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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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명당 11

03. 阿彌陀佛非聾漢 念念彌陀奈爾何

https://youtu.be/Y366xjpGJe0 지운 김철수 선생님이 88세 되던해인 신유년 1981년 봄에 휘호 하신 “아미타불비롱한(阿彌陀佛非聾漢) 염염미타내이하(念念彌陀奈爾何)”를 접하다보니, 신아동맹당(新亞同盟黨)을 결성했고, 사회혁명당을 만들었으며, 상해파 고려공산당을 창당하여 코민테른 국제당으로 중국공산당과 일본공산당 창당을 지도하고 자금을 집행했으며, 2차 후반기와 3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지내며 스탈린을 독대하여 조선공산당을 추인받았으며, 조선공산당 재건설 위원회 대표자대회를 개최했던, 지운 김철수 선생님이 북한으로 가지 않고 남한의 농촌 시골에서 촌로로 살다간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 원주 치악산(雉岳山) 자락에 있는 1500년전 무착도사(無着祖師)가 창건한 사찰 국형사(國亨..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馬太福音 第十章第二十八節 (마태복음 제십장제이십팔절) 서화 작품]

那殺身體不能殺靈魂的(나살신체불능살령혼적)、不要怕他們(불요파타문).惟有能把身體和靈魂都滅在地獄裡的(유유능파신체화령혼도멸재지옥리적)、正要怕他(정요파타) 。 馬太福音 第十章第二十八節 (마태복음 제십장제이십팔절) 八十九翁 遲耘(팔십구세옹 지운)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장28절 98세 늙은이 지운 . 마태복음 10장은 예수가 12제자(弟子)를 불러서 권능(權能)을 주고 전도(傳道)를 명(命)하며 제자들이 박해(迫害)를 받을 것이라 알렸다. 그러면서 마땅히 두려워하여야 할 분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을 주셨다. . 그 말씀이 10장 28절이다. "...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靈魂)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

[설산(雪山) 장덕수(張德秀, 1894년 12월 10일 ~ 1947년 12월 2일) 선생에 대한 오해와 그 진실]

1921년 5월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년~1986년 3월 16일) 선생의 조선 사회혁명당과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 1873년 6월 20일~1935년 1월 31일) 선생의 러시아 한인사회당이 연합하여 상해에서 고려공산당을 창당했다. 고려공산당은 코민테른의 동양권 지도당으로서 공산혁명 자금을 집행하게 되었다. 자금 집행 중앙위원으로서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일세(一洗) 김립(金立, 본명 金翼容, 가명 楊春山 1880년~1922년 2월 6일) 선생은 1. 중국공산당 창당 지원, 2. 일본효민공산당 창당 지원, 3. 민족주의단체 포함 항일단체 자금지원, 4. 언론매체 창간지원, 5. 조선과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가 구미 유학 지원 등을 거침없이 집행하기 시작했다. . 이때 고려공산당의 대표 이동휘..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글픈 이야기]

지운 김철수 선생의 이야기를 페이스북, 블로그에 그분의 서화와 함께 소개하다 보니 별 인간들이 빨갱이라 비난하고 또 어떤 이는 잘못된 이야기라 항의하고 또 어떤 이는 소설 쓰지 말라며 비난한다. 아무튼, 아직 절반도 숙독하지 못하였으나 해방 이후부터 시간대별로 정리하여 주마간산 격으로 지운 김철수 선생의 서찰과 메모 등을 훑어보았다. . 해방 이후부터 지운 김철수 선생이 작고하던 1986년까지 일분일초도 남한 땅에서는 좌익이라는 이름 아래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다. 지운 선생이 조선의 사회주의 역사에 차지하는 부분의 무거움을 알고 수많은 관심자들이 몰려들어 물어보고 녹음하고 취재도 하여 언론 보도도 더러있었지만 지운 선생은 주변 지인들과 남아있는 식솔들을 위해 말을 아끼고 살수 밖에는 없었다. . 지운 선..

[독립운동을 망친 여운형과 박헌영 그리고 이루쿠츠크파(irkutsk派) '고려공산당']

박헌영(朴憲永, 1900~1956)은 1900년 5월 충남 예산에서 몰락한 양반·지주 영해(寧海)박씨 박현주(朴鉉柱)와 탐진최씨(耽津崔氏)의 서자로 출생했다. 생모는 과부에서 재가한 이학규(李學圭)다. 대흥소학교 졸업 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으며 YMCA 활동을 했다. 미국 유학을 꿈꾸었고 일본 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밀항도 했다. 그러다 상해 고려공산당에서 구미 유학생을 선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1920년 11월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 그 당시 중국 상해는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 1873년 6월 20일 ~ 1935년 1월 31일)의 러시아 한인사회당(韓人社會黨)과 지운(芝雲 혹은 遲耘) 김철수(金綴洙, 1893년 ~ 1986년 3월 16일)의 조선 사회혁명당이 상해파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독립운동을 망친 여운형과 박헌영 그리고 이루쿠츠크파(irkutsk派) '고려공산당']

