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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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찬 10

韓山李氏 28세 昌慶宮 植物園 初代植物園長 이성찬李盛粲 – 6 25 참전상이국가유공자

https://youtu.be/E7WRPguTV9E 한산이씨(韓山李氏) 28세 창경궁(昌慶宮) 식물원(植物園) 초대식물원장(初代植物園長) 이성찬(李盛粲) – 6.25 참전상이국가유공자 한산이씨 28세로 호장공 이윤경 선조님의 27대손이자 중시조 한산부원군 문정공 목은 이색 선조님의 목은21대손으로 목은22세인 제 부친인 창경궁(昌慶宮) 식물원(植物園) 초대식물원장(初代植物園長) 이성찬(李盛粲) 선생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성찬 선생님은 진도군수와 상주영장을 지내신 이사목 선조님의 직계 8대 장손입니다. 7대조부님은 연산군수 이규첨 어른이며, 6대조부님은 절충장군 이원재 어른이고, 5대조부님은 첨정 필재 이원효 어른이며 고조부님은 혜민원주사 이승태 어른이며 증조부님은 궁내부특진관 성우공 이명직..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9] 방원 이성찬 선생과 김백봉 선생

한국시간 2023년 4월 11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하신 김백봉 선생님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어린시절 부친 방원 선생님의 화훼원예농장 한편에는 카나리아를 비롯한 가지가지 새들을 키우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방원 선생님이 꽃을 좋아하니 아름다운 새도 좋아하셨겠지만 새를 키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젊은시절부터 안막 안제승 형제분들과 친구인 인연으로 오랜세월 안제승 선생님의 부인으로 춤을 전공하신 김백봉 선생님과 꽃클럽 활동도 함께하시며 친분을 나눠오셨는데, 바로 김백봉 선생님이 새를 좋아하여 집에 많은 새를 키우셨습니다. 그런데 김백봉 선생님의 가족분들이 새 알러지에 아들 안병철, 딸 안병주와 안나경이 건강에 문제가 생기니 결국 저희 화훼원예농장으로 그 새들을 몽땅 가져오셨습니다. 그덕에 어린시절 여..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4] 방원 이성찬 선생과 옥산 김옥진 화백

김옥진 Kim Ok Jin 沃山 金玉振 좌로부터 2번째가 고 운초 정영호 선생, 3번째가 옥산 김옥진 화백, 그리고 오른쪽이 방원 이성찬 선생이다. 옥산선생의 개인전을 축하해주고 있다. 방원 이성찬 선생(http://blog.daum.net/enature/15852876)과 옥산 김옥진 화백은 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제 허백련 선생..

[나의 뿌리: 한산이(韓山李)씨29世 인재공(麟齋公)22世-광목공(光牧公)21世-안소공(安昭公)19世-직재공(直哉公)18世-이사목공 (李思牧公)10世 후손]

稼亭先祖 遺訓: 我之子孫 百代至親 아지자손 백대지친(我之子孫 百代至親): 나의 자손들이여 백대가 지나도록 친하게 지내라! 얼마 전, 잘 알던 지운 김철수 할아버지와 나의 부친이 모셨던 우장춘 박사의 사연을 접하였다. 일본강점기 때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학과에 유학한 지운 할아버..

지운 김철수(遲耘 金隋(綴)洙) 선생을 만나다

지운 김철수(遲耘 金隋洙,金綴洙를 잘못 기억했을 듯) 선생을 만나다 修菴 金徹重 나는 이 하숙집에서 지운 김철수 선생을 처음 만나 뵈었다. 어느 날 하숙집에 한복 두루마기에 중절모자를 쓰고 탐스러운 수염이 넉넉하게 나신 청수한 노인 한 분 이 오셨기에 이 댁의 어느 시골에 사는 친척이겠거니 하였더니 인사를 드리고 보니 말로만 들었던 독립투사요 조선의 초기 공산당을 이끌었던 ‘원천리 독립투사 김철수’ 바로 그 분이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주인 주인식씨의 고종 4촌 형님이었던 것이다. 지금 계화면의 돈지에 사는 지운 선생의 둘째 따님 김용화 여사도 이 무렵에 이집에서 처음 뵈었다. 그 후로는 변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한 김용술 아저씨가 부안읍내에 문방구점을 개업한 이후 그곳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고 우리들이 결..

나의 부친 방원 이성찬 - 한산군 목은 이색의 둘째아들 인재공파로 牧隱21代孫(호장공28世, 호장공27代孫, 목은22세)

[나의 부친 방원 이성찬 - 한산군 목은 이색의 둘째아들 인재공파로 牧隱21代孫(호장공28世, 호장공27代孫, 목은22세)]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신 모친을 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니 여간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시고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신 제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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