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22]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19:42
반응형
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4462&n=22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22] - 김여화

 

 

 


 

제목  [22회] 면례
등록일  2001-10-15
조회수  12회
면례


거둔댁은 무신 일이든 물차기 전에 하여야만 한다는 맘이 조급하여서 날마다 바람든 처녀마냥 심숭생숭하다. 아랫방 소죽솥에 구정물을 걷어다 붓고도 앞일이 캄캄하게 생각되는 것은 가실에 묘사도 많고 조상님 산소도 모두 이장을 하여야 하니 그네는 친정 부모까지 옮겨야만 된다는 생각에 근심이 태산 같은데 아들이 모두 죽고 없으니 산일도 하면 사위인 진필의 몫이라 그렇대서 친정부모만 먼저 하잘 수도 없는 탓이라.

거둔댁의 친정 부모들의 맷동은 버들골 물가양에 있어 천상 맷을 옮겨야 하느니 남편 진필에게는 한 번도 어찌 할건지 물어 볼 수도 없었다. 그네는 곧 나락 훑을 날을 받으리라 마음 먹으며 넌즈시 진필의 속을 떠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언제나 그랬지만 진필은 모든 일을 다 결정을 짓고나서야 거둔댁한테 그리 알으라 하고 말하는게 보통이었다.

싸늘한 갈바람이 몇 잎 남아있는 밤나무 잎삭을 떨어내는 소리를 듣는다. 집 마당에 섰는 감나무는 진작 잎을 떨구고 바알간 감 낯에 검은 흙점을 두르고 서리 맞아 농익어 나무에서 홍시가 되었으니 감도 따서 뒷곁에 두어야 하거늘 언제 진필이 감을 따려는지 그마져 올해는 딸 틈이 없는 것이다.

진필이 돌아온 것은 꽤 늦은 시간이다. 소죽끓여 다 퍼주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난 뒤 그는 외양부터 둘러보는 기척을 듣는다. 예 같으면 소죽을 끓이고 퍼주는 것은 박서방네 몫이었지만 박서방네를 제금 내놓은 후로는 거둔댁이나 진필이 직접 소를 거두고 있었던 탓이라.

박서방이 제 스스로 농우소를 거둔다 하였지만 진필은 사양하고 대신 박서방 한테는 송아지를 배매기로 내주니 박서방은 송구스러워 여름에는 수시로 와서 깔짐을 부려놓고 가실 들어서는 내외가 함께 와서 여물도 썰어놓고 가기도 하였지만 딸년 시집 보내느라 바쁜 탓에 그보다는 거둔댁이 소죽 정도는 스스로 끓여 주겠노라 사양하니 진필이 외출을 할라치면 소죽은 거둔댁의 소임이 된 것이다.

"저녁이나 잡수고 그러고 댕기시오? 인자 나락도 훑었겄다 맨날 나가싱게 잘되 �네요 이"
"왜 밥한끼 못 얻어먹고 댕길까 그런가?"
"왜라우? 능력있으신디 어디 밥 한끼 뿐이겄소?"
"아직도 안풀링겨? 참 여자덜 속은 어찌 그러코롬 오래도 가능고?"
"긍게 쉬염이 안 난담서요?"
"저본날 종일 대사집이서도 안 뵈이시더만 어디 갔다 외�어라오?"
"이, 일땜시 사람조께 말허고 오니라고 초례청 챙기는 것만 보고 임실 나갔고 만 신안리 가서 지관 조께 만나고 거멍굴 재 넘어가서 챙길 것 조깨 일러놓고 옹게 해 넘어가 버�어. 그때 참 요각이랑은 누가 따러 갔능고?"

"참내 그새 물어보요? 매칠이나 지냈는디. 아 진작 재양까지 왔다 갔는디 그나 지나 나락 훑은 사람덜 삯이나 주고 댕기시유? "
"어저끄 박서방헌티 나눠 주라고 �고만. 그것보담 새달이 이장 허기로 날 받 었응게 빠징것 없이 준비허고 장인양반은 어디로 모시얄지 생각중인디"
거둔댁은 말이 없다.

