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광장>
‘안습’과 숫눈길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인터넷상에서 자연스럽고 빈번하게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꽤나 많은 낱말들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새롭게 등장한 생경한 단어들이 내 읽기와 이해를 방해하는 것이다. 지못미, 안습, 캐안습. 므흣, 샤방, 오나전, 완소….
이모티콘과 함께 사용된 단어들은 사전에도 없는 인터넷 신조어들인데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정말 뭘까. 인터넷 검색어 창에 이런저런 단어들을 입력하며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어내는 신세대들의 기발한 표현력과 상상력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서운하기도 했다.
지못미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뜻이고, 샤방은 환하게 미소 지음이란다. 므흣은 또 뭔가. 예쁘고 아름답다는 말이다. 오나전은 완전을 뜻하고, 안습은 안구에 습기가 돈다라는 뜻이란다. 안구에 습기가 돌다니. 그냥 눈물이 맺힌다거나 눈물이 돈다고 표현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안습이라고 표현하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신세대들의 반항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좋고 아름다운 어휘를 버려둔 채 이상한 용어를 사용하는 그들의 태도가 아쉬울 뿐이다. 하긴 꼭 반항의 산물만은 아닐 것이다.
통신망의 발달은 정말 우리들 삶과 사고를 너무나 많이 바꾸어놓아 버렸다. 특히 세대 간의 불통은 통신망의 발달로 더 깊어진 듯하다. 틈만 나면 휴대전화를 들고 부호와 기호와 이모티콘이 동원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신세대들은 한정된 화면 속에 의사를 전달하려다보니 문장 자체를 몇 글자로 압축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테다. 한 공중파 방송에서는 세대 간에 통용되는 단어의 뜻을 알아맞히는 프로그램까지 방영하지 않았던가. 기성세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신세대들에게 그 뜻을 일러주며 알아맞혀 보라고 하는데 맞히는 이가 드물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통하지 않는 게 어디 언어뿐일까. 만화 속의 주인공을 그대로 따라 하는 코스프레, 일종의 깜짝쇼인 플래시몹 같은 놀이들은 나이를 좀 먹었다는 어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시체놀이, 생일 빵 같은 청소년들의 놀이 역시 이름 자체도 살벌하고, 내용도 기이하기 짝이 없다. 놀이문화 또한 세대 간의 벽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세대마다 공유하는 기억들이 저마다 다르니 소통도 어려울 수밖에. 고희를 넘긴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환갑에 즈음한 사람들의 추억 속에는 극심한 가난이 들어 있으며, 지천명에 이른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아슬아슬하게 젊음을 보냈지 않았던가. 끔찍한 입시지옥에 시달리던 20, 30대 사람들은 전쟁의 아픔이나 가혹한 가난의 시련은 다만 전설로 이해할 뿐이다. 그러니 서로가 품고 있는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그 ‘다름’들이 우리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언어의 불통에 있어서만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통의 가장 기본적 도구가 언어일 텐데, 그 언어마저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아야 하나 싶어서다. 나 역시 10대를 보낼 때도 우리들만의 은어가 있었고, 비어가 있었으며 속어가 있었다. 은어와 속어와 비어들을 입에 담을라치면 혀가 간지럽고 야릇한 쾌감까지 일었다. 기성세대들은 그런 우리를 나무라며 아름다운 말을 쓰라고 강요했다. 나 역시 이제는 그 말에 동의한다. 아름다운 말을 발음할 때 울리는 그 파동이 나를 순화시키고, 세상을 밝게 만든다고 이야기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전부는 아니겠지만 한 사람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 또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좋은 말에 좋은 생각이 깃들고, 사나운 말에 사나운 생각이 깃드는 것은 당연할 터. 숫눈길, 살살이꽃. 살피꽃밭…. 얼마나 예쁜 말인가. 나는 예쁘고 아름다운 우리말이 좋다. 좋아도 너무 좋다. 당신은 아무도 지나지 않은,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는 숫눈길을 아십니까?
[[은미희 / 소설가]]
기사 게재 일자 2008-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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