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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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이 여름의 죽비/문화일보 [2008-07-17]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11. 26.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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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이 여름의 죽비
오래 전에 한 그루의 나무와 담쟁이덩굴 간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만화를 본 적이 있다.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생활 정보지를 무심코 펼쳐들었는데 그 안에 만화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착지할 곳을 찾아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담쟁이덩굴 씨앗은 밑동 굵은 나무를 발견하고는 오랜 여행을 마치고 터를 잡았다.

황량한 벌판에서 혼자 외로웠던 나무는 자신을 찾아온 담쟁이덩굴이 마냥 고마웠다.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드리워 막 싹을 틔운 담쟁이덩굴의 여린 순을 비바람과 폭양으로부터 보호해주었고, 밤이면 별과 달을 보며 내일을 일러주고 살아갈 지혜를 알려주었다. 덩굴은 무럭무럭 자랐다. 항상 자신을 보호해주는 나무가 고마웠고, 든든했다. 둘은 너무 사랑했다. 나무는 자신의 몸을 감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에게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내주었고, 담쟁이덩굴은 사랑하는 나무의 몸을 애무하듯 타올랐다. 어려운 일을 함께 견디고 서로에게 위로가 돼주었기에 둘은 너무나 행복했다.

한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담쟁이덩굴이 어렸을 때는 두 나무 간의 거리가 충분해 서로를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었지만, 커갈수록 거리가 좁아져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나무는 자신의 몸을 옥죄는 덩굴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무가 시름시름 앓자 담쟁이덩굴은 자신의 사랑이 부족한 줄 알고 더 많이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나무는 말라 죽었고, 기댈 곳을 잃은 담쟁이덩굴도 따라 죽었다.

이 만화의 여운은 오랫동안 내 마음을 뻐근하게 만들었다. 빤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만화로 보는 두 나무의 사랑은 다시금 내 마음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관계에 대한 의문을 건드렸던 것이다. 관계와 관계의 그 역학 구도 속에서 언제나 난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도 상처를 주었고, 너무 무심하게 굴어도 상처가 되었다. 얼마만큼 관심을 가져야 하고 얼마만큼 애정을 주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너무 사랑해도 안 되고, 너무 무심해도 안 된다는 것만 알았다. 하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는 그 절묘한 경계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전의 일 때문에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만화가 다시 생각났다. 소설을 쓰는 동인들과 오랜만에 한 어른을 찾아뵙기로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의 시간을 인출했다. 그간의 무심함에 죄송하기도 하고 변함없는 애정을 가져주는 그 어른의 마음씀이 감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리광도 부리고, 위로도 받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혜도 빌리고 싶었다. 당신이 살아온 세월 동안 터득한 삶의 진리를 힘 안들이고 미리 엿보고도 싶었다.

빗길을 뚫고 약속 장소로 달려가니 깔밋한 식당에 그 어른은 신선처럼 앉아계셨다. 격조했었지만 언제 그랬냐 싶게 너무 반가웠고, 임의로웠다. 그게 문제였다. 몇 순배 술이 돌자 나는 너무 대담해져 있었다. 기분이 좋아 말이 많아지면서 나는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넘고 말았다. 평소 그 어른을 좋아했던 터라 그 어른에 대한 내 걱정을 이야기한 것이었는데 그 말이 그 어른에게는 칼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 칼을 무사처럼 휘둘러댔었다. 순전히 그 어른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그 어른은 표정이 죽어 자리를 파하자고 했고, 우리는 다시 빗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른은 점잖게 e메일을 통해 나를 나무랐다. 나는 죽비(竹)를 맞은 기분이었다. 당연히 그러셨을 거라고 이해가 되었다.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표현 방법이 지나치게 내 중심적이었고 방자했었다. 나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설령 마음 속에 그 어른에 대한 애정이 넘쳐도 인색하게 표현했어야 했다. 그냥 그렇게 지켜봐야 했다. 인생의 시계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내 시계도 어김없이 돌아가고, 나 역시 그 어른의 나이를 살아갈 때가 올 것이다. 나 또한 그 말을 들었더라면 그 어른처럼 불쾌했을 것이다. 하지만 뒤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이던가. 그저 조용히 자숙하는 수밖에는. 과유불급. 이 여름, 나를 아프게 만들고 또 나를 단단하게 키우는 단어다.

[[은미희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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