박헌영(朴憲永, 1900~1956)은 1900년 5월 충남 예산에서 몰락한 양반·지주 영해(寧海)박씨 박현주(朴鉉柱)와 탐진최씨(耽津崔氏)의 서자로 출생했다. 생모는 과부에서 재가한 이학규(李學圭)다. 대흥소학교 졸업 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으며 YMCA 활동을 했다. 미국 유학을 꿈꾸었고 일본 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밀항도 했다. 그러다 상해 고려공산당에서 구미 유학생을 선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1920년 11월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 그 당시 중국 상해는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 1873년 6월 20일 ~ 1935년 1월 31일)의 러시아 한인사회당(韓人社會黨)과 지운(芝雲 혹은 遲耘) 김철수(金綴洙, 1893년 ~ 1986년 3월 16일)의 조선 사회혁명당이 상해파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11/11 - 좌익소아병을 극복하고 거시적 차원에서 민족의 대동단결을 모색한 정치지도자]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11/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11번째 작품[좌익소아병을 극복하고 거시적 차원에서 민족의 대동단결을 모색한 정치지도자]이다. 이 작품의 해설 역시 댓글로 재능기부를 해주신 양금섭 교수님의 해설을 함께 공부해 보고자 한다. 귀한 시간을 내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해설은 다음과 같다. . " 巖身徑晝 别風塵 惟我江山 一恨新 寇倭方驅 臨近海 相殘南北 是邦人 . 바윗 몸체 하룻 새에 먼지로 날려 흩어지니 오직 내 강산에 한 슬픔이 새로워라. 섬도적 방금 달려와 근해에 이르려는데 서로 죽이는 남과 북은 우리나..

[9/11 - 지운 선생과 자임 모택동 주석과의 인연]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9/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9번째 작품 [지운 선생과 자임 모택동 주석과의 인연]이다. 이 작품도 양금섭 교수님의 해설로 함께 감상해 보자. . 양금섭(Kyzbma Yang)교수님 해설: . 鐘山風雨 起蒼黃 百萬雄師 過大江 虎踞龍盤 今勝昔 天翻地覆 慨而慷 . 宜將剩勇 追窮寇 不可沽名 學霸王 天若有情 天亦老 人間正道 是滄桑 . 종산에 비바람 갑자기 일어 백만의 굳센 군대 큰 강을 건넜다. 용호가 지켜온 땅이지만 새 힘이 옛 세력을 이겨내니 천지가 뒤바뀌어 감개무량하도다. . 장수는 마땅히 남은 용맹한 군사로 궁지의 적을..

[7/11 - 지운 선생의 역사 속의 공적과 과오]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7/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7번째 작품 [지운 선생의 역사 속의 공적과 과오]이다. 해설은 양금섭 교수님의 해설을 인용한다. . 纔渡東江 淚自衿 只存碑閣 老松深 子規何事 啼留客 最憶(?)端王 曉月心 . 동강을 건너자마자 눈물 흘러 저절로 옷깃 적시는데 다만 노송 숲 깊은 곳에 비각만 있구나. 두견새는 무슨 일로 울어 나그네를 붙드나 가장 슬픈 건 단종의 새벽달 마음이네. . 丙辰五月二十日 獨訪寧越古跡 而宿於淸泠浦津頭賣店 初夜一巡深林 卽翌夜未明更渡東江 飽聞杜宇之聲 卽切憶幼王之悲哀史 . 1976년 5월 20일 홀로 영월 ..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398~410

지운 선생의 서화 작품 해설이 돌팔이가 왈가왈부 할 사안이 아니다. 주변에 한문 공부 좀 했다는 일본 중국 대만 친구들 조차 돌팔이 내 한문실력(?)에 감탄 할 정도로 한국이 한문실력의 종주국이긴 하지만, 작품의 내용은 한문에 한소식 하신 분들의 댓글 재능기부에 맞기고자 한다. 난 내 기억과 지운 선생이 사사로이 내 부친에게 보냈던 서찰 내용 중에 한국정신문화원 간 '지운 김철수' 증언집에 거론된 내용을 중심으로 비사형태로 남겨보고자 한다. . [코민테른 군자금의 행방과 지운 김철수] . 증언집에는 코민테른에서 받은 군자금의 내용(200만루브르, 100만루브르 금괘)도 나름 나온다. 지운 선생은 그 엄청난 공로조차 증언집에서는 자신과 함께 움직였던 동지들에게 돌린다. 사회혁명당과 러시아 한인사회당이 박진..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서화 작품 26~50

'조선공산당' 2차후반기와 3차 집행부 책임비서'를 지내고 또 스탈린을 만나 조선공산당에 대한 코민테른의 승인과 동양공산혁명자금을 직접 수령했던 지운 김철수. 한중일 동양3국중, 1920년 조선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당의 강령을 갖춘 '사회혁명당'을 창당했으며 1921년 레닌의 자문으로 이동휘의 러시아 '한인사회당'과 결합하여 상해파 고려공산당을 만든 지운 김철수. 그런 지운 김철수 선생은 북으로 가지 못하여 정작 북한의 공산정권 창립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남과 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사회주의 혁명가 지운 김철수에게는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제가 여러분의 그 의문을 풀어 주겠습니다. . [지운 김철수 선생이 북으로 가지 못한 이유] . 초기 조선의 공산당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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