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7_20세기100선

061-3/3.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 Vladimir Ilyich Lenin

忍齋 黃薔 李相遠 2024. 11. 4.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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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2/3. 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 Vladimir Ilyich Lenin으로 부터

061-3/3.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 Vladimir Ilyich Lenin

https://youtu.be/ilEhEjVcZIU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09/11


https://youtu.be/zybPJZOLYqU

 

 

 

 
061. 브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 What is to be done? by Vladimir Ilyich Lenin,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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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청년 시절 가슴에 품고 다니며 수없이 읽었던 책이 있습니다. 앞시대의 인민주의 혁명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가 1863년 감옥에서 쓴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였습니다.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이 나온 지 40년 뒤 1902년에 레닌은 똑같은 제목의 정치 팸플릿 ‘무엇을 할 것인가?’를 썼습니다. 이 팸플릿은 이후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숙지해야 할 ‘혁명의 교과서’가 됐습니다.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과 이름은 같지만, 이 책은 농민 중심의 혁명주의라 할 인민주의 전통과 전혀 다른 혁명방법론을 내세웠습니다. 우선은 혁명의 동력을 농민이 아닌 프롤레타리아에게서 찾았다는 점에서 달랐으며, 더 중요하게는 프롤레타리아의 ‘자생적 의식’을 지도하는 의식화된 혁명 전위 세력을 앞세웠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프롤레타리아의 외부에서 혁명적 계급의식을 가르치는 지도부가 따로 있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그 의식을 구현한 중앙에 권력이 집중돼야 한다는 중앙집권주의로 이어졌습니다. 레닌에게 있어서 ‘자생성’이란 맑스와 엥겔스가 ‘현재의 상태’라고 말한 것과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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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기회주의자들은 바로 ‘현재의 상태’에 굴종한다는 이유로 비판받습니다. “가능한 투쟁이 바람직한 것이며 현시기에 진행되고 있는 투쟁이 바로 가능한 것이라는 강령, 이것이야말로 자생성에 수동적으로 순응해 가는 끝없는 기회주의의 경향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생성을 찬양하는 것은 현재 있는 그것이 액추얼한 것이든 버츄얼한 것이든, 어쨌든 리얼한 것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마르띄노프, 끄리체프스끼를 비롯한 ‘노동자의 대의’의 ‘경제주의자’들이 한심한 것은 경제투쟁을 통한, 혹은 경제투쟁에 있어서의 노동자 활동성의 상승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그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주장’이 요구하는 사태가 혁명가들의 어떠한 ‘주장’이나 노력 없이도 이미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이미 존재하는 ‘현재의 상태’를 찬양하고, 그것이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되는양 떠벌리는 것은 실천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생성에의 굴종”은 실천적 활동의 죽음입니다. 삶은 계속되고, 반란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삶과 반란을 변형시키고 조직하는 일, 결과적으로 그것을 제도화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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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의 배경 Background of Vladimir Ilyich Lenin and What is to be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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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16세때인 1887 5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생이던 형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가 제정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 3세의 암살 계획 혐의에 연루되어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레닌의 형 알렉산드르는 좌익 서적을 연구하고 반정부 시위를 조직한, 농민층이 농민 코뮌을 형성함으로써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를 수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 농업사회주의나로드니키 운동에 가담했었습니다. 그해 가을, 레닌은 카잔제국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레닌은 학생회를 금지한 정부 규제에 반대하는 12월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경찰은 레닌을 체포하고죽은 레닌의 형이 과거에 알렉산드르 3세 암살계획에 가담한 자이고 또 학생시위의 주모자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퇴학당했고, 정부는 그를 가족이 있는 코쿠쉬키노로 추방했습니다. 그곳에서 레닌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 (Nikolay Chernyshevsky)’ 1863년 혁명소설무엇을 할 것인가?’에 매료되어 그 책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그 책을 읽었습니다. 그 이후, 1901년에 건전한 이론적 원칙 위에 혁명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러시아 혁명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와 같은 제목으로어떻게 해야 하는가? - 우리 운동의 불타는 질문들 (Burning Questions of Our Movement)”작성하고 1902년에골격 계획 발전시켜 정치 팜플렛으로 이 책을 출판했습니다.  

