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36]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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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7642&n=36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36] - 김여화

 


 

 

 

제목  [36회] 어리동 참� 필적에-4
등록일  2001-12-02
어리동 참꽃 필적에-4

진필의 생각에 그는 언제나 집을 지을적에는 좌향은 남향을 대문은 동쪽을 향하여 짓겠다 마음 먹었는데 이는 그이의 사주 팔자 타고 날 적에 가급적이면 집
을 짓게 되거든 꼭 좌향을 지키고 도시에서 셋방을 살더라도 반드시 그 정도의 집을 골라 살으라 하였다는.
그 어머님 말씀을 간직하여 새기고 내심은 기수의 하숙집 조차도 그런 방향의 집을 골라 잡아 있었으니 풍수를 모르지만 보통의 집들은 대문에서 정면으로 앞을 하지말고 또는 집시랑물을 대문으로 직접 나가게 하지 말라는, 이는 사나운 기가 집안에 침노할 때 한 번쯤 마당에 돌아 들어가게 하는 것이며 또한 복이 나가는 길을 직접적으로 대문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방편으로 생각한 것이라.
서원과 같이 배산 임수를 지켜 살림집을 지을 수는 없지마는 대문에서 먼저 집안을 바라보면 편안하게 느끼도록 하려는 심사라. 아늑하게 만들기 위하여 대문에서 바라다 보이는 쪽에는 허청이나 낮은 창고를 만들고 뜨락을 넓게하여 곧바로 눈을 내려다보면 시야가 트이게 하려는 그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다.
집을 짓고 방에 살림을 들여 놓을때도 방문을 여는 정면에 장롱은 놓지 아니하며 옆으로 놓고 울가에 나무를 심을 때도 대문앞에서 들어갈 때 눈에 잘 띄는 곳 오른쪽에 대추나무를 심는다거나 또는 지붕너머로 키가 커버리는 큰 나무를 심지 않는다는 그런 평소의 소신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지붕보다 나무가 더 커버리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나무도 오랜세월 자라다 보면 신령이 깃들이게 마련이라.
하여 거목을 베어내고 동티가 나는 것은 이 때문이라 생각하니 나무 뿐만 아니라 사물이란 오래되면 자연 신령이 어린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믿기 때문이라.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내는 것도 이러함 때문이며 해서 거목을 베어야 할 적에는 마른명태를 흰 베에 묶어 나무에 매다는데 이것은 이제 나무를 베어내고자 하니 깃들인 신령은 떠나 달라는 주문이라 하였다.
더러 임실의 산골짝 마을 관촌 사자산 기슭의 산중마을에서 도깨비제를 지내는데 이 역시 도깨비가 동네에 살면서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게하는 하나의 뱅이로 그러한 것이라.
일인들이 대동아 전쟁시에 임실땅 그 어디든 느티나무나 소나무 등을 마구베어 조선, 배를 만드는 재목으로 실어갔는데 이때에 신덕의 수천리 오수 대물에서도 고목을 베어내고 애꿎게도 그 인부들이 화를 당한 것은 흔 한 일이었음을 진필은들어 알고 있음이라.
그러하니 진필은 개방된 사고를 지녔음에도 한편은 고루하다는 유교적 풍습 또는 옛 관습을 얼른 떨쳐버리지 못하는 축에 든 것이다.
