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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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 김옥진 9

[金盤露積珠襦重 玉佩風生翠帶長]

난 아바지 사랑 받는 자식이 아닌 줄 알았다. 교육감상을 받고 졸업한 국민학교 졸업식에도 내 아바지는 없었다. 대신 설대 의대를 합격한 내 큰 엉아가 참석해서 내 졸업식은 내 졸업 축하가 아니라 내 큰 엉아 설대 의대 합격 축하식을 방불케 했다. .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석사 졸업식때는 내 부친은 커녕 집안 식구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군에서 녹화사업 받다 무릎연골이 작살이 나서 통합병원에 장장 6개월을 입원했어도 집안 식구 아무도 면회 한번 없었다. . 작은 엉아는 한술 더 떠서 남들 다 하는 군생활 꾀병부려 병원에서 편하게 군대생활 한다고 소문을 낼 정도로 사랑받지 않는 군 식구였다. . 그런데 그런 아바지가 딱 한번 졸업식에 참석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박사학위 졸업식때다. . 부친 방..

막내 아들의 혼사기념품

나는 1988년 7월 16일 여의도 천주교회 성당에서 혼배성사 겸 혼배미사를 보았다. 내 혼배미사에는 전국성가대회 최우수상에 빛나는 여의도 성당 성가대의 축복 성가가 미사시간 내내 이어졌다. 그 미사에 참석했던 내 친구들 중에는 결혼식을 천주교식으로 하려고 천주교로 개종한 친구들이 여~러명 있다. . 내 각시가 군인이어서 고리타분한 집안어른들의 염려(?)가 많았다. 그래서 난 집안 어른들의 축복을 포기하고 그냥 날을 잡아 혼배미사를 강행했다. 아직도 나와 내 각시는 그때의 상한 기분을 풀지 못한다. 그리고 그해말 미국유학을 떠났다. . 집안 어른들의 결혼 축복을 포기했으니 결혼을 축하하고 기념해줄 걸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 부친 방원 선생 유품보따리 안에는 내 결혼식 축하 서화며 동양화가 무려 2..

옥농(沃儂) 김창식(金昌埴, 1938~) 선생 작품

방원 선생 유품보따리에는 옥농 선생 작품도 보인다. 옥농 선생은 1938년 4월 22일 일본 동경에서 출생하여 1961년 영남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후 삼화고속에서 줄곧 근무하여 1996년 전무이사를 마치고 은퇴했다. 기존의 전업작가와는 다르게 힘든 직장생활 속에 숨통을 틔우는 취미생활로 한국화가의 길을 걸었지만, 국전심사위원과 미술협회 한국화협회 고문을 지낼정도로 동양화가로서도 성공했다. 1974년 옥산 김옥진 선생 문하에서 시작하여 1981년 곡천 이정신 선생에게서 사사했다. 작품세계는 한국화를 마치 서양유화를 접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시각을 확장시켰다. 더군다나 팔순을 바라보는 2014년에는 여행작가로 또다시 변신을 시작하여 120 인생의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옥농 선생의 작품을 접할수 있어 행복..

주봉(周峰) 공영석(孔泳晳, 1934~) 선생 작품 1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서화보따리 속에 합죽선과 부채를 보니 한국화가로는 산수화에 능한 옥산 옥전 주봉 그리고 묵화의 대가 구당 상산 선생의 그림들이 보인다. . 그 중에 주봉 공영석 선생은 옥산 김옥진, 일중 김중현, 남정 최정균 선생에게서 사사하였다. 내가 미국 유학을 나오기전 근무하던 잡지협회 부설 잡지연구소가 종로 청진동에 있어서 내 부친 방원 선생의 서울 나드리때 마다 뵈었던 분들 중에 한분이다. 자식벌인 내게도 하대하는 법이 없던 예의 반든한 분으로 기억한다. 이번에는 주봉 공영석 선생 작품을 소개한다. . 주봉 선생은 동국대 교육대학원을 수료하고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작가들과도 서로 또 함께 작품 활동을 하셨다. 주봉 선생의 독특하고 몽환적인 산수화는 보는 사람을 빨아드리는 마력이 있다..

