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19]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19:47
반응형
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4458&n=19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19] - 김여화

 

 

 


 

제목  [19회] 풍습
등록일  2001-10-15
풍습


박서방네 둘째딸 함 들어오는 날은 잿말 사람들까지 모두 간좌촌에 모였고 근처에 사는 아낙들이 산적을 뀌고 철질하는 기름냄새며 뒤안 떡 매 치는 소리로 아낙네들 웃음소리로 시끄럽다.

용수지른 술 독아지에서는 술이 알맞게 익어 약간은 노른 빛 아니면 갈빛에 상큼한 술향기 피어오르니 절로 잔치집 냄새라. 어느때쯤에는 촌에서 술을 만들어 먹는 것을 법으로까지 금지하여 들키면 벌금을 내는 것은 물론 술 독아지 까지 뺏기는 일이 허다 하였다. 그네들은 더러 농가에서 뺏어간 술을 몰래 자기네끼리 먹다가 들켜 하나밖에 없는 모가지, 공무원 옷을 벗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하여 밀주라는 이름의 술은 암암리에 큰 일 치르는 집에서 쉬쉬 감추며 익혔다가 썼으니 이때에 잔치집 술은 밀주 단속이 조금은 끄막 해 졌을 때다.

사실 이때 술집에서는 막걸리를 통으로 들여다가 물 몇 동이 부어 섞어 판 것인데 잿말의 장터 가상에는 술집이 한 둘이 아니었다. 게다가 갱변에 약장사 굿이 들어와서 날마다 마이크를 들고 마이크 시험중을 외치고 있었다. 이곳에 약장사 굿은 장마다 살다시피 하였으니 잿말 앞 장터는 꽤나 북적거렸는데 더불어 술집들이 줄을 서서 물 돈 나온 사람들 보상금 받아가지고 조끼 주머니에서 녹아나고 있었느니
"아이고 저놈의 약장시 굿이나 조용허먼 좋겄네요. 이"

"조용허먼 돈이 벌린당가? 시끄러야지. 그나지나 약 잘 되도 안헌놈의 것 갖 고 와서나 촌사람덜 앤간히 울구야지요. 저녁으는 함잽이 오는거 귀경히양게 약장시굿은 사람이 덜허겄네요"
"그렁게나 말이여. 아이고 맹자네 둘째성은 조-오겄다. 부잣집이로 시집강게 안 그냐 맹자야? 인자 맹자도 쪼께만 있으먼 시집간다고 헐 걸"

"아이고 저놈으 아 새끼덜까지 시끄럽게 히 쌓는고만 이?"
"아 냅두어 아덜이사 얼매나 존가 어저끄 되야지 잡음서나 오줌보 하나 얻어 가더니 그놈갖고 저렇게 좋아서덜 그러능간만"
"아이고 매와라 눈매와 죽겄네"
"긍게 내 머라고 허더냐 파 따듬음서는 첨에 파 잎삭 하나 입이다 물고 잘근잘 근 허라고 힛쟈? 그리야 안 매웁다고?"
"아이고 아지매 요새 젊은 것덜은 으른 말을 들어야지요. 안 듣는당게요."
"아, 아덜 노는 것 갖고 성애대지 말고 얼릉 파 따듬은 찌끄래기나 후딱 내버 리고 와"

"아먼 그렁것 얼릉 안 내버리먼 아 날 때 후산허기 심들다고 안허댜?"
조금 나이 든 아낙들은 젊은댁들을 재촉하며 저마다 한가지씩 맡은대로 일을 해내고 있다.
마땅히 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라고 자치기나 막자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였던 때에 되야지 오줌보는 축구공처럼 바람을 넣어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에 좋았으니 간좌촌 아이들은 명자네 둘째언니 시집가는 경사에 요새 날마다 간좌촌 고샅에서 모여 놀고 있었다.

철냄비 가상에서 헌튼 적 붙여 한 입씩 얻어먹는 재미로 앉아있는 명자를 두고 동네 아낙들이 놀리는 말에도 명자는 적반 한 조각씩 얻어다 아이들을 주면서 자랑하는 재미에 또 아이들은 명자가 무엇인가 먹을 것을 가지고 나올려나 얻어먹는 재미에 박서방네 집앞 고샅에서 빙빙 돌며 시끌짝 놀고있던 탓이다.

