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11_小說家殷美姬

인생의 보물/문화일보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3. 28. 14:37
반응형

VADOSE DOT NET

 

 

<푸른광장>
인생의 보물

 

가끔 어릴 때를 회상하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꼭 행복하기만 했던 건 아닌 듯싶은데, 그래도 유년 시절을 떠올릴 때면 아련한 향수 같은 게 마음속에서 여울진다.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집은 산동네였다. 집 뒤로 나 있는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딸기밭이 나오는데, 사람들은 초여름이면 딸기밭을 찾아 오붓하고 다정하게 보내곤 했다. 나는 학교가 파하면 산중턱에 오도카니 들어앉은 그 집 옥상에 올라 노래를 부르곤 했다. 위로 언니가 둘이었는데 그 언니들 덕분에 내 또래에 맞지 않는 노래들을 알고 있었고, 가사나 음정이 엉망인 채 가곡이나 오페라 아리아의 한 대목을 목청껏 부르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고요와 적막함만이 설움처럼 깔려 있었을 뿐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노래 부르는 일에 싫증이 나면 산에 올라가 구절초며 진달래, 개나리들을 꺾기도 하고, 나물을 캐며 하루를 보냈다. 컴퓨터도 없었고, 텔레비전도 귀했으며, 동화책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심심하지 않았다. 사방놀이, 핀따먹기, 콩주머니(오자미)놀이,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술래잡기, 남자아이들은 딱지치기에다 구슬치기까지 놀이의 종류도 다양했고, 그저 신이 나기만 했다. 유년의 시간들은 그렇게 보냈다.

그 시절에도 과외는 있었다. 좀 잘산다는 집 아이들은 담임교사를 개인 과외선생으로 두고 따로 특별지도를 받았고, 중·고등학생들은 가정교사를 두거나 학원 종합반으로, 단과반으로 재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아버지는 절대로 과외 같은 걸 시키지 않으셨다. 교사 월급으로는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의 과외비를 감당할 수 없다며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강조하셨다. 해마다 치러지는 대학입시에서 수석을 차지한 공부벌레들은 아버지의 말씀처럼 교과서와 학교공부에만 충실했노라고 말했고, 나는 아버지 몰래 그들을 감정 섞인 시선으로 노려보곤 했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참 고맙다. 그때 과외를 받으며 선생님의 애정을 독차지하던 아이들은 지금 무얼하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어떤 이는 교수가 되었거나 또 어떤 이는 의사가 되어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들이 현재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할지 불행하다고 할지 그것까지는 알지 못한다. 암튼 내 유년의 시간들이 그처럼 다양한 무늬와 색깔들로 짜일 수 있었음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물론 나는 학교성적이 우수하지도 못했고, 다른 친구들처럼 명문대에 진학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불행했던가. 그들이 나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삶을 꾸려갔겠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는 않았다. 내게는 소중한 유년의 기억들이 있었고, 그 추억들이 나를 웃음짓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그 보물 같은 추억들이 있었기에 이야기를 짓는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한데 요즘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조카만보더라도 이제 중1인데, 학교 파하기 무섭게 학원으로 달려간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각이 밤 11시. 숙제하다보면 새벽 2시를 훌쩍 넘기고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다. 그 조카에게 좋은 책을 읽으라고, 청소년기에 읽는 책 한 권이 영어 단어 하나보다, 수학 공식 하나보다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가 없다. 또 예전의 나처럼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만나는 세상 것 하나가 인생을 더 풍요롭게 가꾸어줄 수 있다는 사실도 일러줄 수 없다.

게다가 드라마까지 가세해 부모들의 교육열을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경쟁적으로 아이들을 학원에, 개인과외에 내모는 부모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을 따듯한 인간애가 있는 하나의 인격체로 키우는 게 아니라 그저 공부하는 기계로 훈련을 시키는 듯하다. 이 아이들이 자라 유년을 회상할 때 무엇이 남아 있을까. 아니 반대로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무엇을 꿈꿀 수 있으며, 미소를 지을까. 명문대 졸업장은 마술 지팡이이자 이카루스의 날개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들이 명문대 진학에 실패했을 때 그 충격은 얼마나 클 것이며, 또 그 삶은 얼마나 끔찍할까.

마술 지팡이보다는, 밀랍 날개보다는 자연과 인간의 그 조화로운 삶을 가르쳐주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지 싶다.

[[은미희 / 소설가]]


기사 게재 일자 2007-08-0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