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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추억속을 거닐며 (21) : 아들의 선생님들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11. 2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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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선생님들

 

학창시절 가난한 집 아이로 선생님로부터 별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해서 인지 소년은 자식에게도 선생님과 부모 말이 다를 때는 부모 뜻이 우선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자식이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소년은 자신의 생각이 옳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이란 학교에서 선생님의 지도하에 급우들과 어울리며 성장해야 성인이 되어서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얼마되지 않아 40대의 여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니 엄마가 학교에 한번 들러 상담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유는 다른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면 각자 자기자리로 돌아가 수업에 참가하는데 그아이만 수업시간이 되어도 교실에 들어오지 않아 아이를 찾느라 수업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놀다가 자신이 보고있는 것에 몰두하게 되어 수업시간이 시작되는 종이 울려도 교실에 들어오는 것을 잊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몇 번 교육을 시켰는데도 아이의 태도가 변하지 않자 담임선생님은 엄마를 학교로 오라고 했던 것이었다. 전화를 받고 아이의 엄마는 왜 오라고 하는지, 아이가 정말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입학을 하고 난후 대부분의 엄마들이 자기네 아이를 잘 부탁한다며 약간의 촌지를 선생님께 건네준 얘기를 들었던 아이의 엄마는 자신만 촌지를 전하지 않아 아이를 문제삼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던 것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남들처럼 자신도 하나 뿐인 아이를 위해 촌지를 전하려 했는데, 남편이 그러면 돈을 주고 선생님께 아이를 맏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리하지 말고 스승의 날이나 학년이 바뀔 때 아이를 시켜 감사의 선물을 드리도록 하자고 하여 촌지를 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내에게 학교에 오란다는 말을 듣고 소년은 선생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자신의 학창시절에 한번도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며 선생님이 촌지를 원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년은 아이엄마에게 ‘초등학교에 이제 막 입학한 아이들중에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면 왜 교실에 있는 자기자리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이해할수 있는 아이가 몇 명이나 되겠느냐’ 고 하며 ‘다른 아이들은 그저 어른들이 시킨대로 그냥 따를뿐이고 우리 아이는 주관이 강하여 본인이 이해가 안되면 행동이 따르지 않아 그런것이니 걱정하지 말라’ 고 했다. 그리고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직접 찾아가 ‘아이의 학교생활은 전적으로 선생님께 맡기고자 하니 학교에서 아이의 잘못된 행동이 있으면 그때마다 선생님이 알아서 교육을 시키시고 집에는 가급적 알려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 말했던 것이다.

그후로 그 담임선생님은 아이엄마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또한가지 일이 있었다.

하루는 학교에서 예방접종을 하는데 다른 아이들과 줄서 있는 아이에게 담임선생님이 ‘너는 지난번에 다른 질병으로 치료를 받았으니 예방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 고 하였더니 아이가 화가나서 선생님께 신경질을 부렸다며 놀란 여선생님이 아이엄마에게 전화를 한적이 있었다. 그이야기를 듣고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아이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예방접종 2주전쯤 아이는 전염성이 있는 질병에 걸려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서 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당시 아이가 걸렸던 질병은 전염성이 있다고 하여 어린아이들 사이이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반급우들과 같이 줄서 있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공개적으로 아이가 전염성 질병에 걸렸었던 사실을 말해버려 아이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소년은 아이와 엄마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여선생님이 사내아이의 자존심을 고려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그리 말한것은 잘못된 것이니 아이만을 나무랄수는 없다’ 고 하며 아이에게는 ‘네가 그리 행동한 심정을 아빠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고 무작정 선생님께 화를 낸것은 학생의 도리가 아니다.’ 라고 했더니 아이와 엄마 모두 이해를 하였던 것이다.

 

아이가 중학교에 다닐때도 소년은 또 아이의 여자 담임선생님을 만났던 적이 있었다. 당시 그선생님은 대학을 졸업한지 얼마 안되는 20대의 젊은 선생님이었는데 아이가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 안듣고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하여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아이엄마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그때 아이엄마는 아이의 행동이 창피하여 선생님 만나기를 꺼려했던 것이다. 그래서 소년이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보니 ‘아이 때문에 수업진행에 지장이 있고 선생님에 대한 태도도 문제가 있다’ 고 하여 소년은 아이가 학교생활에서 선생님 말씀을 안들을 때는 혼내주시라고 하며 자신은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아이를 사랑하고 이해한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녀는 교사의 권위에 대해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아이는 참 좋겠네요, 그렇게 이해해주는 아버지가 있어서요.’ 하는 것이었다. 그때 자기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는 학생을 이해할수 없는 젊은 여선생님의 권위의식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대부분 여선생님들로 이루어진 한국학교에서 남자아이들을 진정한 사내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관심이 매우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소년의 눈에 아들의 훌륭한 선생님들은 대부분 남자 선생님들이었다.