5.

레닌의 이 걸작은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나오는 기본 사상들의 발전이며, 둘은 함께 읽어야 합니다. 이 책에서 노동계급에게 마르크스주의를 교육하기 위해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노동자들 사이에 마르크스주의 정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의식화된 헌신적인 혁명가들로 구성된 정당 또는 전위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레닌을 도와 볼세비키 혁명을 성공시킨 조선인 혁명동지 김 알렉산드라 페브로브나 스탄케비치, 이동휘, 박진순 등도 의식화된 전위대였습니다. 이분들로 인해 레닌은 조선인과 조선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철수의 증언에 의하면, 레닌은 혁명동지 노비출신 김 알렉산드라 페브로브나 스탄케비치를 통해 조선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평소 조선인 혁명가 들에게조선이 망한 이유는 조선의 여인들을 교육시키지 않아 조선의 여인들이 일자무식이었기 때문이라 말하며 조선의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이후 일제점령기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에 여성교육기관이 여기저기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동휘는 볼세비키 국제당 원로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20년 레닌은 혁명동지들인 러시아 한인사회당의 이동휘, 김집, 박진순 등에게 조선인들은 공산주의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민족주의 운동부터 한 다음에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거쳐 공산주의 혁명을 이룩해야 한다고 조언하며 조선의 김철수가 창당한사회혁명당의 강령을 바탕으로 조직적으로 연합하여 상해에서 상해파 고려공산당을 창당하여 볼세비키 국제당의 형제당으로 조선, 중국, 일본 등 동북아 공산혁명의 지도당의 해달라 부탁하였습니다.

6.

