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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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촌 이종익 4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의 '陳子昻(진자앙)의 登幽州臺歌(등유주대가)' 서화 작품]

前不見古人(전불견고인): 앞선 옛사람 보이지 않고 後不見來者(후불견래자): 뒤에 올 사람도 보지 못하여 念大地之悠悠(염대지지유유): 천지의 유구함을 생각하자니 獨愴然而涕下(독창연이체하): 홀로 슬픔에 겨워 눈물이 흐른다 . 이 서화도 지운 선생이 내 큰형 泰遠君을 위해 남기신 거다. 내 큰형 집이 크기는 하지만 누가 표구나 부를 해서 주어도 더는 늘어서 놀 자리가 없을 듯하다. 내가 잘 보관했다가 부나 족자나 표구를 해서 선물로 주던가 아니면 박물관을 만들어 보관해 보도록 해야겠다. 함께 올린 그림은 인터넷 서치로 찾은 건데 오래전 어느 중국 작가가 잘 표현한 것 같아 모셔온 거다. 아무튼 화딱지를 이 정도로 장엄하게 표현하다니 陳子昻(진자앙)은 대인이 확실하다. 그리고 그 陳子昻(진자앙)을 본받고자 한..

芳園 李 盛 粲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은 한국시간 2018년 4월 13일 20시 11분 6.25동란중 수류탄폭발로 인한 파편상(좌복부 파편창과 좌배부 맹관 파편창)과 외상성폐손상이 악화되어 흡인성폐렴으로 인하대학병원 11층 2호실에서 사망하셨습니다. 빈소는 서울 혜화동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2호실에서 젊은시절 창경궁(昌慶宮) 식물원(植物園)의 주임(主任)으로 근무하셨던 창경궁 식물원이 바라보이는 곳에 모셔서 5일장으로 조문객을 맞았습니다. 발인은 2018년 4월 17일 9시 30분에 서울대학병원 영안실을 떠나 성남화장장에서 화장한후 명혼을 동일 16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봉안의식을 국군의장병의 의장행사를 통해 충혼당 314호실에 모셨습니다. 장지에서 돌아온 당일 저녁 혼란스런 영가께서 밝은 빛이 나는 곳..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1] 방원 이성찬 선생과 우촌 이종익 선생

우촌 이종익 (于村 李鍾翊) [우촌 선생은 제 부친 방원 선생의 오랜 친구셨습니다. 제 부친께서 신구전문대 원예과와 식물원 건립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기억도 있고 하여 반가운 마음에 퍼온 글입니다.] 우촌 이종익 선생의 생전모습 우촌 이종익 선생은 1923년 계해생(癸亥生) 9월 4일생으로 파주읍봉루리학동(坡州邑鳳樓里鶴洞)에서 한학자 이면규공(李冕圭公)의 차남으로 태어나 타계할 때까지 이 나라 출판과 육영에 헌신했습니다. 우촌 선생은 고성이씨 용헌공파로 시조로부터 이십칠세손이며 사암공파(思菴公波)입니다. 우촌선생은 1933년 문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선린상업학교를 입학하였습니다. 1942년에는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소압(스카모)상업고등학교(日本巢鴨商業高等學校)를 다니며 일본 학예사라는 출판사에서 편집..

芳園 李 盛 粲

芳園 李 盛 粲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신 모친을 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니 여간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시고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신 제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님의 모습을 자손들을 위해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런 노력이 하늘에 닿아 업 겁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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