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34]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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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7500&n=34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34] - 김여화

 

 

 


 

 

제목  [34회] 어리동 참꽃 필적에-2
등록일  2001-11-29
어리동 참꽃 필적에-2


본시 나물이나 어떤 곡식이든 지나치게 한 가지만 먹고 사는것도 다 이치에 맞지 아니하여 고구마로 겨울내내 봄 내내 먹는 이들은 말로는 창자의 벽이 얇아진다거나 또는 매밀만을 죽이나 묵으로 전병으로 늘 먹으면 장이 밀룽밀룽 얇아져 빼빼마르는 것이라 하였으니 본시 메밀의 성분이 열을 내리게 하고 장기를 차게 하므로 더운 여름에 냉면을 먹는 것은 이 때문이라.

나물이란 한가지만 먹을 때는 독기가 있어도 더러 다른 것과 함께 하면 독기가 감하기도 하고 그리하여 물구죽에는 둥그레미와 고수를 넣는다든가 된장을 나물과 함께 먹도록 하는 것은 부황을 막는 된장의 성분중에 독기를 푸는 성질이 있어 그러함이라.

많은 사람들이 된장을 만들적에 매주를 서너 말씩 끓이고 간장을 담을 적에도 열 동이씩 담건마는 하도 먹는 것이 된장 간장이니 그도 모자라는 사람들은 된장 품을 낸다.

된장맛도 좋아야하니 거둔댁은 간장을 담을 때에도 커다란 황에 두어개씩 담아 이때에 된장을 거르는데 박서방네를 시켜 된장 떨어진 사람 있는가 알아보아 그네를 불러다가 된장을 거르는 일을 시키고 대신 된장으로 주었으니 이것은 품을 받기는 미안하고 또 일을 해 준 아낙의 입장에서는 거져 얻어먹기 민망하니 그러한 것이다. 아낙들은 된장이나 간장이 필요하면 더러 박서방네에게 귀뜸하여 그네가 거둔댁한테 이암을 들였다가 그리하는 것이라.

쑥을 뜯어도 바작으로 뜯어다가 말리고 아무리 힘들여 장만 했다하더라도 시
안 쑥이 필요한 집에는 나누어 주는 게 보통이라. 삼 삼는 품앗이 방에는 언제나 아낙들의 우스게 소리가 끊이질 않는데 배고픈 보릿고개 인지라 어쩌다 주인이 큰맘 먹고 쑥 범벅이라도 한 시루 쪄 내어놓으면 이 또한 감지덕지 훔치는데 주로 수수 농사를 많이 지은 집에서 그러하고 사실 쌀로 떡을 해 먹는 집은 흔치 않으니 식구들 생일에나 조상님 기일에나 얻어먹을 수 있는 것이라

본시 삼이라는 것은 봄에 씨를 뿌렸다가 오뉴월에 삼대를 쳐서 삶는데 이를 삼굿이라 이르고 삼굿을 할 적에는 가급적 동네서 함께 농사짓는 집이 여럿 모여어울이로 하는 것을 많은 집은 두 집 세 집 적은 집은 남의집 삼 굿 헐 적에 얹혀서 하였다.

잿말에서 삼 농사를 많이 짓는 것은 간좌촌 가상 마당벌에 여름이면 물이 들어다른 곡식은 버리게 되니 삼, 대마는 삼월에 파종하여 자라면 오뉴월이 되어 한질씩 자라 베어내는지라 보릿고개 배고픔 속에서도 삼 농사만은 열심히들 하였는데 보리를 심게 되면 물이 찰 때 모두 썩기 일쑤라 삼대는 그래도 삶아 껍질을 벗겨 쓰므로 비가 와도 일할 수 있으니 삼을 심는거고 또 아낙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베 나는 일이 제일인지라.