레닌은 당시 기준으로 약 80만 달러, 지금 기준으로 약 1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괴 200만 루블를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혁명자금으로 지불했습니다. 이 돈은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이동휘가 보낸 한형권과 김립에 의해 30만 루블씩 분할 운송되었는데, 자금의 분배 과정에서 여운영이 관련된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에게는 지불되지 않아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러시아 영토안의 공산당이기때문에 볼세비키의 11국 정책에 반하여 러시아 공산당 산하의 단체로 보아 국제 공산혁명 자금이 배당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상해파 고려공산당과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간의 자금 갈등은 곧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에도 알려졌고, 김구는 상해파 고려공산당이 레닌에게 지원받은 혁명자금을 몽땅 임시정부에 내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면직·노종균을 보내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양산춘이란 가명을 사용하던 상해파 고려공산당 자금책 김립을 상해 길거리에서 사살하고 통장과 인감을 갈취하기도 했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What is to be done?)’를 시작합니다. 이후, 레닌은 부르주아 혁명단계를 생략하고 곧장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추진해야 하며, 혁명의 방법은 무력으로 달성해야 되고 그 주도세력은 프롤레타리아가 되어야 하고 믿을 수 있는 동맹자는 오직 농민과 노동자들 뿐이라는 폭력혁명론을 주장하여 191710월 인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볼세비키 프롤레타리아 무혈혁명을 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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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의 내용 – Content of What is to be done?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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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 (Nikolay Chernyshevsky)’ 1863년 혁명소설무엇을 할 것인가? (What is to be done?)’ - 이미 언급했듯 무엇을 것인가?( What is to be done?)’ 러시아의 철학자이자 언론인이며 문학평론가였던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가 1863년에 쓴 소설입니다. 이 책은 하나의 혁명적 선전으로 레닌을 포함한 당대의 급진적인 젊은 독자들과 후대의 혁명가들에게 지침이 되었던 작품입니다. 무엇을 것인가? 베라 파블로브나라는 젊고 똑똑한 중산층 계급의 여자가 잡계급 (разночинцы)’ 지식인 출신의 로푸호프와 그의 친구 키르사노프를 만나 지적, 사회적, 혁명적으로 성숙해 가는 성장소설로, 꿈같은 이상향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작품에서 그는 1860년대의 세대들에게 다가올 미래에 있을 유토피아적인 청사진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지상에 실현하기 위해지금무엇을 것인가와 무엇이란 단기 목표를 어떻게 하면 성취할 있을 것인가를 등장인물인새로운 사람들 예를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떻게 살아야 것인가, 각각의 상황에서 무엇을 것인가 등의 커다란 목표에 대한 해답뿐만 아니라, 식생활, 의생활, 결혼 생활, 삼각관계, 이익 분배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제반 문제에 관한 해답이 상세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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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열심히 일하고 사이좋게 이익을 분배해서 모두가 잘살게 되는 사회, 모두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영원한 봄과 여름, 그리고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사회, 이런 꿈같은 이상향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작품입니다. 레닌이 러시아 혁명을 결심하게 만든 혁명가의 필독서입니다. 인간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한 논의는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습니다.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나 루소가, 동양에서는 공자나 맹자가 인간의 본성은 지극히 선하며, 선은 타고나는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생득적인 착한 성품을 지니고 태어나며, 인간이 악해지는 이유는 환경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똑같은 사고를 체르니솁스키의 작품 무엇을 것인가?에서도 발견할 있습니다. 체르니솁스키는 인간 본성이 원래 선하며, 인간이 사악한 행위를 하는 것은 사회가 그에게 자신의 욕구와 능력을 만족시킬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사회가 개혁이 되어 배부르고 따스한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준다면 모두가 자신의 선한 본성으로 돌아가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낮은 차원에 머물고 있는 일반적인 민중이 쉽게 따라 있고, 그래서새로운 사람 있는 매뉴얼을 아주 자세하게 예를 들며 소개하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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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의 시작부터 소비에트 정권이 붕괴할 때까지, 체르니솁스키는 혁명과 소비에트 정권의 상징이자 우상이었고, 1860년대 과격한 잡계급 출신의 인텔리겐치아들뿐만 아니라, 후의 모든 혁명가들과 소비에트 러시아의 엘리트들에게 찬양과 감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을 것인가?’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혁명적 선전이었고, 목표와 목표 달성을 위한 행동 지침서였습니다. 그것이 작가 체르니솁스키의 의도였으며, 당대 급진적인 젊은 독자들과 후대의 혁명가들도 작품 등장인물들을 자신의 모범으로 삼아 그들의 행동 방식과 사고방식을 모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18세기 이후 러시아 문학계를 주도한 귀족 작가들이 보여 주었던잉여 인간 전통을 확립한 카람진의 카람진 단편집, 이러한잉여 인간 반박하여새로운 사람들의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한 체르니솁스키의 무엇을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것인가? 이상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 함께 비교해서 읽어 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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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Vladimir Ilyich Lenin)’무엇을 할 것인가? (What is to be done?)’ - 레닌은 1901년 초에 건전한 이론적 원칙 위에 혁명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우리 운동의 불타는 질문들 (Burning Questions of Our Movement)’라는 기사를 작성했고 이 기사의 골격 계획 발전시켜 1902년에 레닌이 애독하던 체르니셰프스키의 1863년도 소설 작품 무엇을 할 것인가? (What is to be done?)’소설 제목을 그대로 자신의 정치 팜플렛의 제목으로 사용하여 출판했습니다. 레닌의 이 걸작은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나오는 기본 사상들의 발전이며, 둘은 함께 읽어야 합니다. 글의 중심 초점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데올로기적 형성입니다. ‘무엇을 것인가?’에서 레닌은 노동계급이 임금, 노동시간 등을 놓고 고용주와 경제적 투쟁을 벌이는 것만으로는 자발적으로 정치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노동계급에게 마르크스주의를 교육하기 위해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노동자들 사이에 마르크스주의 정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의식화된 헌신적인 혁명가들로 구성된 정당 또는 전위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팜플렛은 부분적으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레닌의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분열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10/11

 

https://youtu.be/z1qebeGCH3A

 

 

