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02]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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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02] - 김여화

 

 


 

제목  [2회] 운암강- 연원
등록일  2001-09-17
 

장편소설 운암강

김여화
연원(淵源)

"수녀님 안나수녀님 이거좀 보세요"
"무언데 그리 호들갑이냐"
지영이 자즈러 진다.
"뭐가 그렇게 지영일 놀라게 했을까? 어디보자"
그녀는 지영이 손에 거머쥐고 있던 신문지를 받아 책상위에 펼쳐놓고 손바닥으로 편다.


"수녀님 거기 보세요. 큰 글씨"
안나는 지영이 가리키는 곳에는 눈을 주지 않고 여전히 신문을 반반히 펴고 있다. 꽤 지난 신문이다.
"옥정호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반대 지역주민 농성 장기화 돌입"
그녀가 신문을 읽기 전 지영은 구호를 외치듯 주저 앉으며 그녀의 곁으로 바투 앉는다.


"수녀님 상수원보호구역이 만수위선으로 확정되었다는 것이 신문에 났었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이 일은 지난번 신문에 나기 전에 일이었겠지. 날자로 보아서 확정이 된 것은 8월 이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지요?"
"어떻게 하긴? 이미 작품은 거의 다 끝냈는데 어쩌겠어? 그리고 이런 문제는 가급적 피하고 싶으니까, 이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보자 지금은 그 정도로 해야지"
"하긴 그래요. 애초부터 그런 부분은 아니었으니까요."


"지영이 넌 내 말대로 운암강을 기록하는 걸로 하고 그외의 상황은 네 맘이지 넌 작가잖니?"
"작가라구요? 우습네요. 수녀님이 작가라고 하시니까 마치 정말 내가 작가라는 기분에 빠져드는 거 있죠?"


지영은 그녀 특유의 맑은 웃음을 보이다가
"헌데 수녀님 이거 정말 �찮을까요? 사실은 첫 부분이 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게 말이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빌어야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지영이 네가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 했느냐가 중요한데..."


"어쨌든 수녀님이 이제 감수를 하셔야 해요.? 마감이 며칠 남지 않았거든요"
"그래 마감일이 언제까지였지?"
"3월 30일이에요."
"그래 알았어 내 읽어보마 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야 할터인데..."


안나가 이곳 홍천 요양원에 있게 된지도 어언 20여년이 흘렀다. 그녀는 가능하면 오지를, 고향 잿말을 찾아가기가 어려운 곳을 택한 것이 지금 홍천요양원이다. 이곳에는 죽음을 앞두고 가족대신 돌보아 줄 손이 필요한 가여운 인생을 마감하려는 노인들을 수용하는 곳이다.


지영은 오갈데 없어 그녀가 데리고 있는지 어느덧 3년 째 어린 것이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도록 안타깝지만 지영은 안나를 만나면서 부터 조금씩 웃음을 찾았고 이제 소녀적 꿈이었다는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한꺼번에 부모를 여의고 죽음의 길에서 만난 지영을 안나수녀는 정성을 다 하여 보살피며 지영이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의 고향이야기로 작품을 쓰도록 격려해 왔다.

물론 지영이 운암강을 쓰기 시작 한 것은 불과 두 해 밖에 되지 않지만 안나수녀는 자신이 오랜 세월 준비해 왔던 자료들을 지영으로 하여금 새 삶을 찾는 도구로 기꺼이 내어주었다.

 

그녀는 지영이 읽어보아 달라고 가져다 둔 원고를 며칠이 되기까지 읽을 념도 없이 그냥 지나쳐 왔다. 이제 지영을 위한 거라면 기꺼이 맨 먼저 운암강을 읽어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비록 아는 것은 없을지라도 그것은 곧 지영의 소원이니까 안나수녀는 창너머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자동차를 바라본다. 아마도 이웃동네에 사는 이씨성을 가진 교우님의 차 라는 걸 짐작한다. 날마다 그때 쯤이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마중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뽀얀 먼지 일구어내는 시골길 그 너머 들판엔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며 피어오르는 그리움이 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만 눈물처럼 흐르는 옛 강가 마당벌, 눈을 감는다. 꿈인가 안개처럼 그리움은 피어오르다 사위어간다. 아니 일순간에 그녀는 문을 두르리는 소리에 잠에서 퍼뜩 깨어난다.