아침 부터 지지기 시작한 부침개는 싸리 채반지 여러개에 나랏나랏 산적을 지져 시렁에 올리는데 그 가지도 여러 가지다. 치자 물 들인 적반은 보기좋게 밤채 실고추채 참깨 찍어붙여 보기도 먹음직스럽고 그득해 보인다. 고사리 뀌어 산적 만들고 감자적 고구마적 오징어적 홍어적 명태적 돼지다리 삶은 솥에 통무를 넣었다가 익으면 꺼내어 무우적도 붙이고 고기에 파 대가리 뀐 산적은 물론 국사봉 넘어가서 끊어다 말린 싸리버섯도 한몫이라.

한쪽에서는 매밀을 확독에 타서 녹쌀 만들어 묵을 끓이고 전주까지 기계떡을
빼러 간 사람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
농사지었던 콩을 불려 맷돌에 가는데 허청에 판대기로 맷돌 받침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넓은 옹백이 올려놓고 허청 간자에 줄을 매달아 물이 절로 떨어지게 구멍을 뚫어 놓으니 맷돌 돌릴적마다 위에 매달린 물 통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니 콩이 알맞게 갈아 지는데 그것도 너무 물을 주지않으면 되직하여 맷돌을 돌리는 사람이 힘이들고 만약에 너무 눅게 갈면 두부를 끓여서 물이 많으니 그도 간수를 질러 굳히기 어려워 물을 적당히 뿌리며 갈아야 두부도 단단하고 좋게 만들어진다 하였다.

맷돌 돌릴 적에는 아낙들의 힘이 부치기에 돌리는 손잡이에 다른 작대기로 쐬약박아 길게하여 작대기 양끝을 잡고 남정네들이 돌리면 수월하였다. 이것은 연자 방아와 같음이니 연자방아는 본시 윗짝 아랫짝이 크고 돌릴때는 소에 멍애를 씌워 돌리는거라. 두부 만들 콩을 갈을 적에도 잿말 사람들은 그리하였다.

홍어채 무 썰어넣고 고추장과 식초쳐서 조청 조금넣고 도라지 껍질벗겨 버무려넣고 무치니 달큼새큼 씹히는 그 맛이 일품이라. 잿말 아낙들 음식솜씨는 맛깔스럽고 담백하며 갖은 양념 재우는 법이 남다른데 대사집 음식이니 오죽하랴.
식혜며 수정과도 동이로 그득그득 끓여서 장독에 내다 놓아 소쿠리 덮어 식히고 그 비싼 홍어회에 거먹 돼지 통다리가 과방으로 만든 허청 시렁에 걸리니 그야말로 만가실 대사라 모든 것이 푸짐하다.

"아이고 거뜸이 아지매, 아지매네가 돼야지 한 마리 내 놨담서요?"
적반에 실고추와 밤채 통깨를 묻혀 찍어누르던 거둔댁은 대답대신 웃음만 보인다. 그네가 말 내놓기 전 이미 진필은 돼지값을 치르고 박서방이 와서 그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서야 거둔댁은 알게되었다. 그러거니 거둔댁도 돼지 한 마리는 주어야 한다고 여겼지만 막상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는 진필이 좀은 못 마땅하기도 하지만 따지거나 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게다가 박서방이 와서 아지매가 먼저 그리하라고 하셨다면서요. 했으니 어쩌겠는가 그져 웃고 말았을뿐. 매사 진필은 그랬다. 혼자서 심중에 두고 좀처럼 아내 거둔댁한테 말하지 않는 사람이다.
간좌촌 갱변에 가을해가 길게 그림자를 남기고 열기 떨어져 붉은색이 바랜 동짓달 초, 멀리 묵방산 산 봉우리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약장사 굿 체알쳐 놓은 곳에 어둠을 밝히려는 발동기 돌아가는 소리도 요란스러운데 박서방네 사립밖에는 장정들 여남흔이 서성거린다.

