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11_小說家殷美姬

<푸른광장> 러시안 룰렛게임/문화일보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3. 2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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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러시안 룰렛게임 

 

 

나는 살아 있는 것들을 잘 키우지 못한다. 식물이건, 애완동물이건 간에 생명 있는 것들은 나에게만 오면 어찌된 게 시름시름 앓다 내 곁을 떠나버렸다. 식물들은 누렇게 잎이 말라 들어가면서 죽어버렸고, 고양이나 강아지들은 며칠 무른 똥을 싸다가 슬그머니 숨줄을 놓아버렸다. 그때마다 나는 의심했다. 혹시 내가 사막은 아닌가 하고. 내 안에 사랑이 없거나 그간의 정성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고. 그런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더 살아 있는 것들을 내 옆에 두었다.

로즈마리가 들어 있는 화분을 들여놓았고, 잡풀에 가까운 난도 한 촉 구해 키워 봤으며, 고양이나 강아지도 집안에 들여놓았다. 결론은 같았다. 로즈마리는 한 달 만에 말라 가루처럼 부서져 내렸고, 고양이는 집을 나가버렸으며, 난은 뿌리가 까맣게 썩어버렸다. 나는 내 애정이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애정이 과했으면 과했지, 절대 그것들을 방치하거나 유기하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의 지나친 애정 때문에 손독이 올라 죽어 버린 듯했다. 퇴비 삼아 먹다 남은 우유를 화분에 뿌려주었더니 우유가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물이 흙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방해했고, 이 때문에 로즈마리는 뿌리가 말라 죽어버렸다. 그리고 고양이는 늘 안고 쓰다듬는 내 손길이 짜증스러웠던지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 그것들의 죽음은 상처였다. 살아 있는 나에게 살아 있는 것이 깃들이지 못하다니. 얼마만큼 사랑을 주고 얼마만큼 참아야 하는지 나에게 그것은 절대 알아낼 수 없는 비밀의 연산이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살아 있는 것들을 집 안에 들이지 않았다. 그것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나에게 깃들어 있을지도 모를 부정한 기운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살던 집 화단에는 고양이 무덤 하나, 강아지 무덤 하나, 십자매라는 새의 무덤과, 병아리, 금붕어의 무덤이 있었다. 말하자면 화단은 공동묘지였던 셈이다. 아무튼 나는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해 얼마간의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간혹 장기간 출타를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번번이 그것들을 어디엔가 맡기는 일이 번거롭기도 했다.

한데 어느날 나는 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갔다. 오래된 한옥인데, 아래채 건물 위를 옥상으로 쓰고 있는 집이었다. 그 집 옥상에는 초롱꽃이며, 공작 선인장, 아마릴리스, 자스민, 치자, 넝쿨장미 같은 여러 종류의 식물이 튼실하게 뿌리를 내리며 자라고 있었다. 감탄하며 바라보는 나에게 지인은 그랬다. 저렇듯 싱싱하다가도 어떤 때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 마르며 엄살을 피운다고. 그럴 때는 뿌리까지 적셔지도록 흠뻑 물을 주면 안 되고 그저 분무기로 잎만 적실 듯 뿌려주면 언제 그랬냐 싶게 금방 생기를 찾는다고. 하지만 정말 물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그때그때 저것들의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나는 그런 재주를 지닌 지인이 부러웠다. 지인은 싫다는 나에게 화분 하나를 들려주었다. 잘만 하면 사계절 내내 꽃을 볼 수 있다는 꽃기린 선인장이었다. 비교적 키우기가 쉽다는 말에 나는 또 한 번 속아보기로 했다. 게다가 다른 선인장 꽃은 지나치게 원색적이거나 화려해 얼른 마음이 가지 않는데 비해 이 작은 붉은 꽃은 앙증맞고 귀여워 더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지나친 애정은 금물, 무관심은 더더욱 안 된다는 지인의 조언을 되새기며 나는 꽃기린 선인장을 베란다에 놓아두고 곁눈질로 슬금슬금 훔쳐보았다. 그래서였을까. 다행스럽게도 꽃기린 선인장은 아직까지는 무탈하다. 그 사이에 제법 줄기도 굵어진 것이 이제는 화분이 작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문득 사람과의 관계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대상을 너무 소유하려들면 병이 들게 마련이고, 무관심 역시 상대를 아프게 하지 않던가. 때론 지나친 사랑도, 정직함도 관계를 망치는 법. 사람살이에 웬 기교가 필요하겠냐 싶겠지만 숱하게 죽어나간 것들이 나에게 가르치려 든 건 아마도 그 점이었을 것이다.

사랑에도 조화가 필요하다고. 사랑에 모든 것을 걸려 하지 말라고. 사랑은 러시안 룰렛게임이 아니라고.

[[은미희 / 소설가]]

기사 게재 일자 2007-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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