진필이 그러함은 애초부터 알었으니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이장 할 장소를 말함이지만 거둔댁이 달리 어디라고 할 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았던 때문이라.
"이짝 갈공절 가기전이 산 날맹이 국사봉 아래쪽이 어떨랑가?"
"쉬염안난 여자가 멀 알간이요. 인역이 알어서 허시야지 그 꼭대기다 어치케 "
"거그가 우리 산 끝트머링게 기냥 거그다 모시야겄어"
"난중의 집안에서 말 나먼 어쩔라고라오"
"그짝은 귀퉁잉게 우리 조상님덜이 안지신게 좋고 증조부님이랑은 어리동으로 모실턴디머"
"아 증조 할아버지 산소는 갠찮담서요?"
"내 맘이사 그놈덜 헌티는 물 안 닿는다고 큰 소리는 쳤어도 만약으 큰 물 져서 물다먼 거 먼 죄여"
"결국은 그럴람서나 고집을 부리싱게 모다덜 머라고 �쌌지요?"
"기수도 안 그럽뎌? 아버지는 맨날 넘덜헌티 실컷 일 봐주고 욕얻어 먹는다고? 긍게 부야나 죽겄다고 허잖이요? 하나빼끼 없는 자식이 말 헐때는 듣지도 안허 시더니 참"

"난중으는 내가 왜 그�는지 알게 되야. 갠찮히여. 수몰선이 전에 말 �던 것 보담 더 올라 갈 것 같이여. 아무리도 말이여"
"적아버지는 댐 막는디 갔다 외�다요? 전이 박서방네가 글더만 "
"갔다오먼 멋혀 그런다고 잿말이 기냥 있간디?"
"집은 어쩌실라고요?"
"집도 욍기야지 두언동 쪽으로다 아니먼 소재지 따러가덩가 "
"글지말고 우리도 기냥 모닥그리서 전주다 집 하나 장만 히버리지라우"
"생각은 있는디 우선 기수 하숙집부터 어뜨케허고 히야지 "

"큰 사우가 빌리간 돈 머시냐 우리가 전주다 집 사게 되먼 줄라능 갑더만요?"
"그럼사아 좋지. 아주 사뻔지고 기수란놈 거그다 두고허먼"
"물돈 나오먼 어쩔라고요. 대처 얼매나 나온다요 우리는?"
"산소 이장히 모시야지 집 욍기야지 멋 남겄는가? 사당도 욍기야 헐턴디 양요 정도글고 "
"그거야 종중에서 허실턴디요."
"그리도 경비를 누가 대야. 논이라도 있는 우리가 내야지"
"논이사 우리만 있가디요?"

"아 수천 성네는 그까짓거 얼매나 되야. 글고 거뜸이 처가집 것은 내 임자앞 으로 따로 히서 작든 많던간에 전주다가 멋 하나 사 줄텅게 그리 알고 큰사우 보고 재촉허지마. 그놈도 히먹고 살라고 히 쌌는디 "
"울오매 가신지가 십년 넘었는가요?"
"인자 꼭 구년째 아닌가."
"육탈이 되�으까라우?"
"벌씨 되�지 안되�다고 히도 먼 걱정여 임자가 손대간디?"
"그리고 아릭께 지천리 누가 이장헌디 육탈이 덜 되야서 고생�다고 안 헙뎌?"

"아, 그 양반덜은 암시랑 안허당게?"
"아이고 참 말씸좀 가만가만 허먼 누가팬다요? 일꾼덜 고상허까 싶응게 글지 라우 일꾼만 고생 허간디요? 울아버지 울오매 죄시러서 글지라우"

본시 거둔댁의 부친 갈담양반은 거뜸이서는 유지라 하였다. 그곳 사람들이 워
낙이 바지런하고 지악시럽게 사는 사람들인지라 살림살이가 택택하였는데 일찍이 삼화 소학교를 나와 그 사람됨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삼화소학교는 청웅 구고리 사마재 학교를 말함으로 삼화소학교는 선거리 김영원 선생이 설립하였는데 본시 사마재는 청웅 구고향교 유림들의 소유라. 향교 소유 사마재를 교실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사마재 학교라고도 하였으니 김영원선생은 일찍이 동학 혁명에 가담하신 분으로 근동에서 우러르던 분이다.