옥전(沃田) 강지주(姜智周, 1936 ~) 선생 작품 1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서화보따리 속에 합죽선과 부채를 보니 한국화가로는 산수화에 능한 옥산 옥전 주봉 그리고 묵화의 대가 구당 상산 선생의 그림들이 보인다. . 이어 생전에 부친이 인사동에서 매일이다시피 어울리셨던 옥전 강지주 선생의 작품을 소개한다. . 옥전 강지주 선생은 의재 허백련 선생과 옥산 김옥진 선생에게서 사사하였다. 서라벌예대 동양화과와 동국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내가 유학오기전 종로에 직장이 있었는데 옥전 선생이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홍길동처럼 나타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열정적이고 정열적인 분으로 기억한다. . +++

옥산(沃山) 김옥진(金玉振, 1927 ~ 2017) 선생 작품 1

부친 방원 선생 유품 서화보따리에는 옥산 김옥진 선생의 작품도 있다. 액자나 족자로 보관되어 있던것들은 두형과 누나 여동생이 챙겨가고 남은 것들이다. . 내가 박사학위를 받았을때 오랜 친구분인 옥산 김옥진 화백에게 받아 놓으셨던 축하 水仙花(수선화) 부가 있다. 재작년에 내 누나가 액자 족자를 행기다가 찾았다고 알려주었던 그 그림이다. . 金盤露積珠襦重(금반로적주유중) 금반에 이슬이 쌓이니 구슬져 고리가 무겁고 . 玉佩風生翠帶長(옥패풍생취대장) 옥매에 바람이 생기니 푸른 띄가 길도다 . 아마도 날 주려고 받아두셨다가 깜박하고 잊어버리셨거나, 그 사이에 부친에게 치매가 찾아왔나 보다. 이제 학위 받은지도 많은 세월이 흘러 가물거리는데 내 아바지 방원 선생이 미국까지 와서 많이 기뻐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

녹설(綠雪) 이상재(李常宰, 1930~1989) 선생 작품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의 유품인 지운 김철수 선생 서화 보따리에는 고 녹설(綠雪) 이상재(李常宰, 1930~1989) 선생 작품도 눈에 보인다. 녹설 선생은 1930년 전북 임실에서 출생하여 주로 전남 광주에서 활동한 근현대 한국화가이다. 1952년 국민대학교 2년을 수료했고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에게 남종화를 배웠다. 연진회 회원이었으며, 1956년부터 1979년까지 매년 국전(國展)에 작품을 출품하여 2회 특선 및 20회 입선하였다. 1962년에 김옥진, 천경자 등과 함께 를 만들어 활동했다. 1984년에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7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1980년에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1981년부터 1989년까지 현대 한국화전에 참여했고 1982년부터 1987년 사이에 국립현대미술관에..

지운 김철수 선생의 생전 서화보따리

주말에 부친 방원 선생의 유품중에 둘둘말아둔 지운 김철수 선생의 생전 서화보따리를 풀어 더이상 서화가 상하지 않도록 바인더에 차곡차곡 정리를 했다. 2폭 4폭 7폭 8폭 12폭 병풍용 서화포함 300여점까지 숫자를 세다가 포기를 했다. . 지운이라는 호를 쓰지 않고 김철수라 실명을 서화에 쓰기시작할때부터 모인 서화이니 족히 천점이 넘어가는 것 같다. 그중에 신문 스크랩도 하나 있다. 내 부친은 1989년 11월 24일자 한겨레신문 13면에 실린 이종찬 기자가 작성한 지운 김철수 선생의 전면기사를 오려 놓았다. . 수많은 지운선생 서화중에는 작고한 분들로는 의제, 남농, 구당, 석파, 옥산 선생 등과 나눈 서찰과 서화가 더러있고, 생존하는 분들로는 옥전, 동곡, 향설당, 등등 그분들의 서화도 더러 포함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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