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21]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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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4461&n=21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21] - 김여화

 

 


 

제목  [21회] 풍습-3
등록일  2001-10-15
풍습-3


쌔 한짐은 보통은 너발이 되게 날개를 엮어 3장 정도가 나오는데 삼칸 허청에 백여짐이 필요한 것이라. 쌔를 비어다가 지붕을 이는 까닭은 오래가게 하려는 뜻도 되지마는 논이 없는 집에서는 어차피 짚다발도 사야만 하였으니 논이 많은 집에 일을 하여주고 얻어다 이는 것이 보통이다. 힘이 있는 사람들은 아예 산천에 쌔를 비어다가 지붕을 이는 것이었다.

잿말에서는 몸채를 �집이나 또는 측간에도 쌔를 이었는데 측간에 분항을 묻지 못할적에는 흔 한 돌맹이 판판한 것 두 개를 양켠으로 놓아두고 앞에는 정지에서 불때고 긁어낸 재를 수북히 부어놓고 가래 하나 만들어 일을 보고는 똥가래로 재를 긁어 잡아당겨 두었으니 그러한 측간은 흔한 것이었다.

분항을 묻었대도 산에서 작대기 여러개를 베어다가 칡넝쿨로 엮어 분항위에 걸치면 그것이 곧 오늘날의 화장실이라. 그도 못한 집에서는 수수대 날갯장처럼 엮어 세우고 그 위 봉대기에 쌔 한다발 걸쳐두면 측간이 되는거라. 더러 산밑에 측간을 짓고 조금 높은 곳에서 올라가는데 통나무를 엮어 통나무 위에서 볼 일을 보거든 아래로 떨어지는데 사람의 똥을 되야지가 먹고 되야지 똥은 다시 밭에 거름으로 내어 짐승과 사람이 어울어져 자연히 서로의 필요함을 채우는고로 사람들의 지혜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렇듯 측간 밑에 되야지를 키우는 곳에 볼일을 보러 갔을적에는 엉덩이 밑에서 되야지가 꿀꿀거리며 사람의 똥을 받아먹기 위해 고개를 쳐들고 고함을 지르는데 어쩌다 똥이 되야지 머리위에 떨어지게 되면 되야지는 체머리를 흔들어 다시 엉덩이에 묻는 것이 보통이라.

그러한 측간에 처음들어가 본 이는 기겁을 하여 나오려던 똥이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하나 되야지를 키울 수 있는것도 쉽지 않으니 사람이 먹을 것도 없는 시절에 되야지 줄 구정물이 나오겠는가? 논이라도 있는 집에서 되야지 새끼를 사다가 키우게 되지 그나마 없는이는 못하였다.

배메기라 하는 것은 주인과 소작인이 그 생산된 농사 소출이나 생산된 소, 등을 반타작 하는 것을 말함이라. 이를 병작이라고 하지만 잿말이나 임실 어디든 흔한 일로 송아지 새끼를 가져다 길러 그 송아지가 새끼를 낳게 되면 우선 먼저 송아지를 갖고 어미는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상례라.

그 어미를 키우려거든 다음에 새끼를 낳아 갈라먹게 되는데 거의 사람들은 새끼를 낳게되면 어미는 돌려 주어서 배메기를 여러마리 놓게 되는데 그 소가 어미되어 팔면 논 마지기 사기는 일도 아니었다. 되야지도 마찬가지이며 배메기 염소새끼도 그렇듯 배메기로 키우는 이가 많았으니 이는 6,25가 끝난 뒤 오래되지 않아 모든 것이 부족했던 때문이라.

농사짓던 씨앗도 그리하여 봄에 가져온 씨앗을 가실에 농사지어 배로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잿말에서 농소를 부리는 집이라면 몇 집 되지 않았으니 농소를 가지고 있는 것만도 부자라. 이 소를 빌려다가 쓰는데도 남정네 이틀품으로 받고 여자는 남자품의 배로 받는 것이 보통이라.

거둔댁네 나락 훑으는 날은 텃논에 덕석을 여러장 깔고 아낙들은 홀태를 제 각각 가지고 와서 덕석 가상으로 돌려 세우고 옆에 나락 다발을 가져다 쌓아놓고 홀태에 걸쳐 훑어내는데 나락다발을 묶었던 매끼를 세어서 품값을 쳐 주기도 하였고 더러는 그져 하루 품으로 쳐주기도 하였는데

매끼로 훑으는 대로 삯을 준다하면 기운세고 잘 훑으는 사람들은 그날 하루 품 값이 더하게 마련이고 훑은 만끔 삯을 주니 욕심많은 이는 죽을동 살동 나락을 훑으는데 남정네들은 연신 �어내는 옆에서 짚다발을 묶고 훑어낸 나락을 당그래로 잡아당겨 검부적은 갈퀴로 긁어내고 가마니에 담는게 일이다. 또한 나락 다발도 옆에 가져다가 쌓는 것이 일이라.

나락 훑으는 마당은 남정네 아낙이 모두 동원되어 시끌벅적 하게 마련이다.
"아이고 거뜸이 아지매네 나락 안 훌으먼 인자 우리는 어뜨케 먹고 산다요?"
"그렁게나 말이여. 인자 논덜 다 물차먼 쌀밥 먹고 �어서 어찌 살꼬 이?"
"참 언지는 쌀밥 먹었간이 근디야? 없는 사람은 매한가지제"
"글도 급헐때는 보드랐지 멀 그려? 거뜸이 아지매가 없는사람 시정 질로 잘 알어주시잖여?"