"저 수녀님 아랫층에 내려가셔야 겠는데요. 베드로님이 이상하세요"
요양원 사환아이다.
"그래? 원장님께는 연락했구? 어서 가자 지영이 누나도 불러와"


그녀의 서두르는 모양은 왠지 오늘따라 어설퍼 보인다. 목울대를 밀고 올라오는 뜨거운 격정이 어느새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잊혀졌던 고향 잿말을 생각했기 때문인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운암강 그 강물에 묻어버린 자신의 꿈과 애뜻했던 풋사랑 하지만 그녀만은 기어코 운암강이었다고 우기고만 싶은 그 곳, 그녀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내려 온다. 그녀의 옷자락이 펄렁 거린다. 그녀는 문을 벌컥연다.


방에는 지영이 먼저 와 사색이 되어있었다.
"수녀님 임종하시려나봐요."
"자 침착해라 지영아! 어디 보자"


그녀는 계단을 뛰어내려 올 때와는 반대로 아주 냉정해진 얼굴로 아니 지영이 어쩔줄 몰라 하다가 비켜서며 안나수녀의 옆 모습을 바라본다. 그녀의 얼굴은 아주 평온해 보였다.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와는 전혀 딴 사람이 되어있었다.

 

침착하게고개를 반드시 뉘이고 사관을 짚어 응급조치를 해내고 환자의 맥을 짚은채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는 듯, 아무도 안나수녀의 그런 행동을 범접하지 못 할 것만 같은 모습이다.


원장수녀님까지도 방에 들어와서 그런 안나수녀를 말리지 못한채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어느순간
"어머 눈을 뜨셨네요?"
지영의 외침이다.
그제야 방안의 모든사람들은 저마다 안도의 숨을 내 쉰다.


"다행입니다. 천주님께서는 아직 베드로님이 필요치 않나 봅니다."
그 말을 하고 있는 원장수녀님의 노안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이제 한숨 돌리신 것 같습니다."
"어머 살아나신건가요?"
사환과 지영이 동시에 하는 말이다.


"그래 잠시 의식을 놓으셨던 모양이다. 오늘밤은 이방에서 베드로님을 지켜보고 내일 병원으로 모셔야겠어요"
"안나 내가 연락을 할께요. 걱정말아요."
"아뇨 제가 전화 할께요. 지금요"
"그래 그렇게 하는게 좋겠다."


안나는 방을 나온다. 바짝 마른 베드로라는 환자도 눈만 감으면 그저 송장이리라.


물론 자식이 있다고 했었다. 하도 오랜날 가족을 떠나와 살았기 때문에 지금은 자식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고향이 어드메 였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곳이 고향이다.


어디 그뿐인가 알고 있어도 갈 수가 없다는 노인도 있지만 안나는 베드로를 보면서 고향이 더욱 그립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영원히 가시지 않을 그리움을 꼽으라면 그것은 고향이다. 더구나 갈 수 없는 곳이라면 그 향수는 몇 백배 더 하리니...


하기사 다른 노인들 탓해 무엇하나 안나수녀 자신의 모친도 치매로 인해 오락가락 하는 형편인걸 그녀는 어머니로 부터 깊은 상처를 받고 떠나왔지만 이제 다시 그 어머니로부터 고향을 돌아보고 있다.

 

비록 마음 뿐이긴 해도 그녀는 가슴속에 간직했던 고향 잿말의 모든사물을 기억 해 내고 기록하는데 지영에게 멍애를 씌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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