베 짜서 내다 파는 것이 큰 소득이요. 또한 식구들 옷을 집에서 베를 짜서 자급해야 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긴긴 봄날 잿말의 여인들은 삼을 짜개고 삼느라고 무릎이 빨갛게 붓고 배고픈 속 침까지 삼실 삼느라 쳐 발랐싸니 창자가 오그라 지는 듯 겅괴역질도 나오고 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여름에 껍질을 벗겨 줄에 혹은 다무락에 널어 말렸던 원삼은 타래지어 창고에 두었다가 가을 일 다 하고 시안내내 짜개고 실을 삼아 물레에 잣는데 설 잣어야 좋은거라.
너무 빡빡하게 잣는 것은 옳지 않으니 잣은 실을 돌것에 올리는데 돌것에 실을 올려 타래를 만든 삼은 잿물에 다시 삶고 바래는 것이라. 이 잿물이라는 것이 왜인들이 들어와 화학 약품으로 쉽게 사다가 쓸수 있었지마는 그 옛날에 아니 잿말에서만도 돈을 주고 사기가 비싸니 잿물을 집에서 받치는데 고춧대, 미영대,깻대 독한 것들을 따로 아궁이에 땠다가는 그 재를 시루에 담아 커다란 옹백이에 올려 잿물을 내리는거라.

이리하면 미끄럽고 독한 잿물이 흘러 내리는데 이 받쳐진 잿물에 돌것에 올렸던 타래를 담그고 방에다 그릇채 두어두고 이레동안을 연신 불을때서 방을 뜨겁게 달구어 익히는 것이라. 이때는 잿물에 담그는 것을 한 집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사람들이 어울어서 하고 각기 자기 것표시로 헝겁을 묶어 구별 할수 있게 하는데 이 과정을 일러 실굿이라.

그렇듯 이레동안 방에 장작불을 쳐때고 익힌 삼타래는 물가에 가지고 나가 빨래 방망이로 두들겨 빨면 삼 껍질이 떨어지는거라. 잿말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을 똥을 벗긴다 하였으니 젓먹이 아기 똥걸레 빨 듯 삼 타래를 물속에 들어가 흔들어대는 이 모습도 구경이라.

이렇게 빤 삼 실은 다시 돌것에 올려 작은 또아리로 만들어 쌀겨 몽강져에 다시 담궈 자연색을 들이는데 쌀겨도 흔치않아 얻어다가 하는 것이 쌀겨에서 노오란 물이 자연으로 들어 진하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놀장한 것이 품위가 있음이라. 이렇게 색이 든 또아리는 다시 돌것에 올려 실을 풀어내리는데 또아리를 작게 만드는 것은 나중에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

풀어내린 실은 도투마리에 감아 바디 사이마다 실을 꿰어 베를 나르는데 베를 날 때도 삼바구리 흐트러짐을 방지하기 위하여 실이 잠자라고 모래를 부어놓고 나르거나 더러 덕석에 부어놓고 두태같은 것을 부어 실을 눌러 놓는 것이다.

베를 날 때는 다시 도투마리에 감기 위하여 숫불을 피워놓고 베를 나는 것이다. 베를 나를적에 메밀풀에 된장을 넣는 것은 된장에 끕끕한 기운이 있어 베를 짤 때 실이 끊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며 수십 수백개의 솔쌔 뿌리로 만든 솔에 메밀풀을 먹혀 삼 날줄을 손바닥에 받쳐 솔질을 하면서 숫불에 은근히 말리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베나는 과정이라.

이 베나는 솔은 어린아이 입가양이 터서 무르면 가위로 조금 베어 접시에 놓고 불을 붙여 그 재에 꿀을 섞어 바르는데 이를 솔치라하여 입이 크려고 아프는 것을 베 나는 솔을 담방약으로 구하였다.
솔은 베나는데 있어서 필수도구요. 또한 약이라.

도투마리에 감은 실은 거의가 삼베 두 서너필 정도로 베를 나서 감아 베틀에 올리게 되는거라.
베틀에 올린 삼실은 도투마리에 감긴 상태에서 발에 매는 끌신이 베틀의 용두머리에 걸린 눈섭노리를 움직이여 누름대를 들어주고 잉앗대가 움직이며 바디를 치는데 이때 북통에 실꾸리를 넣어 북을 양측으로 오가며 바디를 치는 것이라.