 

아이가 초딩 4학년때 담임선생님은 새로 전학을 온 아이가 당차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을 보고 대견하게 생각하며 아이의 장점을 최대한 키워주려 했었다. 한번은 수학경시대회를 앞두고 학교에서 몇 명의 학생들을 선발하여 지도하고 있었는데 전학온지 며칠 안되는 아이가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선생님은 아이의 자발적인 행동을 기특하게 생각하여 선뜻 참가할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학교대표를 선발하는 시험에서 아이가 선발되었고 시대회에 나가서 입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시험을 보는날에 그선생님이 직접 아이를 시험장까지 태워주셔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입상소식을 듣고 자신이 기뻐서 자신이 직접 아이엄마에게 축하전화까지 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년은 아이에게 선생님께 식사대접을 해드리고 싶다고 전하게 하여 같이 식사를 한적이 있었다. 소년보다도 10년정도 년배 이었던 그선생님은 소년이 근무하는 부대앞 식당에서 만나 곱창전골을 시켜 둘이서 한잔 하고는 돌아가실 때 어느 학부형에게 받은 고기를 반으로 나누어 한봉지를 소년에게 주시는 것이었다. 그때 소년은 자신의 학창시절 보지 못했던 스승의 참모습을 아이의 선생님에게서 보았던 것이다. 촌지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학부형들이 사례를 하려고 하면 액수는 얼마 안되지만 마음이 담긴 고기 몇근 등을 받아 나누었고,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여 좋은 성과가 있으면 자신이 먼저 기뻐하였던 것이다.

 

그후 아비를 따라 학교를 옮긴 아이는 또 한번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30대 였던 그선생님은 교장선생님께도 당당히 자기의 교육자적 소신을 말했을뿐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선생님의 위엄을 보임으로써 학생들이 알아서 선생님 말씀을 잘듣게 하였던 것이다.

한번은 아이가 팔을 다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선생님은 교육 목적으로 반학생들에게 분단별로 아이를 위문하도록 지시했던 것이었다. 하루는 아이의 병실에 반급우들이 찾아와 얘기를 편히 하라고 소년이 아내와 같이 복도에 나와 있었는데, 갑자기 병실에서 큰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소년이 가봤더니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병실에 오셨던 것이다. 학생들은 담임선생님이 병실에 들어오시니 모두가 큰소리로 ‘선생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놀랍게도 철없던 아이가 한팔을 기브스 한 채 다른 한팔로 의자를 들어다 놓고는 ‘선생님, 앉으세요’ 하는 것이었다. 부모한테는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던 녀석이 선생님께 예의를 지키는 것을 보고 소년은 자식의 의젓한 모습에 무척 뿌듯해 했던 것이다. 그때 소년은 선생님의 권위는 학생들을 올바르게 지도하여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씀에 스스로 잘 따르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선생님은 일체 촌지를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고 모든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자신들이 한만큼 상과 벌을 주어 모든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게 했던 것이었다.

 

아이가 고교생때의 일이었다. 아들이 외고에 입학했으나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못해 소년은 집근처의 일반고교로 전학을 시켰다. 그학교는 소년이 다녔던 학교여서 한때 소년의 스승이기도 했던 당시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려 카리스마가 있는 남자선생님이 담임으로 있는 반으로 편성해주도록 부탁하였다. 전학후 아이엄마가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와서는 무척 실망스런 표정으로 선생님이 조금 무성의 한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후 소년이 그선생님을 만나보니 소신이 있는 훌륭한 선생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교장선생님의 부탁으로 자신의 반에 편성된 아이에 대해 처음에는 오해를 갖고 아이엄마를 대했는데, 후에 소년이 가서 아이의 전학이유가 대학진학에 필요한 내신성적을 잘받기 위한것이 아니라 전인교육을 바라는 마음에서 전학시킨 것을 알고서는 오해가 풀렸던 것이다. 그후 몇 달뒤 아이에게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보니 아이는 학교에서 자기를 가장 괴롭히는 사람이 담임선생님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를 교실 맨 앞에 앉게 하여 자신의 수업시간에 잠시도 한눈을 팔지 못하도록 혼내주며 말을 안들으면 체벌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그말을 듣고 소년은 담임선생님이 아이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주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학년이 바뀔 때 아이는 담임선생님이 자기를 인정해주는 것 같다고 하였다. 한번은 한 학과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태도가 불량한 소년의 아이를 보고는 문제가 있다고 담임선생님에게 얘기했을때 그가 ‘그렇게 문제가 있는 아이는 아니다’ 라고 말하는것을 친구에게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아이는 자기를 보면 지적만 했던 그선생님이 다른 선생님에게는 왜 자기를 두둔하는 말을 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소년이 아이에게 알려 주었다. 소신있는 남자어른들이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은 그런 것이라고.

 

그러다 아이가 고교를 마칠 무렵 수능을 치렀을때 학업을 멀리한 댓가로 대부분의 성적이 저조한 와중에도 고2때 담임선생님이 담당했던 국어는 1등급이 나왔던 것이다. 아이는 그때까지도 자신이 그과목은 열심히 해서 나왔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아이에게 부모로서 해줄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는 사람은 담임선생님이었기에 아이의 고2때 담임선생님께 고3때도 아이를 맡아주도록 부탁했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독학으로 학창시절을 보내 선생님의 역할에 대해 별로 중요함을 몰랐던 소년은 아이의 선생님들을 보며 선생님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출처 : 장훈고일사회
글쓴이 : 신 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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