11.
요점 - 레닌은 먼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 노선을 따랐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이른바 경제학적 경향에 직면합니다. 그는 베른슈타인의 입장이 기회주의적이었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알렉상드르 밀레랑 (Alexandre Millerand)’ 부르주아 정부에서 직책을 맡는 것으로 표현한 점입니다. 비판의 자유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요구에 맞서 레닌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그에 대한 대가로 비판할 동일한 권리를 가졌다는 입장을 내세웁니다. 그는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론적 문제들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사회민주주의 투쟁에는 정치적, 경제적, 이론적 가지 형태가 있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입장을 상기시킵니다. 레닌은 노동자들이 고용주와의 경제적 갈등이나 파업이나 시위와 같은 자발적인 행동을 통해 계급의식을 자발적으로 발전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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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혁명가들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널리 알리고 노동자들을 가입시키기 위한 정당을 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닌은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고용주와의 경제적 투쟁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계급적 정치의식은 오직 외부로부터만 노동자들에게 전달될 있습니다. , 경제적 투쟁의 바깥에서만,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관계의 영역 밖에서만이 가능합니다. 지식을 얻을 있는 유일한 영역은 국가와 정부에 대한 모든 계급과 계층의 관계 영역, 모든 계급 간의 상호관계 영역입니다. 레닌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에서 일어난 파업의 물결을 회고하면서 모든 나라의 역사는 노동계급이 오로지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만 노동조합 의식을 발전시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썼습니다. , 노동 조합 등으로 결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럽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사회주의 이론은 무산계급의 교육받은 대표자들”, 지식인 또는 혁명적 사회주의 지식인들 산물이었습니다. 레닌은 현대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와 엥겔스 자신들이 바로 부르주아 지식인에 속했다고 말합니다.
13.
소개 -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초기에, 비록 처음에는 불분명했지만, 개의 분리된 경향들 사이에는 구분선이 있었습니다. 번째, 혁명적 경향은 노동계급에 기초를 두었고 차르주의의 혁명적 전복이라는 전망을 노동자 권력을 위한 투쟁과 연결시켰습니다. 번째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립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계급 협조와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복종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설교한 개량주의적 경향이었습니다. 이것이 본질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경제학자들 사이의 의견 불일치의 시초였습니다. 다른 모습으로, 동일한 투쟁이 러시아 혁명 운동의 역사에서 다른 이름으로 여러 재발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동일한 논쟁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책은 운동 내부의 기회주의적 경향과 함께 기록을 바로잡는 명확한 논쟁적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을 것인가?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직업적 혁명가들을 훈련시킬 필요성입니다. 레닌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은 노동조합 서기장이 아니라 인민의 호민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레닌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노동자들의 이해 능력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노동자들은 이론을 이해할 없다 소부르주아적 편견과 싸우는 것이었고, 문학은 경제적 슬로건과 당면한 요구들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4.