영원선생 이 분은 1853년 철종때에 선거리에서 나신 분으로 일찍이 학문에 정진하여 21세때에 서원의 색장이 되셨는데 대과에 여러차례 응시하면서 그 시절 실력보다는 금력으로 합격되는 부패상을 보고 대과를 포기하고 시목동에 숨어 사신분으로 선거리 감나무골에 삼요정을 짓고 후학을 지도하는데 전념하시어 3,1운동의 33인에 드셨던 박준승선생과 양한묵선생을 제자로 두셨는바 전주에 창동학교를 설립하신바 있고 청웅의 사마재 학교를 세워 신교육에 힘쓰셨다. 선생은 여러 각도로 배 일 운동을 하셨는데 삼화학교 출신들이 3,1운동의 주 인물들이었다.

선생이 교장으로 취임하여 갈담양반도 거뜸이에서 감나무골까지 재를 넘어 학교에 다녔는데 학교의 운영은 독립운동을 함께했던 최승우 선생이 뒷 받침을 하시었다. 최승우선생 역시 선거리에서 나셨으니 이 분들은 동학에 패전한 후 6년동안이나 회문산에 피신하였다가 후에 동학 운동과 한말 구국운동을 하신 분들이니 이 분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갈담양반은 의지가 곧고 사리가 분명한 사람으로 거둔댁과 세 아들을 두었다가 6,25 때 빨치산에 의해 한꺼번에 잃고 홧병으로 돌아가심이라.

거둔댁의 친정어머니 김씨도 남편 병구환에 정성을 다하더니 남편을 잃고 한달여만에 세상을 뜨니 거둔댁은 장녀로 그때에 이미 잿말에 시집 온 후였다. 진필이 사위로서 모든 장례 절차는 물론 이제 이장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삼화 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김영원선생과 최승우 선생의 정기를 이어받아 삼일운동의 주축이 되기도 하였는데 훗날 갈담양반도 왜인들이 잡아가 감옥살이를 했었더니 그것이 화근으로 오랜날 골골거리며 고생을 하다가 세 아들을 잃고 돌아가신 것이다.

"참 그 양반이 된 양반이었는디..."
"어떤 사람은 머 덜 되�다요?"
"말 허는 것 허고는 임자 요새 어째 삐닥허게 말투가 쓰겄능가? 임자답지 않게 스리"
"조까 물어봅시다. 그 미옥인가 먼가 그 지집 말이요. 참말로 당신 아를 갖었다
요?"
"어허 참, 내 말 안혀? 나는 그 아 손목 한번 안 잡었다고?"
"아 왜 큰 소리를 내시요오 ? 안�으먼 되�지"
"한번 헌소리 못 알어 들응게 그러능거 아닝가? 무신 여자덜이 그리 찔깅고 참 말로 내 손목이라도 만지보고 임자헌티 그런말 들으먼 속으로라도 좋겄다."

"긍게 맘은 있으�다 그말씸 아니요?"
"이거바 그 아 난중의 나보먼 아매 애비를 닮겄지 두고 보먼 될거 아닝가?"
"긍게 아니고 누가 그럽디다. 고년 산달 돌아옹게 아지매가 미역이라도 조께 부조 히 돌라고 안허요 ?"
"머여? 어떤 여펜네가 그따위 소리를 혀 누구여 도대체? 그리서 머라고 �능 가 "
"머라고 허기는요? 부조허라먼 히야지 그�지라우"
거둔댁은 입가에 빙글빙글 미소를 머금고 진필을 바라본다.
"그럴 것 없어! 아니 참말로 그러겄다는 생각잉겨?"
"예에. 아 기수 동상 본다는디 큰 오매가 기냥 있으먼 말이 되겄어라오. 담에 기수오먼 내 니 동상 생�다고 갈쳐줄라능만"
갑자기 진필의 얼굴색이 확 달라진다. 거둔댁은 그런 진필의 안색을 은근히 살펴보는데

