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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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농(石農) 홍일선(洪一善) 시인]

忍齋 黃薔 李相遠 2022. 2. 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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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컴퓨터를 켜니 "노작 홍사용 문학 기념사업회 이사장 홍일선입니다."라는 이메일이 한 통 도착해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올렸던 '노작 홍사용과 성우 이명직 어른'에 대한 게시글을 보고 '농부 시인 홍일선(洪一善)' 선생님이 보내오신 이메일입니다. 외롭게 조상의 흔적을 찾아 정리한 보람이라고 생각하니 바쁜 일과였지만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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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치를 해보니 석농(石農) 홍일선(洪一善) 시인은 1950년 경기도 화성 동탄면 석우리 돌모루에서 태어나 1980년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쑥꽃」 외 5편으로 등단한 중견 작가입니다. 홍일선 시인의 아버님이 노작 홍사용 선생님의 6촌 형제이니 홍일선 시인은 노작 홍사용 선생님의 7촌 조카로 민법상 8촌 이내에 해당하니 일가친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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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마침 할아버지 기일이 겹쳤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조부님 제사를 준비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노환으로 병치레 중인 부친을 돌보는 연로한 모친은 한숨만 내쉬고 있었습니다. 큰집에서 가져갔던 제기도 이미 돌아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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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형에게 전화했더니 자기는 천주교식으로 간소하게 기념한다고 막내아들인 저보고 제사를 미국으로 가지고 가라 하더군요. 그래서 제 각시와 제수를 준비하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사에는 큰형과 작은형이 참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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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학생부군제위라 쓰여 있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던 족보도 옥편을 뒤져가며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제 할아버지 7살 때인 1915년 동탄 돌머루에서 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일제에 독살을 당했고 11살 때인 1919년 제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일제에 참살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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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제 할아버지는 만주를 떠돌며 조선인과 몽골인들에게서 쌀을 수집해서 되파는 미곡 수집상을 하며 사시다가 해방이 되어 귀국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상에 대해서 아는 게 없이 그냥 제사만 지냈던 거지요. 그래서 제가 실록을 뒤지고 양반가 일기들을 뒤져서 조상의 흔적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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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할아버지의 다른 후손들이 만주에 가서 사시던 제 조부를 실종 사망신고를 하고는 동탄의 논과 밭을 처분했고 산은 종중의 위토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일본강점기 토지조사부를 찾아보니 고양에 미등기 토지도 찾았고 다른 토지를 위토로 만들어 갈취하려고 먼 일가분들이 하위종중을 급조하여 만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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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미국으로 가지고 가라던 형제들은 훌륭한 조상님들의 흔적을 돌아보고 개심하여 다들 열심히 제사를 모시고 또 종중 일에도 열심인 후손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기것 찾아놓은 자료들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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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조부 이명직 대감님이 과거 급제 없이 당상관이 될 수 없다고 인신공격까지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조선에서는 과거·진사·생원시는 폐지되었습니다. 1894년 마지막 진사시가 그 당시 관리 등용의 마지막 관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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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진사시에 입격하여 본위 주사로 관직에 올라 보은·밀양·연안군수, 내장원경, 규장각직학사, 궁내부특진관을 지내고 고종과 함께 축출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쌍학이 새겨진 관복과 관대를 착용한 좌정한 사진을 남기셨습니다. 각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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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선 시인은 '노작 홍사용 문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정본<노작 홍사용 문학 전집> 발간사업을 준비 중이고 <백조> 창간100주년기념사업도 하셔야 한다고 합니다. 노작 홍사용 선생님의 기념사업을 하는 '농부 시인 홍일선' 선생님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며 여러분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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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농(石農) 홍일선(洪一善) 시인의 이메일
석농(石農) 홍일선(洪一善) 시인의 시
농부 시인&nbsp;석농(石農) 홍일선(洪一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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