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4_외국이야기

[버마 쿠데타와 조현천]

忍齋 黃薔 李相遠 2021. 2. 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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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의 전 국가고문  아웅산수지 (왼쪽)와 버마 쿠데타 주동자  민 아웅 흘라잉 (중앙) 그리고 박근혜 친위쿠데타를 불발하고 미국으로 도망간 조현천 (오른쪽)


1988년 미국에 유학왔을 때 버마(Burma) 유학생들과도 잘 어울려서 ‘단단진’이라는 노처녀 버마 유학생을 한국유학생 노총각과 짝을 이루게 하려고 애를 쓴적이 있어서 버마인은 성이 없고 또 버마와 미얀마가 그게 그거라는 걸 잘 압니다. 원래 버마 이전 이름이 미얀마였는데, 영국이 식민 지배를 하면서 버마족의 이름을 따와 버마라고 바꾼겁니다. 그러니까 ‘미얀마’에서 ‘버마’로 또 ‘미얀마’로 돌아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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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개칭하기 전에는 ‘버마’라고 불렀습니다. 국기도 바뀌었습니다. ‘버마’는 미얀마에서 가장 많은 민족인 버마족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버마족이 약 68%에 달하지만 무려 135개나 되는 소수민족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민족을 아우른다는 의미로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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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제사회 여론 때문에 국가명을 변경했는데도 미국에서는 여전히 버마로 부릅니다. 미국 등 여러 나라가 미얀마는 군정부가 임의로 개칭한 국호라 군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버마를 고수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와 ‘아웅산수지’를 지지하는 의미로 이 글에서 저도 ‘미얀마’라 부르지 않고 ‘버마’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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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는 5년 전 민주진영 총선 승리로 53년 만에 군부독재를 벗어나 문민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버마 군부가 2021년 2월 1일 새벽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수지(Aung San Suu Kyiㆍ75) 국가고문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을 구금하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어렵게 만든 문민정부는 군부가 겨눈 총구 앞에 5년 여 만에 물거품 위기에 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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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전문가 답게 다시 권력을 잡은 군부는 순식간에 문민정부의 장·차관 24명의 직을 박탈하고, 군사정부에서 일할 국방·외무 11개 부처 장관을 새로 지명했으며, 언론도 장악했습니다. 국영TVㆍ라디오방송은 ‘기술적 문제’로 방송을 할 수 없다고 발표했고, 인터넷과 전화도 끊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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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군은 TV를 통해 쿠데타를 일으킨 당일인 2월 1일 “선거부정에 대응해 구금조치들을 실행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11월 8일 치러진 총선에서 아웅산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전체 선출 의석 476석 가운데 396석(83.2%)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트럼프처럼 선거결과를 부정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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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명부에서 860만 명가량이 실제와 차이가 있다는 주장인데, 이는 전체 유권자 3700만 명의 약 23%에 해당합니다. 선거 결과가 뒤바뀔 수는 없는 숫자이긴 하지만 적은 숫자는 아닙니다. 군부는 선거 부정을 명분으로 앞세우지만 근본 원인은 기득권을 내려놓기 싫은 군부의 사리사욕과 불완전한 버마의 민주주의가 만들어 낸 예고된 사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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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020년 11월 8일 치러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아웅산수지 정부는 2015년에 이은 2기 문민정권입니다. 2015년 총선에서도 대승을 거둬 53년 만에 군부독재를 종식한데 이어 또 버마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던 겁니다. 정권을 재창출했지만 군부정권이 2008년 만든 신헌법안의 독소조항 때문에 문민정부와 군부는 불편한 동거를 이어왔습니다. 그 신헌법안의 독소조항이 바로 불완전한 버마의 민주주의 였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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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법안의 독소조항은 군부에 상ㆍ하원 의석의 25%가 할당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방부·내무부·국경경비대 등 주요 3개 부처 장관 지명권도 군부에게 있습니다. 치안 및 안보, 국방 관련 등 실질적인 권력은 군부가 장악하고 있고 비상사태 때는 군부가 정권을 넘겨받을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군부가 선거부정 운운하는 이유를 앞세워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도 이 신헌법안의 독소조항을 악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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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수지 문민정부가 멍청해서 그동안 신헌법안의 독소조항을 개정하지 않은게 아닙니다. 