긴긴봄날 베틀에 앉은 아낙의 힘은 쇠진하고 무테허리 감긴 몸은 천근 만근 무거운데 두언동 귀바울골 사양리 골짜기 헤집어 우는 뻐꾹새소리 처량타.
"달가닥 달가닥 외 구두 소리 가다가 들어도 정든임 소리 연중에 곤중에 가장 이라고 밥상만 들면은 짜증만 나아네.
"이 베를 짜서 우리님의 도포 짓고 낮에 짜면 일광단이요. 밤에짜면 월광단이
라."
"산천이 높아야 고랑도 깊지 나어린 이내소리 깊을수야 있는가"
"팔라당 팔라당 홍옹갑사 대엥기 거적문 밖으서 날 홀려내네"
"구름은 돌아 산넘어 가아고, 사람은 돌아 임 찾아 가아네"
"설- 얼렁 설- 얼렁 바람도 설- 얼렁 우리님 아- 앞에 나도나 설- 얼렁"

"물레야 물레야 비빙빙빙 돌아라 남의집 귀동자 밤이실 맞는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 응 응 아라리가 났네"
"담방구야 담방구야 너그국이 좋다더니 조선지방은 멋허로 나왔느냐. 우리국 좋지마는 조선지방 담방구지 한조마니 가지고 담방국지 마이산 꼭대기에다 사 르르르 던져놓고 속잎나고 겉잎나고 일추월장 하여서 키워가지고 장두칼로 널 어말려 영감도 한 쌈지 총각 낭군도 한 쌈지 곱돌 하지다 피워놓고 영감도 한 대 총각 낭군도 한대."

베를 짤 때 바디만해도 여러 가지라. 삼베같은 것은 일곱새 아홉새 정도로 되지만는 명주베는 열새 이상 보름새를 주로 하니 본시 바디의 새는 그 수가 많을수록 촘촘히 짜지는 거라.

이 바디의 구멍은 한 새가 마흔이므로 명주라는 것은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로 이 즈음의 잿말에서는 누애를 키우면 모두 고치 상태로 조합에 내다 파는걸로 값이 비싸니 명주베를 나는 것은 흔치 아니하였다. 얼기설기 얽은 댓가지 부러져 구멍뚫린 창호지 새로 들어오는 풀 냄새 종다리 소리 베틀에 앉은 아낙의 신세 타령이 돌다무락을 넘어 멀리 간자터 냇가에 아지랑이 넘실대는 들판에 낮으막히 깔린다.

"밀방애도 찧어소 질쌈도 하였소 물명주 수건을 적시면서 울어도 보았소 아리 아리... ..."
"쑥대머리 귀신이요 정화북방에 잠자리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 보고지 고 오리정 장병두를 일장서를 내가 못받어 봤으니 부모보향 글 공부는 겨를이 없어 이러신가"

이때에 잿말 가상에는 장작불 부석에 모아놓고 물가로 나가 대수리를 잡는데 잠깐이라도 생 떡국 끓일 한 사발은 잡을 수 있으니 손님이 온대도 잠시만 나가그물을 던져 쏘가리 불먹터구 징게미 중터구 꺽지 동사리를 흔히 잡았는데 강쟁이쏘 앞에는 자가사리가 많고 매기는 흔한 것이고 물가에는 납자루 줄납자루 모래무지 치리 버들치 끄리 피라미 갈겨니 초어 각시붕어 참붕어 누치까지 늦봄 물 밭을 때에는 징게미를 수대로 하나 가득 잡는 것도 흔한 일이다.

그 옛날에는 은어도 있었다는 어른들의 전해오는 말이지만 줄종개와 왕종개도 있었으니 납자루라 부르는 납조리는 칼납조리 납조리 줄납조리 가시 납조리 그 빛깔이 곱고 예쁜 것이 아이들의 심심풀이로 흔히 고무신에 담아 들고 다니는 거라.