기왕에 집을 새로이 지으니 개선을 하면서도 그는 가급적이면 예대로 지으려고
마음먹고 대장장이 김씨와 대목장이에게 자신의 뜻을 지켜줄 것을 세세히 말하였다. 진필은 집을 옮겨 짓는데 여러날 여러달을 허비하였다.
어차피 논과 밭은 물이 찰 것을 염려하여 모를 심어야할 필요도 없고 그때에 계화도의 간척지 땅은 바다로 있었으니... ...
계화도 간척지 공사는 처음 화차를 이용하여 방조제를 돌로 축조하는 작업부터 시작되었다. 바닷물이 만조가 되면 돌망태를 배에 실어날랐는데 돌망태의 무게는 한 개가 2톤이라 하였다. 2톤이나 되는 돌망태를 바다에 던져넣어 둑을 쌓는일이 말처럼 그리 쉬운가 양측에서 돌을 쌓아 나가가다 마지막 초종 선을 막고 그후부터는 흙을 들여 다시 방조체 자체를 쌓는 일이었다.
진필은 집 짓는데 나아가 간섭하고 더러 사람들이 보상 문제로 인하여 찾아오면 함께 임실을 나가고 세끼 밥과 새참을 해 내야하는 거둔댁의 소임만 남았으니 거둔댁은 기수가 설쇤 후로 한 번도 오지 않으니 나가서 만나보랴 하여도 일꾼들 밥 때문에 어찌 할 수 없는, 하여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아이고 성님 기수란놈 말요. 생전 오도 안네요.? 벌씨 �달을"
"단단히 삐쳤고만 이?"
"아지매 참 인선이가 어디가서 못온다고 허드니만, 거머시냐 있잖이요? 수녀당 가 머시당가 죽을 때 꺼정 수절허고 시집 안 가는거 말이요. 그거 허로 갔대 요."
저녁때 참을 주고 귀명을 친 뒤에 집 짓는 일을 구경하고 앉았던 박서방네 하는 말에 수천댁은
"아니고 지랄 그 애링거이 어쩌자고 그�다냐?"
곧추세우고 앉았던 무릎을 내리며 휘둥그레 하는 말이다.
"그�어 그 아가 간다고 �었어"
"글먼 아지매는 미리 아�고만요?"
"설에 가덜네 사돈댁으서 기별을 보냈더만 우리보고 말려보라고"
"아이고 누가 말린다고 들을 아 간디? 시상의 쯧쯧"
수천댁은 혀를 차고 박서방네 얼굴은 안스러운 마음이 금방 눈물이라도 쏟아낼것만 같다.
"기언시 수녀원에 들어간다고 헌다는디 우리는 암 말도 못�지요"
"긍게 지미가 행실이 발러야지 아무리 아덜이라고 왜 그렁걸 모르겄어?"
"적으매가 펜지보고 울고 불고 굉장�어요."
"아이고 염병헐 예펜네 울기는 멋허게 울어? 멋 잘�다고? 서방까지 죽게 만들
고서나 가가 지애비 그렇게 죽은거를 꼭 몰르라는 법 있겄능가?"
"펜지를 �더란 말이지? 인선이가?"
"예에 접때 저녁으 펜지를 갖고 왔잖이요. 맹자보고 읽어도라고요"
"그리서 "
"머라고 �덩가? 주소랑 있고?"
"어디요오? 이름도 안 썼는디 알맹이다가 인선이라고 썼더래요"
"그려 머라고 썼다덩가?"
"머라고 썼더만. 아이고 내가 듣고도 금방새 잊어번징게요."
박서방네는 한참을 생각하는 듯 앉아있으니
"아이고 폭폭허다 빨리 말히바 애터지게 허지말고"
"예에 머 적아버지 말은 안 썼고요. 미국 아래 먼 나라 있잖이요? 거그까지는 간건 아니고 같은 하늘아래 있다고 험서나 찾지말고 기다리지도 말라고 험서 보고 싶다고 �어요. 같은 하늘 아랭게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 아니겄어요?"
답답한 수천댁
"아이고 그놈의 해설은 허지말고 말이나 얼릉 히라아"
"수녀덜은 시집 안가고 사능겅게 기다리지 말라고 허고 잿말은 인자 물속으다 묻어번진다고 다시는 안 오고 잡대요."
"아이고 아이고, 가가 분명허게 알고 있능거여 적아버지가 목매 죽은거를 아능 겨 긍게 다시는 안 온다고 허지 이?"
"긍게 옛부텀 자석 무서서 함부로 몸 놀리먼 안된다고 허능거여"
거둔댁은 듣고 있다가 무겁게 입을 연다.
"성님 가가 애�는디 알었으까요?"
"아녀어 머이 애려 지지바가 열 두어살잉가 먹었을땐디 이?"
"그렁가요? 누가 부지중에 말을 허기도 �을 것 같고"
