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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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섭 5

[내 친구 박용섭의 어릴적부터 살아온 서울 이야기 (연재중) 5]

[내 친구 박용섭의 어릴적부터 살아온 서울 이야기 (연재중) 4] http://blog.daum.net/enature/15854665 에서 계속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아파트에 서류를 넣을 것이 있어서 구로 구청을 다녀왔다. 주민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를 띠려던것이였다. 아무생각없이 번호표를 받고, 대기중이였는데 내 번호가 불리고 준비해간 민증과 함께 번호표를 내밀곤, 위에 두서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고, 아내는 돈을 지불한다. 아내가 먼저 획돌더니 나간다. 나는 왜그러나 하고 서류를 받아서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물이 난다. 어머님 함자 옆에 ()로 사망이라 써있는 서류를 첨 본 난 그렇게 울고 만다.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 사실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음에도, 서류..

[내 친구 박용섭의 어릴적부터 살아온 서울 이야기 (연재중) 4]

내 친구 박용섭의 어릴적부터 살아온 서울 이야기 (연재중) 3] http://blog.daum.net/enature/15854664 에서 계속 엄마와 간 시장은 순대가 넘 맛있었다. "오늘은 구로시장에가서 막내 속옷 좀 사야겠어" "그래 속옷사면서 브라자도 사줘라" "같이 안갈거야" "그럴까, 그럼 우리 오늘은 시장에서 점심먹자" 그리곤 우리부부는 시장투어를 시작한다. 왁짜지껄하는 시장의 풍경은 언제나 보아도 신나고, 흥분이 된다. 뭔 물건이 있는지 궁금도 하지만 왜그리도 사고픈것이 많은지 아내를 따라가다보면 "요거사자,저것도"하다보면 항상 오버고, 양손엔 주렁주렁 검은 비닐봉다리가 손가락이 저려오듯이 아프지만, 그래도 흐믓한게 만족해하며 사무실에 와서 재차 다시 분류하고, 아내가 가져갈 것과, 내가 퇴..

[내 친구 박용섭의 어릴적부터 살아온 서울 이야기 (연재중) 3]

[내 친구 박용섭의 어릴적부터 살아온 서울 이야기 (연재중) 2] http://blog.naver.com/samswlee/221033354146 에서 계속 소풍은....2 일찍 결혼하셔서 고향인 오송에선 더 이상 살 수 없어 무작정 아버지의 육촌형님이 계시는 미아리를 찾은 것은 내가 5살때 였고, 우리는 당장 추운 그 겨울을 보내야 했고, 여유가 없었기에 아저씨네와 한방에서 얼키고, 설키며 11명의 대가족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육촌아저씨는 손재주가 좋으셔서 지팡이와 밥상을 만들면 아무런 기술없이 농사만 져오던 아버지는 그걸 매고, 들곤 서울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어떤 날은 지팡이와 상도 팔았지만, 가지고 나간 물건을 그대로 들고 오시기도 했다. 그렇게 파는 것이 많아질 수록 아버지는 웃으셨고, 오는 여름엔..

[내 친구 박용섭의 어릴적부터 살아온 서울 이야기 (연재중) 2]

용섭이가 페이스북에 쓰는 어린시절 부터 살아온 우리들의 서울 이야기: http://blog.daum.net/enature/15854640 에서 계속 나 이렇게 결혼했다.ㅎ. 따르릉,따르릉!!! "숙녀복팀입니다." "안녕하세요.전 박용섭인데 최영돈씨 좀 부탁드립니다." "지금 외출해서 안계십니다." "그래요,저 혹시 최순희씨세요" "어떻게 알아요." "영돈이한데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해서 30분정도를 전화기를 붙잡고, 허튼소리도하고, "노래도 잘합니다 한번 들어보실래요, "그대고운 목소리에 내마음 흔들리고, 나도모르게 어느새 사랑하게되었네~~~~~ "노래 잘하죠," 외출해준 친구에게는 고맙기도하고, 원래 친구에게 전화를 하기보다는 당차고 뚱뚱하다는 사무실 여직원에게 내심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내 친구 박용섭의 어릴적부터 살아온 서울 이야기 (연재중) 1]

용섭이가 페이스북에 쓰는 어린시절 부터 살아온 우리들의 서울 이야기: 라면이 뭐 내 영혼을 위한 음식이랴마는.. 가끔 일요일 마땅히 먹을거리가 없을때 우린 라면으로 한끼를 떼운다.늘 먹는 라면이지만 내게도 아주 특별한 라면이 있었다.남은 인생에서도 라면을 먹겠다만, 이 라면처럼 특별하고, 맛났으며, 사랑이였고, 서글픔 이였으며, 미안함이 였던 라면은 없다. 매년 추석 명절이 돌아오면 우리 형제들은 아버님의 손을 잡고, 자주 이사를 가시는 큰아버님댁으로, 어떤 해는 보광동으로, 또 이듬해는 사당동으로, 하계동으로 차례를 지내러 갔다. "여보 이번 추석은 아주버님댁이 또 이사를 했다는데 집도 모르고, 보광동은 어딘지도 모르는 양반이 아이들 데리고 다녀오는게 어려우니, 애들은 집에 놓고 당신이나 다녀오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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