그는 사회의 모든 억압받는 계층의 경험을 일반화하고 구체화하는 포괄적이고 선동적인 러시아 신문을 과정에서 필수적인 도구로 보았습니다. 노동계급의 당면한 문제들로부터 출발하여, 모든 종류의 부분적 요구들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특수한 것을 넘어서서 개별 고용주들에 대한 노동자 집단들의 투쟁에서부터, 부르주아지와 국가에 대항하는 노동계급 전체의 투쟁에 이르기까지, 일반과의 연결고리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뛰어난 논증 노선에서 레닌은 선동, 선전, 이론 사이의 변증법적 상호관계를 확립하고, 맑스주의의 소규모 세력이 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계층을 획득함으로써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을 획득하고, 후자를 통해 사회의 다른 모든 억압받는 계층을 획득할 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전략은 무자비한 이론적 명확성에 대한 주장과 함께 기념비적인 1917 볼셰비키 혁명에서 입증되었습니다. 레닌의 저작들을 통해 혁명정당의 발전은 여러 단계를 거치고 수년, 심지어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되는 복잡한 과정이라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의 출산 고통은 고통스러울 있으며 대규모 힘으로 부상하기 전에 지속적인 결정화, 재편성, 심지어 분열의 대상이 됩니다. ‘무엇을 것인가?’ 결정화의 일부였습니다. 레닌은 자발성 대한 경제학자들의 노예적 숭배에 대해 정확하게 논박하면서도, 올바른 아이디어를 과장하고 그것을 반대의 것으로 바꾸는 오류에 빠지도록 스스로를 허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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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는 사회주의 의식을 다음과 같이 외부로부터 노동자들에게 데려와야 합니다. 모든 나라의 역사는 노동계급이 오로지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만 노동조합 의식을 발전시킬 있다는 , 노동조합으로 단결하고, 고용주들과 싸우고, 정부로 하여금 필요한 노동법안을 통과시키도록 강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발전시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합니다. 노동계급과 사회주의 의식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일방적이고 잘못된 제시는 레닌의 독창적인 발명품이 아니라, 당시 베른슈타인에 대항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옹호자로 간주했던 카우츠키로부터 직접 빌려온 것입니다. 레닌 자신도 나중에 자신이 반대 종류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가지 방법으로 막대기를 너무 많이 구부렸다 말했습니다. 역사는 차티스트들로부터 시작하여, 투쟁하는 노동계급이 실제로 사회주의 의식에 도달할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습니다. 가지 과장에도 불구하고, 레닌의 무엇을 것인가? 오늘날 훨씬 많은 연구가 필요한 혁명정당의 중요성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레닌의 아내이자 동료인 크룹스카야는 말이 아닌 행동에서 레닌주의자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 레닌주의자가 것을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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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조주의와 비판의 자유 – ‘무엇을 것인가? 라살이 마르크스에게 남긴 인용문으로 시작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당의 투쟁은 당의 힘과 활력을 부여합니다. 정당의 약점을 보여주는 가장 증거는 당의 분산성과 명확한 경계의 흐림입니다. 정당은 스스로를 숙청함으로써 강해집니다.” 책의 분위기를 설정합니다. 이러한 충돌로부터 새로운 정치적 명확성이 생겨났고, 이는 당에 응집력과 자신감을 제공했습니다. 마르크스가 설명했듯이, 혁명정당은 발전의 단계에서 진화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일정 기간 동안 운동은 매우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외계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모든 종류의 우연한 요소를 끌어들였습니다. 운동 내부에 존재했던 이러한 기회주의적 압력은 자본주의의 압력 외에는 아무것도 반영하지 않습니다. ‘비판의 자유 사회민주주의를 노동조합의 채널로 몰아내려는 경제학자들이 설파하는 유행하는 슬로건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민주당의 역할을 사회혁명의 정당에서 개혁의 민주주의 정당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소위 비판적 경향은 기회주의의 다른 브랜드, 부르주아적 사상과 부르주아적 요소를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 도입할 있는 자유입니다.
17.