미리 함잽이에 앞서 염탐을 하러 온 신랑측 사람들이다. 오늘밤 함 팔기를 잘
하여야만 그네들은 전주로 나가서 진탕놀고 혀가 꼬부라지도록 술도 마시고 새신랑 야무지게 잡들여 걸판지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이네들의 근래에 함 팔기는 유행처럼 전주로 하룻밤 나가서 여관잠을 자는 것이다. 미리 사람들을 싣고나갈 차도 한 대 마련을 해 둔 참이었느니, 신랑이 처가댁 살림살이 헤아려서 적당히 끝내는 걸로 입을 모았지만 그러나 쉬이 끝낼일도 아니다.

잿말 사람들의 관습은 함을 받는 것도 특별하니 봉치가 무엇인가 신랑쪽에서 신부네 집에 보내는 예단이나 다른 이바지를 말함이라.
먼저 함이 오기전 친정어머니 되는이는 머리를 감아 빗은뒤 옷도 정갈하게 입고 기다리다가 함잽이와 오랜시간에 걸쳐 실랑이를 하고 지쳐있다 하여도 함을 맞이할 적에는 정중히 나가 받되 함이 마당에 들어오면 마당가운데에 돗자리를 펴고 봉치떡시루 상위에 올리고 기다린다.

그리하여 함을 받아 봉치떡 시루 위에 올려놓고 절한 후에 함을 들이는지라 박서방네도 미리 뚤방에 돗자리며 상을 준비해 두고 떡시루를 따로이 걸어 떡을 찌고 있는 것이다. 떡은 적당한 중시루에 찹쌀로 하여 팥 삶아 통째로 둘금을 만들어 쪄서 시루째 상위에 얹는 법이라.

예전에는 이같은 일을 납폐라 하여 함 보내는 날을 따로 받아 함을 보낼때도 받을 때와 같이 하였지만 그즈음에 잿말이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함을 혼례 전날 주고 받았다.
함을 가지고 가는이를 함진아비라 하였는데 함진아비를 보낼 적에도 복장을 갖추고 시종배와 등촉일쌍이라 하여 촛불을 청사초롱 만들어 함진아비 양켠에서 수행을 하였지마는 간소함으로 행하여지고 복색도 예같으면 흙단령에 홍관대를 띠고 구영을 단 주립을 쓰고 수혜자(水鞋子) 라는 비올 때 무관들이 신는 장화를 신었느니 오늘은 대충으로 간편한 차림새로 변한 것이라.

함을 보낼때도 함 속에 붉은 비단과 푸른색 비단의 채단을 넣는 것이 상례라 혼서지도 함께 보냈는데 함을 방으로 들여 개봉한 연후에 들여다보지 않고 손으로 더듬어서 꺼냈을적에 홍단이면 첫딸을 낳고 청단이면 아들을 낳는다 하였다. 이때에 부잣집에서는 함속에 금가락지나 다른 보석의 손목시계 패물도 함께 보내는지라 음식장만 내던 동네사람들이 모두 함을 따라 들어가 펼쳐놓고 구경하는 일이 잿말 사람들의 구경거리이다. 함진아비는 신부집에서 크게 대접하는 것이 예의이며 더러는 노자까지 주어서 보내기도 하였다.

예대로 한다면은 신랑이 신부댁으로 가서 초례를 올리는 절차를 친영이라하여
전안례와 교배례 합근례 동상례가 차례로 있어야 하지만 잿말이나 그 어디든 이때는 약식 더러는 신식 교회당 같은 곳에서 서양식으로 초례를 올리고 또 더러는 신부집 마당에서 하되 목사나 그밖에 주례가 따로이 나와섰고 신랑 입장과 신부입장으로 현대식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많았다.

