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11_小說家殷美姬

반성문/문화일보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3. 2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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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반성문

 

 

내 삶이 한번이라도 치열했던 적이 있었던가. 시작만 있고 제대로 된 끝이 있었던가. 신독(愼獨)이라고, 혼자 있을 때도 흐트러짐 없이 게으름을 경계하자던 결의는 한때, 삶을 그럴 듯하게 치장하고 싶어 부렸던 치기는 아니었는지. 생각해보니 언제부턴가 이런 반성의 시간이 슬그머니 줄어들더니 이제는 그마저도 없어져 버렸다. 어수선한 시절을 핑계대거나 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건강을 이유로 들며 그때그때 시간과 타협하며 적당히 살아왔던 것이다.

한데 나태함에 빠져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던 내 삶을 죽비처럼 때리는 것이 있었다. 강화도 광성보 영내에 자라고 있던 일단의 나무들이 그것이었다. 같이 간 일행들 가운데 아무도 그 나무의 수종을 알지 못했다. 다만 땅 위로 일부분을 드러내놓고 있는 나무뿌리에 감탄사만 내지를 뿐. 그 나무는 하늘로 뻗은 가지들보다 땅속으로 파고드는 뿌리가 더 억세고 갈래가 많은 듯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질기게 땅을 움켜쥐고 있는 그 뿌리들은 한편으로는 그악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끔찍해 보이기도 했다. 다른 나무의 뿌리들과 서로 얽히고설키면서도 뿌리들은 살기 위해, 살아 남기 위해 양분을 찾아 부지런히 땅을 뒤지고 있었다. 그 강인한 생명력 덕분에 나무들은 하나같이 곧은 기상으로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내 삶은 그렇게 치열하지 못했고, 이 땅의 사람들 역시 사나운 바람에 허리 한번 제대로 펼 사이가 없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나무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

물론 초행길은 아니었다. 슬픈 역사나 감탄사를 자아내는 풍경들은 속속들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알 만큼 안다고 여기던 강화도였다. 그런데 그날의 강화도 여행은 다른 때 같지 않았다. 새삼스레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유난히 볕이 좋은 가을날에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의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강화도 여행은 내내 마음이 서걱거렸고 무거웠다.

신미양요 당시 미국에 빼앗긴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 반환과 때를 같이해 이루어진 답사 형식의 여행이었다. 한 나라의 성스러운 기운이 모여 있는 땅. 천연의 요새 덕분에 비상시 수도가 되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유난히 상처가 많은 땅이 강화도였다. 강화도를 돌아보는 내내 위정자들의 무력함과 침략군의 야만적 행위에 분노까지 일었다. 한 나라의 진지가 그토록 허망하게 무너질 수도 있다니. 구식 무기로 무장한 무지렁이 백성들이 신식 대포와 총으로 무장한 서양 군인들에 맞서 싸우다 몰살당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광성보 전투에서만 350여명의 조선 백성이 희생된 데 비해 미군의 희생은 단 3명에 그쳤다고 했다.

미국은 그 전투를 자신들의 전쟁사에 있어서 가장 부끄러운 전투로 여긴다고 했다. 하긴 무기도 없이 돌멩이나 흙을 집어던지며 저항하는 사람들을 향해 쏘아대는 총은 스스로도 부끄러웠을 터였다. 게다가 이 땅에 첫발을 내디딘 프랑스 군인들은 너무나 허술한 방비 태세에 오히려 이 나라를 걱정했다고 했다. 자국을 지킬 힘이 없는 나라, 백성의 안전과 영토를 지킬 능력이 없는 나라가 적군이 보기에도 어쩔 수 없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들은 마음껏 이 나라의 보물들을 약탈하고 자존감과 자긍심을 유린했다. 강화도를 침범한 열강의 수장고 속에는 조선 역사가 처박혀 있는 것이다. 위정자들이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백성들이 조금만 더 바깥 세상에 눈과 귀를 모았더라면, 사람들이 좀 더 미래를 바라보는 삶을 살았더라면 그처럼 참담한 결과는 맞이하지 않았을 텐데. 조선 말기 강화도의 역사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긴 이 땅에서 일어난 비극의 역사가 어디 강화도에만 있으랴.

강화도가 주는 반성이다. 아니 강화도의 나무가 주는 교훈이다.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나를 잃은 채 마음만 다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는 것.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는데, 나 역시 뿌리 깊은 나무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간 멀미를 핑계로 적당히 살았다. 부디 다른 나무들도 바람에 꺾이지 않는 그런 나무들이 되길.

[[은미희 / 소설가]]

기사 게재 일자 200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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