"내 이놈을 기냥 쫓아내 버리야지"
벌떡 일어나는데 그 기새가 어찌나 대단한지 얼른 말을 바꾼다.
"당신이 아니먼 되�지 머 그렇게 누구 죽일 것 모냥 허실 것 까지는 없어라 우"
"미역 부조허라는 여자가 누구여 어?"
"아니라도 부조허먼 공 되지라우 내가 언지 누구 애기낳는디 미역 사줌서 애비 가 누구냐고 물어보고 사 줍뎌? 글고 한 두집 사주었간이요?"
"임자도 솔찮허고만 이? 고놈을 죽이얀당게?"
"누구요?"
"있어, 임자는 알 것 없응게"
"긍게 고놈은 안 갈쳐주고 미역부조는 허라고 히싼게 내가 이러는 것 아니요."

"남아일언 중천금이라 �어. 고만두어"
"그리서 미역은 사다 주꺼라우 말어 버리꺼라우"
"임자 알어서 허고 잡픈대로혀"
"그리요오. 여자덜 일 멀라 상관허요 이. 글먼 산소 욍겨 모실라먼 멋멋 준비히 야 되까라우?"
"아래뜸 성수씨보고 상에허먼 되잖여"
"아이고 그리요. 알어서 상에허먼 되겄지라우. 왜 성정은 내시유"
"도란 장 날 임자가 지사 모실것 삼실과 좀 사고 맹태포랑 글고 조고도 여러마 리 사도록 혀 왜냐먼 여러 빈상잉게 여러번 쓸 걸 다 사라는 뜻이여 알었어?"

"우선 우리 두 양반 허고 그담에 하나시 할매 두 분만 준비허먼 될 것 아니라 우? 사당이야 난중의 허먼 될텅게로요"
"할매가 두 분잉게 두 양반 다 따로따로 히야지"
"알었어라오 언지는 그거 몰랐가니 새삼시럽게 그�싸요?"
"장 이튿 날 헐라고 헝게 시루구멍 막을 준비도 허고? 우선 장인양반 부텀 욍 겨 모시고 그날 지관 뵈여서 하나시 산소는 자리 잡을라고 헝게 그렇게 알어 서혀"
"글먼 갈공절 끝이는 자리 바 놨가디요?"
"긍게 그날 아적으 지관이 온당게 �고 산에 올라가서 일꾼덜 일 시키놓고 내 가 가서 버들골로 가서 파묘를 헐 챔잉게"

"당신이 손수 허시게라우?"
"글먼 넘 시키겄능가 내손이로 히야지 만약으 임자 말대로 육탈이 안되�으먼 것도 곤란허잖여. 박서방 대장쟁이 허고 일꾼 하나 더 �고 가서 파묘허고 갈 공절 넘어는 수천 성님보고 일꾼덜 �고 천광을 파라고 허먼 되겄지"
"글먼 산신 제물도 둘로 싸야겄네라우?"
"글지, 글고 난중으 성분제 지낼적으는 두 양반을 상을 채리고 일꾼덜 땅띠기 히양게 새참덜 잘 챙기고 더 특히나 넉넉허게 장만 히여 조상님 욍겨 모시는 디 서운허먼 안 되야. 머시거나"

진필은 장인과 장모의 묘소를 옮겨드리기 위하여 여러 가지 준비할 것들을 거둔댁한테 이르고 아랫방으로 내려 가는지 문을 열고 나간다. 거둔댁은 걱정이 태산이다. 환골이 되었을 부모라지만 혹이 더러는 몇 십년 되어도 산사람마냥 환골 탈퇴가 되지 아니한 채로 파묘하는 사람들이 고생하는 경우도 있으니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하였지만 거둔댁한테는 내키를 하지 않는다.


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4462&n=22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22] - 김여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