"알거고만요. 한 번 우리 가시내보고 챙피히서 잿말서 안 살고 잡다고 �었대 요. 글고 맨날 맹자 볼때마독 너는 시집가서 잘 살으라고 허더랑만"
"글먼 아조 나가먼 안 올라고 작정 �고만 이? 동서 안그려?"
"그렁게요. 안시럽고만요.
거둔댁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안스럽기는 하지만 기수가 알면 또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 되는거라. 거둔댁은 인선이 여학교를 마치도록 큰사위를 시켜 조치를 해 두기는 하였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아니하였다. 성심여학교는 3학년이 되면 특별히 수녀 지원자만을 따로이 공부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은바 있었음이라.
기수는 이제 3학년이라 대학 갈 준비를 한다는 핑계로 설쇠고 나서는 한 번도 다니러 오지 않았다. 거둔댁은 기수가 받은 충격이 어쨌거나 비뚤어지지 않기를 마음속으로만 빌면서도 내색은 하지 못한다.
"기수야. 니 복이 아닝갑다. 아이고 지랄 하필이먼 가를"
목울대로 기어오르는 말을 꼴깍 삼키면서 그네는 한숨을 쉰다.
"참 아지매 들으�능교? 낼모레 데모허로 간다고 헌다던만요."
"아니 안적 못들었는디"
"어뜨케 데모를 헌당가 으? 아이고 시아제보고 좀 물어바 이?"
"아니 저그 지싱만 조까 물어보게 이?"
수천댁은 일어나 대목장이와 무언가 상의를 하다가 담배를 물고 막 불을 댕기는진필에게 다가간다.
"예 성수씨 왜요?"
"박서방네가 근디 낼모레 데모허로 간단디 아싱가 히서요."
진필은 거둔댁과 박서방네가 앉은쪽으로 다가온다.
"아이고 여그 앉으시기라우"
박서방네가 부엌바닥에서 깔고 앉는 앉을께를 내민다.
"긍게 부안으다 집을 짐서나 그걸 우리덜 헌티 말허자먼 대부를 히 준다고 � 는디 그걸 거그 살고 있는 사람덜 헌티 싹 몬자 히주었디야 긍게 가만 있을수 가 있간이?"
"참 긍게 여그서는 빨리 나가라고 험서나 집 짖는디서는 또 밀리고 아이고 시 상으"
"긍게 누가 거그꺼정 갈라고 허겄어요? 아이고 거그 사람덜 인심도 아조 사납 더래요. 모다덜 글더만요. 아 깽이 한자루 안 빌리 준다는디요 머"
"아니 금방 쓰고 준다는디도?"
"긍게 말여"
"집도 안 장만 히놓고 무조건 가라고만 헝게 미리가서 둘러보고 온 사람덜이 가만 있겄어? 그리서 모레 아적때 여그서덜 도청 앞으로 갈 모양이여"
"참 우습게 되�고만요?"
"인자 밸수 있가디 건건사사 물고 늘어질 수 밖에는 적으 그럴시나 우리 그럴 시나 똑 같은게 낼모레만 데모를 헝게 아니라 계속히서 헐 수밖에 없는겨 살 방도가 없는디 어쩌겄어"
그 무렵 여러차레의 데모를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재무부는 수몰민들에게 집과 토지를 대부해 주기로 해놓고 현지 주민들이 반발을 하자
그곳 서외리 사람들에게 먼저 대부를 해 버렸으니 그곳으로 이주를 서두르고 있었던 잿말사람들이 발끈 들고 나선 것이다.
결국 보상금 증액 문제로 대치하고 있던 주민들과 당국에서는 그 대립이 극에 달하여 주민들이 공사 현장에 모여 또 한차례 데모에 돌입했다. 댐 공사는 일시 중단되고 군수와 경찰서장이 나와 주민대표들을 설득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마무리 손질에 들어간 공사와 비만 오면 금방 만수가 될거라는 풍문이 맞바람이되어 옴팍쟁이 잿말을 병풍처럼 둘러친 국사봉 묵방산 건지산 숲의 나뭇잎삭들을 하얗게 뒤집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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