이윽고 달이 동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 견우성(牽牛星)사이를 서성이더라.
.
白露橫江 水光接天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백로횡강 수광접천 종일위지소여 능만경지망연.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어졌고, 한잎의 갈대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는구나.
.
浩浩乎 如憑虛御風 而不知其所止
호호호 여빙허어풍 이부지기소지.
넓고도 넓구나,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탄듯하니 그칠 데를 알 수 없구나.
.
飄飄乎 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於是 飮酒樂甚 扣舷而歌之
표표호 여유세독립 우화이등선 어시 음주락심 구현이가지
초연히 나부껴 인간 세상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 돋치어 신선(神仙)된 듯 오르는 것 같더라. 이에 술마시고 흥취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 하니,
.
歌曰 桂棹兮蘭漿 擊空明兮泝流光 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가왈 계도혜난장 격공명혜소류광 묘묘혜여회 망미인혜천일방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삿대로 물에 비친 달을 쳐서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네. 아득한 내 생각이여, 아름다운 사람(美人)을 하늘가에 바라보도다."
.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其聲嗚嗚然 如怨如慕 如泣如訴
객유취통소자 의가이화지 기성오오연 여원여모 여읍여소.
손님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연 하는 듯,
.
餘音嫋嫋 不絶如縷 舞幽壑之潛蚊 泣孤舟之嫠婦.
여음요요부절여루 무유학지잠문 읍고주지리부.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게하고, 외로운 배를 의지해 살아가는 과부를 울릴레라.
.
蘇者 추然正襟 危坐而問客曰 何爲其然也?
소자추연정금 위좌이문객왈 하위기연야?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르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하여 그러한가?" 하니,
.
客曰 : 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객왈 : 월명성희 오작남비 차비조맹덕지시호?
손님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니던가?
.
西望夏口 東望武昌 山川上繆 鬱乎蒼蒼.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
서망하구 동망무창 산천상무 울호창창. 차비맹덕지곤어주랑자호?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하고 푸른데, 여기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치른 데가 아니던가?
.
方其破荊州 下江陵 順流於東也 軸艫千里 旌旗蔽空
방기파형주 하강릉 순류어동야 축로천리 정기폐공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격파하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감에,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가니,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
釃酒臨江 橫槊賦詩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시주임강 횡삭부시 고일세지웅야 이금안재재?
술을 걸러 강가에 가서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일 진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
況吾與子 漁樵於江渚之上 侶魚蝦而友糜鹿
황오여자 어초어강저지상 여어하이우미록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
駕一葉之輕舟 擧匏樽而相屬 寄蜉蝣於天地 渺滄海之一粟.
가일엽지경주 거포준이상촉 기부유어천지 묘창해지일속.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 술잔 들어 서로 권하고,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의지하니 아득히 넓은 바다의 한알의 좁쌀알이로구나.
.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挾飛仙以遨遊 抱明月而長終 知不可乎驟得 託遺響於悲風
애오생지수유 선장강지무궁 협비선이오유 포명월이장종 지부가호취득 탁유향어비풍
우리 인생 짧음을 슬퍼하고 장강(長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 알 새, 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
.
蘇者曰: 客亦知夫水與月乎?
소자왈: 객역지부수여월호?
소자 말하되 "손님꺼서도 대저 물과 달을 아시는가 ?
.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서자여사, 이미상왕야. 영허자여피 이졸막소장야.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개장자기변자이관지 칙천지증불능이일순
무릇 변하는 것에서 보면 천지도 한 순간일 수 밖에 없으며,
.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자기불변자이관지 즉물여아개무진야 이우하선호?
변하지 않는 것에서 보면 사물과 내가 모두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차부천지지간 물각유주
또, 대저 천지 사이의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구비오지소유 수일호이막취 유강상지청풍 여산간지명월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한 터럭일지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이득지이위성 목우지이성색 취지무금 용지불갈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者之所共適
시조물자지무진장야 이오여자지소공적
이는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
客喜而笑 洗盞更酌 肴核旣盡 杯盤狼藉 相與枕藉乎舟中 不知東方之旣白.
객희이소 세잔갱작 효핵기진 배반낭자 상여침자호주중 부지동방지기백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
+++
5 | 4 | 3 | 2 | 1 |
10 | 9 | 8 | 7 | 6 |
'0. 韓山李氏 > _091 지운서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7/11 - 지운 선생의 역사 속의 공적과 과오] (0) | 2020.11.15 |
---|---|
[6/11 - 노 혁명가의 식솔들에 대한 연민] (0) | 2020.11.15 |
[5/11 -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재 허백련 선생 그리고 우장춘 박사의 인연] (0) | 2020.11.12 |
[4/11 - 과연 지운 선생은 종다리를 울릉도에 가지고 가셨을까?] (0) | 2020.11.12 |
[3/11 - 지운 선생의 종달새 프로젝트와 나] (0) | 2020.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