로바치예 디엘로(Robacheye Dyelo)’ 슬로건의 주요 대변자였으며,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신문이었습니다. 레닌이 경제주의라고 규정한 근본적인 정치적 신조는 노동자들이 경제적 투쟁, 임금 노동의 나은 조건을 위한 투쟁을 계속하도록 내버려 두고, 정치적 투쟁은 마르크스주의 지식인과 자유주의자들에게 맡긴다는 생각입니다. 접근법은 노동자주의의 교과서적인 예이며, 대중에게 접근하는 지름길로서 정치적 수준을 빵과 버터 문제로 낮추려는 시도입니다. 따라서 레닌은 이러한 경향은 새로운 종류의 기회주의에 불과한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설파한 이러한 단결은 혁명당 건설 내부에 외질적인 계급 사상과 세력을 허용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비평의 자유 옹호하는 사람들은 1880년대와 1890년대를 마르크스주의 문학이 로바치예 디엘로 주창한 브로드처치 태도와 함께 어떻게 꽃을 피웠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듭니다. 레닌은 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인 법적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의 동맹 덕분에, 천박한 마르크스주의 사상이 나로드니즘의 사상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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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그러한 동맹의 기초는 사회주의자들이 노동계급에게 그들의 이해관계가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와 정반대임을 드러낼 있는 완전한 기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비판적 경향들이 그들의 방식대로 했다면, 그들은 노동자 권력과 사회주의 혁명의 개념을 오래 전부터 거부해 왔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코노미스트들의 불만은 운동을 절충주의와 원칙의 결핍 종속시키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레닌은 이론적 투쟁의 중요성에 대한 엥겔스의 강조를 언급합니다. 그는 혁명 정치를 희석시키거나 포기하기 위해 만인의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 시점에서 우리는 전위투사의 역할은 가장 진보된 이론에 의해 인도되는 정당에 의해서만 수행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는 타협할 모르고 분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레닌은 그의 동료 동지들에게 그들을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사람들에 의해 으로 끌려가는 것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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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음과 같은 혁명 이론 없이는 혁명적 운동이 있을 없다. 기회주의의 유행하는 설교가 가장 협소한 형태의 실천 활동에 대한 열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점에는 사상을 아무리 강하게 주장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다음 5가지 질문을 던질수 있습니다: (1) 오늘날 노동자 차별의 예를 생각해 있습니까?, (2) 노동운동 내부의 개량주의적 환경에 편승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맑스주의적 경향을 구축하는 해로운가요?, (3) ‘비판의 자유 대한 레닌의 주장은 종종 개량주의자들과 학자들 모두에게 전체주의의 씨앗을 심는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비판에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4) 로바체이 디엘로는 실제 운동의 모든 단계가 12개의 강령보다 중요하다 마르크스의 진술을 어떤 방식으로 왜곡하는 걸까요?, (5) 어떻게 하면 진보 운동 내의 기회주의적 경향에 가장 대처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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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중의 자발성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의식 - 레닌은 현재 운동의 힘이 나라를 뒤흔드는 파업의 물결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장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약점은 혁명 지도자들의 의식과 진취성의 부족 있습니다. 1890년대 대중의 각성은 운동의 자발성이 맹아적 형태의 의식을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그러한 문제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와는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자발성 앞에 무릎을 꿇었고, 이는 전략에 대한 레닌의 신랄한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바로 지점에서 레닌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장치에 맡겨진 상태에서는 오직 노동조합주의적 의식, , 자본주의의 한계 내에서 경제적 개선을 위한 투쟁을 성취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속담의 막대기를 너무 과도하게 구부렸습니다. 가지 예를 들자면, 영국 노동계급은 한때 단순한 노동조합 의식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차티스트들은 부분적인 개혁과 청원이라는 생각에서 대국경일총파업과 심지어 뉴포트무장 봉기라는 생각으로 옮겨갔습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11/11

