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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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 5

117. 울릉도에는 진달래가 없습니다! Ulleungdo has no Rhododendron Mucronulatum!

https://youtu.be/bCx_-uYfPkU Ulleungdo has no Rhododendron Mucronulatum! 울릉도 진달래 프로젝트 실패 - 울릉도에는 진달래가 없습니다! . 1970년대초 독립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은 진달래 묘목과 종달새 3쌍을 들고 울릉도로 향했습니다. 실제 함께할 지인들을 꾸려 도전은 그 이전에 3차례가 있었으나 기것 포항에 도착하였더니 기상이 좋치않아 울릉도행이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4번째 도전만에 포항에서 무사히 울릉도행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포항에 다다르기 전에 종다리 한쌍이 죽었고 또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배안에서 나머지 두쌍이 죽어서 결국 지운 선생의 종다리는 울릉도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요란한 종다리 사육 덕에 우리에..

[4/11 - 과연 지운 선생은 종다리를 울릉도에 가지고 가셨을까?]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4/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4번째 작품 [과연 지운 선생은 종다리를 울릉도에 가지고 가셨을까?]이다. 해설은 양금섭 교수님의 해설을 인용한다. . 作意東君 又復情 羣生俾得 邀善鳴 仁鳳猶及 痴聾痼 鼓舞相通 聲外聲 *東君 : 종다리를 지칭 . 종달새를 노래하려는데 정 또한 깊어서 뭇생명을 좇아 좋은 울음소리를 맞아 얻었네. 착한 봉새 소리가 오히려 귀머거리에게 미치니 북장단과 춤사위가 소리 밖의 소리로 서로 통하네. . “己酉(1975)春 謹和 遲耘 仁兄 雲雀詩 毅弟” 詩與書掛於壁右 而時吟時味 如對逝友之淸儀 丁巳(1977..

[3/11 - 지운 선생의 종달새 프로젝트와 나]

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3/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3번째 작품 [지운 선생의 종달새 프로젝트와 나]이다. 해설은 양금섭 교수님의 해설을 인용한다. . 年來雲雀 養多情 隨處隨時 耳內鳴 世人莫笑 耳聾漢 臨境能聽 聲外聲 *雲雀: 구름참새, 즉 종다리의 이명(異名). . 이 해 들어 종달새 기르느라 너무 몰두했더니 시시때때로 이명[=幻聽]이 들리네. 세상 사람들아 귀머거리라고 웃지를 마소 필요할 때에는 소리 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오. . 己酉春日 過三相橋邊 見雲雀之翔 眞偶得此一絶 而視之于毅齋畵伯 笑有和韻傑作 書之于此幅(?)耳 八十五翁 芝雲 기유..

지운 선생과 노구조리 그리고 울릉도 '고고고고(古枯孤高)'

어린시절 부친 방원 선생의 화훼원예농장 한편에는 카나리아를 비롯한 가지가지 새들을 키우는 장소가 있었다. 방원 선생이 꽃을 좋아하니 아름다운 새도 좋아하셨겠지만 새를 키우게 된 이유가 있다. 젊은시절부터 오랜세월 춤을 전공하신 김백봉 선생과 동갑으로 오랜세월 친분을 나눠오셨는데, 바로 김백봉 선생이 새를 좋아하여 집에 많은 새를 키우셨다. 그런데 가족들이 새 알러지에 건강에 문제가 생기니 결국 화훼원예농장으로 그 새들을 몽땅 가져오셨다. 그덕에 어린시절 여러해동안 카나리아의 울음소리를 벗하며 지내야 했다. 새 알러지로 눈비비고 따끔거리면서 모이를 주고 물도 주고 냄새나는 똥도 치워주면서 ... . 1972년 어느날, 부안 백산에서 지운 선생이 종다리 여러쌍을 들고 오셨다. 지운 선생 말씀이 몇년전 신문에..

지운 김철수 선생과 울릉도 '고고고고(古枯孤高)' 201~221

어린시절 부친 방원 선생의 화훼원예농장 한편에는 카나리아를 비롯한 가지가지 새들을 키우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방원 선생이 꽃을 좋아하니 아름다운 새도 좋아하셨겠지만 새를 키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젊은시절부터 오랜세월 춤을 전공하신 김백봉(1) 선생과 친분을 나눠오셨는데, 바로 김백봉 선생이 새를 좋아하여 집에 많은 새를 키우셨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새 알러지에 큰아들 안병철, 딸 안병준과 안병헌이 건강에 문제가 생기니 결국 화훼원예농장으로 그 새들을 몽땅 가져오셨습니다. 그덕에 어린시절 여러해동안 카나리아의 울음소리를 벗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 1972년 어느날, 부안 백산에서 지운 선생이 종다리 여러쌍을 들고 오셨습니다. 지운 선생 말씀이 몇년전 신문에 보니 울릉도에 종다리와 진달래가 없어서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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