"거 씨잘데기 없는 소릴랑 말고 어여 나락이나 훑어들 시끄라 죽겄네 그게 다 무신 소용여 당장으 내년 농사를 질랑가 못 질랑가 몰른디"
"수천 아지매는 먼 말씸 이다요? 내맹년 겨울이나 물이 찬단디요?"
"아, 긍게 그것을 어찌케 알어? 시방도 솔찮히 공사를 많이 �다는디 이?"

"그려 수천 아지매 말씸이 맞어요. 내년이라도 어쩔랑가 몰릉게 이사 빨리 허 라고 맨날 회 허잖요?"
"그놈들이사 물돈 줄텅게 이사가라고 말만 허먼 되겄지맹 내 집 두고 이사를 못가겄응게 글지"
"인자 곧 거뜸이 아지매네도 맨리랑 허신당만요. 거뜸이 아자씨가 여직 조상 님 산소를 못 욍긴다고 버티시갔고 면이서 맨날 나와서 졸라대잖이요."

"이 댁으서만 가만 있으먼 물이 안 찰것만 같�는디 인자 거뜸이 아지매네 집 뜯어 욍긴다 산소 욍기신다 헝게 맴이 급허지능것 같으당게요?"
"긍게 기수네 하나시 지신디 까정 참말로 물이 찰까몰라?"
"긍게 그 어른이 물 안 찬다고 버티싱거 아니여?"
"그 높다 헌디까정 물 차먼 대처 집은 얼매나 산으로 올라가야 헌다요?"
"물 닿는디까지 깃대 꽃아 놓았잖이여?"

잿말의 수몰선은 령재 중트리까지로 알려져 있었으니 아낙들이 생각할때는 믿기지 않을 것은 당연 지사다.

본시 운안댐은 물이 찼을때는 막은댕이까지 올라왔으나 큰 물이 지면 간좌촌 앞 냇갈은 년년이 한 번씩 휩쓸고 지나갔으니 더구나 간좌촌 앞은 옥녀봉 경각산에서 내려오는 옥녀동천이 량발이 물과 합쳐지고 쌍암리 골짝 귀바울골 물까지
어울어져 둠벙소 앞을 돌아 간좌촌에서 만나 휘돌았으니 물머리 돌아 흔들때에는 그 기세가 무서웁기 이를데 없고 그렇게 되면 구성물 아래 마당벌을 쓸기 마련이라.

댐 높이를 백 구십육미터나 높여 잡았으니 만일 댐이 완공 되었을적에는 잿말은 물론 흔적이 없고 지천리 간좌촌 도마터까지 월맹이까지 흔적이 없게끔 설계가 된 것이다.
"아이고 그놈의 댐 왜정 때 부텀 새로 막는다고 히 쌌더니만 기언시 막게 �만 요. 이? 물 돈이나 많이 줌사 덜 억울허지라우"
"누가 아니리야? 그나지나 나가먼 사까? 아이고 나는 죽어도 못살 것 맹이여"

"그리도 어쩌 나가야 허덩가 아니먼 저 우에 두언동 만치 올라가야지"
"글먼 기수네 외하나시는 어디로 욍기신디야?"
"글매 이? 그냥반이 시방 버들골 앞이 안 지싱가?"
"맞어라오. 전이 우리집 양반이 거그 산일 허고 와서 맷자리 하나 참 잘 잡었 다고 허�쌌더만"
"잘 잡었으먼 멋헌당가? 이사가게 생�는디"

"아이고 긍게 잘 잡응거지 그냥반덜 가신지가 � 년이여? 죽은 사람도 한 번씩 시상바람을 쐬고 싶으시담서? 긍게 딱 알고 쓰신능가 몰르잖이여. 고만끔 시상 이 돌아가먼 욍겨도라 허고오"
"꿈보담 해몽이 좋다더만"

아낙들의 이야기는 해 종일 이어지고 나락가마니는 쌓여만 간다. 분묘 하나에 대한 보상은 외형상의 상태로 보아 갑을로 나누어 묘지대 마포 창호지 지관수수료 제수와 인부을 산출하여 지급한 것이 4천9백원 또한 묘소에 석물이 있을때는 목도인부까지 산출하였으나 이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라.

박서방네는 소에 달구지 멍애를 채워 나락가마니를 들이고 거둔댁네 마당에서는 나락두지를 만드는데 나락두지는 명년 양식 할 것을 저장하는 것으로 먼저 마당 한켠에 짚다발을 수북히 깔고 그 위에 둥근 맷방석을 깔고 멍석을 여러장 돗바늘로 꿰메어 둥굴게 만든 뒤 덕석을 맷방석위에 세우고 나락 가마니를 들어 붓는데 남정네들이 여럿이 잡고 한쪽에서는 덕석 세운 것을 붙들고 한쪽에서는 연신 나락을 부어 덕석이 잘 세워질 때까지 붙드는데 물팍정도 닿거나 허리께 닿을 때 까지 붓고 잡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 장정들이 나서서 부서라 잡어라 고함지르기 보통이라.

어느정도 나락을 붓고 덕석이 세워지면 나중에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붓고
더러 도고통을 갖다놓고 올라가 붓기도 하는데 이 또한 어려웁다. 이렇게 덕석이 채워지면 또 위에서 가마니로 덮고 그위에는 짚으로 날개를 엮어 돌려가면서 물이 들지않게 하는 것이다.

부잣집에서는 이렇듯 나락 두지를 가실이면 두 세 개씩 만들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여야 쥐들이 침노치 아니함이라.

잿말에서도 몇 째가는 진필의 집에서는 해마다 나락 훑으기도 이렇듯 큰 공사였다. 나락 두지를 만들어 놓고 두지 밑에는 둥글게 돌아가며 물고랑을 파 놓으면 아무리 비가 온대도 나락에 물들지 아니하니 나락은 필요할 때 몇 가마씩 퍼내어 찧어서 가용돈은 물론 장리 쌀 빚도 놓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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