https://youtu.be/mxPFdBU9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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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레닌 시대 이전뿐만 아니라 공산당 선언이 작성되기 전에도 일어났습니다. 사회주의 의식의 가장 높은 표현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노동계급에 의해 제기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불행히도 논점은 극단으로 치닫고 일방적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은 건전한 논증과 함께 계급과 지도부 사이의 상호 관계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레닌은 의식적 요소 역할,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려는 라보차야 미슬 시도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중적 노동계급 운동이 과업을 결정할 것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이해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한편으로는, 이것은 운동의 자발성에 굴복하는 것으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축소시켜 성장하는 운동을 종식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은 성장하는 운동이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새로운 이론적, 정치적, 조직적 과제를 제기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대중운동이 혁명적 작업의 고난을 덜어준다고 게으르게 믿으면서 번째 해석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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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레닌은 시기를 대중의 주도권과 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해 명확하고 복잡한 임무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의 기능이 자발적 운동 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운동을 강령 수준으로 끌어올리는정신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분명히, 운동의 꼬리를 끌고 가는 것이 그것의 기능은 아니다라는 질문을 제기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대중의 자발성은 혁명가들에게 높은 수준의 의식을 요구합니다. 자주적인 이데올로기가 없이는 대중이 투쟁에서 승리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레닌은 경제학자들이 혁명적 사상을 경시하는 것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기여할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다음 5가지 질문을 던질수 있습니다: (1) 노동계급과 혁명적 지도부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요?, (2) 노동조합 의식을 넘어서는 대중의 자발성에 대한 예를 들어 있을까요?, (3) 노동자 투쟁에 개입하지 않고, 단순히 관련된 사람들의 자발적인 운동에 맡기는 것이 나쁜 생각인가요?, (4) 마르크스주의적변증법적 유물론 방법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결정적인 무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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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동조합주의 정치와 사회민주주의 정치 - 경제학자들은 정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레닌이 묘사한 정치에 대한 순전히 노동조합주의적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적 활동이 단지 노동력의 판매를 위한 나은 조건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계급과 특정 보스 집단의 관계에 국한되어서는 되며, 노동계급의 관계의 지평을 현대 사회의 모든 계급에 확대해야 합니다. 점에서, 레닌은 정치 교육이 독재정치에 대한 노동계급의 적대감을 선전하는 국한되어서는 된다고 주장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혁명가들의 역할은 노동계급에게 그들이 그들의 상사들에 의해 억압받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계급은 그런 죽을 먹어야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대신, 억압의 모든 구체적인 사례들 대한 선동이 수행되어야 하며, 이는 정치의식을 발전시키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독재정치의 모든 측면에서 독재정치를 정치적으로 폭로하는 조직을 맡지 않는다면성취될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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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은 경제투쟁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거부합니다. 그는 이것이 혁명가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임무라고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개혁을 위한 투쟁을, 전체의 부분으로서, 자유와 사회주의를 위한 혁명적 투쟁에 종속시킨다고 지적합니다. 대중의 활동과 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은 그것이 경제적 기초에 대한 정치적 선동 국한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이것은 레닌과 경제학자들 사이에 명확한 구분선을 긋습니다. 레닌은 주로 그들이 억압받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가장 정치적으로 의식적인 계층들이 시사적인 사건들과 정치적 사실들로부터 다른 모든 사회 계급의 지적, 윤리적, 정치적 삶의 모든 징후를 관찰하기 위해 배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가장 광범위한 정치적 선동인 전면적인 정치적 노출에 기초해서만 혁명가들이 수행하는 작업이 진정으로 사회민주주의적 것으로 간주될 있습니다. 레닌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당시에 전개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 비참할 정도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을 묘사하면서, 자신들이 대중운동에 뒤처져 있다 불평합니다. 자신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수치스러운 유린에 항의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 대중은 당시 사회민주당보다 적극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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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문제가 되는데, 왜냐하면 운동들의 에너지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장점들을 그들에게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사회민주주의적 경향들에 의해 이용될 있게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긴박감의 정신으로 무엇을 것인가? (What Is To Be Done?)’ 쓰여졌습니다. 