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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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규 기수 5

[2. 제 증조부 애국지사 이철규 기수님을 페이스북 친구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평생 돈 한 푼 집에 벌어온 적 없이 국민학생(초등학생) 아들이 월사금 내려고 애호박 팔아모은 돈도 들고 한량 노릇 하러 다니시던 내 아버님을 무척 미워했습니다. 군사독재의 탄압도 피했지만 능력 없는 부모에게서 탈출도 겸해서 미국으로 연구 조교 자리를 구해 도망을 쳤습니다. 어느 날 내 아들이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이고 그 아버지는 또 그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어 훌륭한 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식 덕분에 철이 들었고 한량으로 잡기에만 빠져 사신 내 아버지 방원 선생의 삶을 공부했습니다. 육종학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의 조교를 지냈고 창경원 초대식물원장을 지냈고 625 한국동란 때 6사단에서 수류탄부상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도 죽음을 넘어 구사일생..

일제의 신하들 -정미칠적과 고종의 마지막 신하 - 이명직.이철규 부자

. 위의 사진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맨 왼쪽), 내부대신 임선준, 군부대신 이병무, 농상공부대신 송병준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정미칠적(丁未七賊: 을사조약 체결 2년 후인 1907년 7월에 체결된 한일신협약 -제3차 한일협약 또는 정미7조약 - 조인에 찬성한 내각 대신 일곱 사람을 가리킴)..

월남 이상재 선생님, 이명직 목사님 그리고 이봉준 사장님

애국에 불타오르는 사람들은 35년의 일제강점기 동안, 핍박과 수탈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려 외국으로 망명하든가, 아니면 싸우다가 죽든지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굴종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

일제의 신하들 -정미칠적과 고종의 마지막 신하 - 이명직.이철규 부자

. 위의 사진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맨 왼쪽), 내부대신 임선준, 군부대신 이병무, 농상공부대신 송병준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정미칠적(丁未七賊: 을사조약 체결 2년 후인 1907년 7월에 체결된 한일신협약 -제3차 한일협약 또는 정미7조약 - 조인에 찬성한 내각 대신 일곱 사람을 가리킴)..

4대(고조-증조-조-부모)봉사 - 지방쓰는 방법과 제사 지내는 방법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제사나 차례, 하지만 지금은 목숨 바쳐 지금의 대한민국과 나를 있도록 한 조상 할아버지들의 처절한 삶이 고개가 숙어지고 제사와 차례에 정성을 다하여야 후손된 도리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잘난 체 하지 말고 서로서로 상의하면서 지방 하나라도 제대로 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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