헌법 개정시엔 필요한 찬성표가 75%가 되어야 하는데 의회 의석의 25%를 군부가 쥐고 있으니 개헌은 원천봉쇄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사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 유신헌법 같은 신헌법 개헌이 추진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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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수지 고문은 지난 총선에서 군부에 할당된 의석수를 15년에 걸쳐 줄인다는 계획이 담긴 개헌안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웅산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작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문민정부 2기가 탄생하자 기득권을 뺏기게 생긴 군부가 결국 구실을 만들어 총을 들어 기득권 수호에 나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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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된 아웅산수지 고문이 성명을 통해 국민에게 쿠데타를 거부하고 항의 시위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고 합니다. 이 성명은 이미 군부의 기득권 수호 쿠테타를 예견하고 감금 될 경우 국민들에게 발표하도록 사전에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2015년 총선에서 NLD가 승리했지만 아웅산수지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습니다. 군부가 신헌법에 아웅산수지를 콕 집어 넣은 또 다른 독소조항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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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국적의 배우자를 둔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조항입니다. 그래서 2016년 NLD의 대통령 후보인 틴초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이후 아웅산수지는 군부의 속셈데로 비판을 받게됩니다. 헌법에도 없는 국가고문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대통령 위에 군림했다며 헌법 유린의 주범이라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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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아웅산수지 고문은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 그리고 버마군에 의한 인종청소를 묵인 또는 동조했다는 비난도 함께 받고 있습니다. 여러 도시들이 그의 명예시민 자격을 철회했고 한국의 광주시 역시 광주인권상을 철회했습니다. 하지만 아웅산수지가 만약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에 대해 강경한 반대를 했다면 군부는 로힝야족 학살을 넘어 버마인 학살로 이어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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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버마 군부 쿠데타를 많은 나라들이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영국, 호주, 유럽 등 서방의 각국이 아웅산수지 고문 등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면서 규탄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들은 각 국의 입장에 따라 공식 반응이 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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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최대 무역 파트너로 버마에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는 중국은 “버마 각측이 헌법과 법률의 틀에서 갈등을 적절히 처리하면서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고 짤막하게 논평했습니다. 중국의 영향력에 맞서고 있는 인도 역시 비난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철권 통치자들이 이끄는 태국, 캄보디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도 버마 국내문제라면서 간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자국의 이익 앞에서 민주주의는 걸레쪼가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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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인의 이름에는 성씨가 따로 없습니다. 이름만 있고 그 이름마저도 본인 마음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아웅산수지’ 여사의 이름에서 ‘아웅산’은 버마의 독립 운동가이자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자신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고, ‘수지’는 ‘모으다’는 뜻의 ‘수’와 ‘맑다’라는 뜻의 ‘지’를 합친 말입니다. 영국에 유학 할 때 서류에 성씨가 필요해서 아버지 이름에 자기 이름을 붙여서 지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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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버마어 이름이므로 음절 단위로 끊어서 ‘아웅 산 수 치’로 표기합니다. 하지만 ‘수치’라는 말이 한국어에서 ‘수치스럽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을 알게된 아웅산수지 고문이 수지 혹은 수찌로 바꿔달라고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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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이라는 단어는 한국사람들에게 충격적인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1983년 10월9일 버마에서 발생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입니다. 