이것이 레닌이 사회주의 노선에 따라 사회를 변혁하려는 노동자와 다른 사회적 지위의 무의식적 욕망을 의식화할 있는 유일한 힘인 훈련된 혁명적 지도력의 필요성에 대한 결론의 배경입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다음 5가지 질문을 던질수 있습니다: (1) 당시 레닌의 논문 통로인 이스크라(Iskra) 교의의 혁명을 삶의 혁명화보다 끊임없이 높게 위치시킨다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레닌의 주장과 결론에 대한 공정한 평가인가요?. (2) 선전가와 선동가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혁명가는 다여야 하는가요?, (3) “경제 투쟁이 대중을 정치 운동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널리 적용 가능한 수단이라는 개념이 반동적이고 해로운 개념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4) 경제학자와 테러리스트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5) 혁명가들이 인민의 호민관 되어야 한다는 레닌의 주장은 노동조합 내부의 활동을 배제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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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제학자들의 원시성과 혁명가들의 조직 - 레닌은 장의 점들을 연결하면서, 경제학자들이 설파하는 경제적 투쟁이 러시아의 중앙집권적 조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투쟁은 정치적 반대, 저항, 분노의 모든 표현들 결합하는 조직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직업적 혁명가들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아마추어적인 방법과 전망을 찬양하는 대신, 레닌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임무가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필요한 지도력이 되는 것이라고 확고하게 주장합니다. 레닌은 차르의 억압으로 인해 비밀스러운 상황에서 중앙집권적이고 혁명적인 정당을 건설하는 탄생의 고통이 느껴지는 시기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를 패배주의로 이끌거나 자발성에 굴복하려는 생각으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혁명적인 이론에 의해 인도되는 러시아 혁명가들이 진정으로 혁명적이고 자발적으로 깨어나는 계급에 의존하여 마침내, 드디어 있는 때가 왔다! 그들의 모든 거대한 힘으로 완전한 키로 일어서십시오.” 레닌은 조직이 혁명 활동을 직업으로 삼는 혁명가들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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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정당 내부에서는 노동자와 학생 사이에 어떠한 차이도 있을 없습니다. 모두가 동지이자 공산주의자입니다. 모든 편견은 외부에 남겨졌고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였습니다. 당에 관한 , 중산층 출신의 학생들은 노동자 동지들과 함께 맑스주의 사상 안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정치적으로 이전의 계급적 편견을 버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그러한 조직의 구성원들의 이러한 공통된 특성을 고려할 , 노동자와 지식인 사이의 모든 구분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역과 직업의 구별은 말할 것도 없고, 범주 모두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썼습니다. 장의 가장 핵심적인 요점은 혁명가를 아마추어의 수준으로 비하하는 것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경제학자들이 당신에게 바라는 것입니다. 대신 레닌은 당의 임무는 아마추어들을 혁명가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직 이러한 기초 위에서만 노동계급은 훌륭하게 훈련된 적들인 경찰과 헌병에 맞서 성공적인 전쟁을 수행할 있습니다. 전러시아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분명한 강조가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교반이 많은 안정성, 일관되고 이론적으로 높은 선을 얻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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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은 지난 10년이 이에 대한 증거라고 봅니다. 만약 사회민주당이 지역 출판물에 의존한다면, 이러한 출판물들이 경찰에 의해 폐쇄되기가 매우 쉬우며, 사업의 전반적인 연속성이 해를 입습니다. 따라서 지역 조직들은 러시아만을 소재로 하는 신문에 힘을 쏟아야 하며, 운동에 포괄적인 언론 선동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다음 5가지 질문을 던질수 있습니다: (1) 오늘날 개량주의자들은 레닌의 입장이 제정 러시아의 조건에만 유효한 것으로 제시함으로써 레닌의 입장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볼셰비키 당의 건설은 러시아 예외주의의 사례인가요?, (2) 레닌은 그를 비판하는 일부 사람들의 '()학생적' 편견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요? 부유한 학생들은 어떻게 자신의 계급적 배경을 극복할 있는가요?, (3) 레닌은 '전문적 혁명가' 어떻게 정의하는가요?, (4) 엄격한 비밀주의에 대한 강조는 다가오는 계급투쟁에서 우리가 진입할 것으로 기대할 있는 단계인가요?, (5)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중앙집권화의 중요성은 무엇인가요? 5 전러시아 정치신문을 위한 계획에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에 제시된 작업을 확장했습니다. 조직의 형성이 수행될 있도록 조직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정교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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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Vladimir Ilyich Lenin)무엇을 할 것인가? (What is to be done?)’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동계급에게 마르크스주의를 교육하기 위해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노동자들 사이에 마르크스주의 정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의식화된 헌신적인 혁명가들로 구성된 전위대, 의식화 그룹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이 의식화 그룹의 필요성은 일제강점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의 선조들과 군사독재하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우리들에게도 전달되어 조선의 독립과 한국에 민주화에 기여하여 현재의 선진화된 대한민국을 만든 기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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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발간된 우수하고 의미있는 책 100선 중 61번째 책 사회학 부문 번째 책 브라드미르 일니치 레닌 (Vladimir Ilyich Lenin)1902년에 출간한 무엇을 할 것인가?  (What is to be done?)’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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