운암강에 빙어가 처음 나온 곳은 용당굴 앞 이었으니 처음 일인들이 빙어를 들여와 방류했을때는 치어를 방류했는데 훗날 일본인 가쓰로오가 운암저수지의 빙어 서식량을 조사한바는 연평균 130여톤으로 발표를 하니 본시 빙어 혹은 공어는 한대성 담수어로 내장이 없다해서 공어라 부른 것이다.

이 공어의 크기는 7센티 8센티에 불과하여 내장이 없으니 뱀장어처럼 바로 요리를 할 수 있는 독특한 어종으로 일본인들도 귀족들만 먹는다는 것을 일본인 이스까라는 이가 운암저수지에 옮겨는데 여러곳의 수질좋은 저수지중 운암저수지가 번식율이 제일 높았던 것으로 그가 개발을 서두르려 할 적에 해방이되니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고 본시 공어는 고온을 싫어하는 어종으로 겨울에만 수면으로 나오는거라.

여름이면 수온이 올라가 깊은 물속으로 숨어버린다 하였다. 아무리 홍수라 해도 물속 깊이 떠내려가 부화되지 않는다는 희귀한 것이 공어다. 하여 이른바 겨울잠을 자는 것이 고기들의 통례인걸 이 공어만은 여름 잠을 자는 것으로 알려진거라. 이는 댐이 준공되면서 수심이 깊어져 더욱 번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잿말에는 수장되기전 조상의 이장을 서두르는 집 더러 잿말 산 기슭 건지산 사양리 뒷동산으로 밭자리 닦아 의지간 짓는 사람도 있었지마는 산 중트리마다 골짜기 조금 번번한 곳에 움막을 지을 터를 다듬는 것이 일이라. 비록 잿말만이 아니라 간자촌 지천리 하적동 구성물 날이새면 하나씩 생기는 것이 밭이라.

이즘의 보릿고개 속에서도 조상의 땅을 멀리 떠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시 옹기종기 모여 앉을 터전을 잡는 것이라.
입석리 두언동에는 비교적 수몰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실 두언동 턱 밑에 있는 골짝이라 하겠으나 만일에 저들이 말 하는 것 처럼 수몰선이 저렇듯 잿말을 몽땅 삼키고 그 위 령터에 그어졌다면 두언동은 안전지대라 할 수 있다. 그러하나 두언동은 잿말에서 가랴하면 솔찮히 국사봉 중턱에 홈태기 인 것만은 확실하였다.

두언터는 국사봉 자락의 동 남향진 홈태기로 이곳에도 눈깔배미가 있어 농사를 지을수 있으니 잿말 사람들 많은 사람들은 두언터 어리동으로 옮기거나 상운암 쪽 귀바울골로 염재로 움막을 짓기로 마음먹은 이들이 있었지만 비교적 잿말의 사람들은 다 진필과 마찬가지로 두언터쪽에 종산이 있었고 더러 밥을 굶지않고 사는 이들이 있어 상운암 쪽으로 터를 잡는 경우도 있었다.

진필이야 상운암에 밭 한 뙈기 사서 그곳에 있는 터를 잡으면 되는 일 이었다. 허나 이때 상운암은 집을 지을 수 있는 땅들은 그 값이 예전과 같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학교를 짓고 관공서가 들어서는 자리가 넓지 않기 때문이라. 하여 소재지의 형성도 길가 양측으로 길게 이어질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본시 진필은 거둔댁한테 이야기 저야기 곰살맞게 알려주는 성질이 아니다. 이번에도 잿말 집을 옮겨 짓는다는 사실을 거둔댁 한테는 말하지 않더니 집 뜯는다는 전날 밤에야 말하는 것이다.
"낼 아척으 집 뜯는 기술자가 온당게 밥 준비를 히야 헐 것이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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