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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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3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선생의 생애와 사상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선생의 생애와 사상 -선생이 가신지 30주기를 돌아보며- 강행원 (화가/동양미학) 1) 들어가는 말 근대미술의 선구를 살아오면서 공로가 지대하였던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선생이 가신지 30주기를 맞아 추모전의 뜻 깊은 자리에 참여의 예를 올린다. 선생께서 세상에 태어난 시기는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구한말(舊韓末)의 불운한 시대였다. 그로부터 일제강점(日帝强占)의 식민시대에서 8·15광복을 전후한 격동기를 살다 간 한국예원의 추사(秋史)정신과 소치(小癡)를 잇는 마지막 남종화의 거장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자는 '삼애사상(三愛思想)'은 의재(毅齋)선생이 평소에 지녔던 홍익인간(弘益人間)의 큰 정신이었음을 상기한다. 선생은 화가로써의 삶을 살아오면서 ..

[멸사봉공 (滅私奉公)이 멸사봉공(滅私俸公)이 된 이유]

멸사봉공(滅私奉公)은 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하여 힘쓴다는 말이다. 이 말의 출전은, 당나라 시인 원진(元稹)이 쓴 '최릉수상서호부시랑제(崔稜授尙書戶部侍郞制)'라는 글이다. 그 가운데 " 其職嚴而不殘. (기직엄이불잔) 辟名用物者逃無所入, (피명용물자도무소입) 滅私奉公者得以自明. (멸사봉공자득이자명) . 그 직책은 엄격하고 결함이 있어서는 안된다. 문서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물건을 제멋대로 쓴자는 도망치다가도 들어갈 수 없으며,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변됨을 받드는 자만이 스스로 명백함을 얻을 수 있다 " 에 나온다. .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을 공(公)의 상징으로 삼아 전제왕정의 전체주의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도입한 국민수신(國民修身)의 원리가 멸사봉공(滅私奉公)이다 보니, 식민지를 거친 한국에..

지운 김철수 선생이 북으로 가지 못한 이유 ...

[비사] . 초기 조선공산당 창설의 주역 지운 김철수 독립지사는 러시아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스탈린이 아끼던 러시아 비행 장교 이봉섭 선생의 주선으로 스탈린을 독대하여 코민테른의 공산혁명 자금을 수령하여 공산혁명 대신 조선독립운동자금으로 전용하였습니다. . 그 자금 중에 가장 많은 자금을 지원받은 분은 의열단을 조직하여 무장 독립투쟁을 전개하던 김원봉 선생이었습니다. 또 일부는 미국에서 임시정부에 보내야 할 독립자금을 횡령하고 독립군 조직원을 암살하려 한 이승만에게 살해 명령이 떨어진 것을 풀어주기 위해 이승만의 횡령자금을 대납하는 데도 사용되었습니다. . 지운 김철수 선생은 공산혁명 자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전용한 이유로 북으로도 갈 수 없었습니다. 이승만이 사회주의 계열 독립지사들을 빨갱이로 몰아 살육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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