당시 버마의 군사독재를 배우기 위해 방문 중이던 독재자 전두환을 암살하려던 북한의 폭탄테러로 죽어야 할 전두환은 안죽고 대신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등 한국 정부 수행원 17명이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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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수지의 75년 인생역정도 만만치 않습니다. 1945년 버마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2살 때 부친이 암살당하자 인도와 영국에서 성장했습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하고 뉴욕 유엔본부에서 일하다가 1972년 영국인 마이클 에엉리스와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주부로 살던 그녀는 1988년 4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말에 버마에 왔다가 인생이 뒤바뀌었습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 학생, 승려들이 군대 총칼에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해 8월 그녀는 50여 만 명이 운집한 양곤에서 유명한 연설 ‘공포로부터의 자유’로 버마 민주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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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명연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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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공포입니다.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키고, 권력의 채찍에 대한 공포는 거기에 복종하는 사람을 타락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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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한 이듬해인 1989년부터 15년간 아웅산수지는 군정에 의해 가택연금돼 창살없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1990년 아웅산수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뒀지만 군부는 정권이양을 거부했습니다. 1991년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에 선정됐지만 가택연금상태라 남편과 두 아들이 대신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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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수지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직접 평화상 수락연설을 한 건 21년 뒤인 2012년입니다. 1995년 처음 석방됐지만 여러 차례 석방과 가택연금을 오간 끝에 15년만인 2010년 온전한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그동안 광주시를 비롯한 여러나라는 수많은 인권상과 명예시민권을 아웅산수지에게 주었고, 버마 국민들은 ‘아메이 수(어머니 수지)’라 부르며 사랑를 선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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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 시청 청사 바깥에는 군인들이 배치됐고 시민들은 시장으로 달려가 쌀, 컵라면, 기름 등을 사재기하고 있습니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는 돈을 뽑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고 은행들은 영업을 중단했습니다. 버마 내 모든 여객기 운항도 중단됐습니다. 양곤 국제공항이 5월까지 폐쇄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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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군부는 일단 1년간 비상사태를 선언했고 1년이 지나면 새로운 총선을 실시해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군부가 계엄령 등 강력한 압제로 여론과 민의를 막을 경우 새 총선이 민주적으로 치러지기 어렵고 전두환이도 써먹었 듯 국민들의 시위를 유발할 것이고 군부는 나라 안정을 핑계로 다시 무력을 사용해 탄압하여 군부독재를 이어갈겁니다. 이미 미국 등 세계 각국으로 이민을 간 버마 국민들은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국제사회가 개입하면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으로 발전할수가 있어서 더 큰 희생이 발생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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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버마 군부는 세계가 온라인 민주세계를 영위하는 2021년에도 세계 인류를 조롱하듯 쿠데타를 강행할 수가 있는 겁니다. 박근혜 탄핵당시 쿠데타를 준비했다가 불발하고 미국으로 도망친 조현천이도 한국국민의 민주주의 성숙도가 쿠데타를 불발하게 만든줄 모른체 아다리가 안맞아 불발했다고 꿍시렁거리며 미국 잠행을 계속하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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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2021년에도 민주주의는 민중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한치의 어긋남 없이 예고하고 있습니다. #SaveMyan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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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의 전 국가고문 아웅산수지 (왼쪽)와 버마 쿠데타 주동자 민 아웅 흘라잉 (중앙) 그리고 박근혜 친위쿠데타를 불발하고 미국으로 도망간 조현천 (오른쪽)
제사회가 개입하면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으로 발전할수가 있어서 더 큰 희생이 발생

버마 친구들이 민주주의가 회복하도록 도와달라고 합니다. 군부를 국제사회가 용인하지 않토록 널리 알려 달라고 합니다. 어찌하면 좋은가를 물어봅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산다고 원칙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미 많은 피를 흘리며 얻었던 버마의 민주주의였다고 합니다. 피가 부족했으니 군부가 다시 총부리를 겨눈거라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내가 도와줄 일은 페이스북 담벼락에 소식을 알리는 길 밖에는 없는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살인마 #전두환 을 처형하지 않으면 완결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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