전안례라 함은 혼사날 아침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댁 대문앞에 가서 내리는데말이 없으니 사람 셋이 말이 되어 신랑을 태우곤 하였는데 붉은 비단에 싼 기러기를 소반위에 올려놓고 두 번 절하면 신부의 어머니가 나와 받아가는 것이라.
초례청을 마련할 때도 키가 높은 상이 없으매 도고통을 갖다놓고 그 위에 안반을 올려놓고 교자상으로 썼으니 상위에는 붉은 색과 푸른색의 양초를 써야 하거늘 구할 수 없어 양초를 색깔있는 꽃종이로 싸서 세워놓고 소나무 가지와 대나무 가지를 꽂은 꽃병 한쌍 쌀 두 그릇과 콩과 팥 붉은 보자기로 싼 장닭과 푸른 보자기로 싼 암닭을 한 마리씩 묶어놓고 씻을 물과 수건까지 준비한다.

신랑과 신부에게 줄 꽃다발을 만드는 것은 신랑의 친구들로 오색지를 접어 이쁘게 오린뒤에 이 것을 꽃송이로 만들어 사철나무가지를 꺽어다가 그 가지에 매달아 오색 테이프를 걸어 만드니 향내는 없어도 정성과 그 화사함은 일품이라. 초상이 나도 상여에 매달 꽃 접는 것이 일이다.

온동네 사람들이 종이를 썰고 꽃을 만들기로 밤을 세웠던 것이다. 신랑 신부 꽃다발은 사철나무가 없으면은 측백나무도 썼으니 그때에 마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푸른나무면 되었던 것이다.

만일에 신랑측 동네나 신부측 동네간에 아이를 출산한 이가 있으면 죽은피 초상이나 죽은 집보다 산피가 더 나쁘다하여 초례청을 마련할 때 아이낳은 쪽 동네 에 검정치마를 둘러치고 신랑으로 하여금 늙은 호박을 머리 위 뒤로 던져 액막음을 하여야 했다.

더구나 한 동네에 두 집에서 대사 날을 받았으면 서로 치인다하여 내왕을 삼갔고 서로 만나도 죄면하여 말까지 건네지 않은이도 있을뿐 아니라 같은 날에 초례청이 마련되면 신랑들은 서로 꼭두새벽에 일어나 큰 길을 이용하여 지나가려 서두르는 것이 상례라.

잿말에 풍습은 온갖 것을 다 챙겨야만 하였고 개리고 액막이를 하였다. 아무리 미신 타파라 해서 꺼릴 것 없다 하였으니 일륜지 대사인 혼사에서만은 이렇듯 서로 개려주고 뱅이로 지켜야만 하였으니 이는 자식의 앞날을 염려하는 부모의 곡진한 마음이라.

혼례 당일에 신부집에서는 사람을 보내에 세번 청하는데 이에 신랑은 복장을 갖추고 신부집으로 오느니 박서방네 새신랑은 먼길이라 새벽일찍 잿말에 당도하여 이웃집에서 기다리다가 청을 받는다.
신랑은 초례복으로 갈아입고 장복에 사모를 쓰고 서대에 청선 이라하여 푸른 부채를 손에 들고 콩과 팥을 넣고 허리에 찼으니 안부라 하여 기러기 아비라 이르는데 이는 전날 함진아비가 안부가 되는 것이라. 안부가 신랑을 인도하는데 신부댁의 처남이 나와 맞으면 초례상 앞으로 인도 하는 것이다.

이때에 신부는 녹원삼을 입는데 여염집의 여자들이 흔히 입을 수 없는 호사스런 옷을 입으니 혼례를 올리는 신부는 이날만은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하여도 다홍치마 연두저고리를 입고 녹색의 원삼을 입어 머리는 쪽을 지고 칠보와 옥 장식을 늘어뜨린 족두리를 얹어 칠보 비녀를 꼽고 뒤에는 도투락 댕기를 앞자락에는 댕기 드림을 늘어뜨렸다.

원삼 위에도 노리개를 달아 이날만은 최대한의 호사를 부린 것인데 본시 원삼이란 것은 예대로라면 계급에 따라 색깔도 금박 문양도 달랐지마는 이즈음에는 그러하지 못하고 원삼 한벌을 온동네에서 빌려다 입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은 동네에서 혹은 부잣집에서 준비했던 이들이 동네사람들에게 빌려주게 되는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