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11_小說家殷美姬

다시 사랑하기/문화일보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3. 2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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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다시 사랑하기

 

 

 

하루중 많은 시간을 인터넷 서핑을 하며 지낸다. 의심의 여지없이 중독 상태다. 장거리 여행이나 어디 긴 시간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왠지 허전한 게 인터넷 서핑을 하지 못해 생긴 강박 증세다. 이런 내가 마뜩찮지만 하는 수 없다. 컴퓨터가 글을 쓰는 도구가 되었으니 감수할 수밖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책에 연필로 깨알처럼 글을 썼었다. 잘못되면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고,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고쳐 쓰곤 했다. 그때는 알량한 재능을 한탄하며 한 문장 한 문장 조탁하듯 정성을 들여 썼다. 마음에 드는 한 문장을 얻기 위해 하루를 보낼 때도 있었다. 그런 만큼 그 글 속에는 내 한숨과 열정과 순수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한데 언제부터 컴퓨터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게 익숙지 않아 아무런 생각도, 어떠한 정서적 감상도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곤 했는데, 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컴퓨터로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컴퓨터가 지니고 있는 편집 기능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왠지 이유가 군색하다.

생각해보면 공책에 연필로 쓸 때는 생각이 참 많았었다. 사람에 대한 이해나 사물에 대한 탐구 역시 그 시절에 많이 이루어졌었다. 그러니 쓰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하지만 컴퓨터로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쓰는 시간은 빨라졌으나 옛날의 진중했던 생각은 많이 가벼워진 듯하다.

어쨌든 지금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인터넷 기능을 갖춘 컴퓨터다. 잡다한 쇼핑도 인터넷을 통해 해결하고, 친구들과의 수다도 인터넷 카페에서 채팅을 통해 떨고, 음악을 들을 때도 인터넷을 이용하며, 궁금한 것도 그때그때 인터넷 검색창을 통해 해결한다. 어디 그뿐일까.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재구성해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지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끊임없이 염탐해야 하는데 그 역시 인터넷을 통해 엿듣고 훔쳐보며 의견을 듣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파악한다. 사람을 만나면 불편해지고 불안해지는 것이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 행여 상대방이 나 때문에 불편하지나 않은지 걱정까지 된다. 그러한 심리적 불안함이 없이도 얼마든지 세상과의 소통이 가능한데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며칠 전 친한 친구를 만났을 때, 옛날보다 내가 참을성이 없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그랬다. 친구의 이야기를 진득이 듣지 못하고 자꾸만 엉덩이를 들썩이며 지루해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치장하고, 오며가며 길에 소비한 시간이 아쉽기도 했고, 차라리 인터넷으로 수다를 떨 때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 친구는 그런 내 표정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비단 나만의 일일까…. 한 초등학생이 방학중에 체력 단련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사회자가 망루 같은 조형물 위에서 뛰어내리기를 준비하던 그 아이에게 물었다. 이 순간 누가 가장 보고 싶으냐고. 통통하고 귀여운 인상의 남자아이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컴퓨터라고 대답했다. 으레 그 나이의 아이들이 그렇듯 부모님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예단은 보기좋게 빗나갔고, 순간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이제 나나 그 초등학생처럼 사람과의 소통보다는 컴퓨터와의 은밀한 시간이 더 재미있고, 설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컴퓨터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진화해서 머지않아 인공지능을 갖춘 컴퓨터가 등장할지 모른다. 그에 맞춰 사람들은 무정물의 기계적 인간으로 거듭날지 모른다. 늘 공상영화가 영화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로 재현되지 않던가. 왜 그게 끔찍하게 느껴질까.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으려던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이나 연민은 이제 폐기처분해야 할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되었을까. 가끔 잔혹한 범죄들을 보노라면 그런 의구심이 든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다. 컴퓨터와의 밀애 시간을 줄이고 사람과의 정분을 더 쌓아가야 되겠다고. 다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되겠다고. 따듯한 심장을 가진 그런 사람의 시간으로 살아가야 되겠다고.

[[은미희 / 소설가]]

기사 게재 일자 2007-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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