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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umanities/22_한국역사

서울 초고층 꼭대기에 방공포 진지… '빌딩숲 GOP'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3. 18.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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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초고층 꼭대기에 방공포 진지… '빌딩숲 GOP'

"옥상 벗어나면 탈영, 12주간 땅 못밟아"

이위재 기자 wjlee@chosun.com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초고층 빌딩 옥상. 최고층 식당가 옆 비상구 문을 열고 계단을 따라 3층 더 걸어 올라가니 옥상으로 향하는 문이 나왔다. 문 바로 옆의 인식장치에 전자출입증을 대자 문이 열렸고 빌딩 기계실 뒤쪽에 철조망으로 싸인 작은 '1층 건물'이 나왔다.

저공 침투하는 적기들로부터 주요 시설물을 방호하는 '빌딩 GOP(General Outpost·일반 초소)'다. 서울 시내 고층 빌딩 옥상에는 이 같은 '빌딩 GOP'가 40여개 이상이나 있다. GOP마다 20㎜ 발칸포와 휴대용 미사일 미스트랄이 24시간 대기 중이다.

여의도에 있는 방공단 8326부대 'D진지'에는 수도방위사령부 10방공(防空)단 소속 군인 9명이 상주한다. 이들은 빌딩 주변 상공에 예고되지 않은 비행체가 뜨면 즉각 공격해 격추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다.

 

▲ 서울 여의도의 한 초고층 빌딩 옥상에 있는‘빌딩 GOP’에서 병사들이 야간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이들은‘빌딩 GOP’에 근무하는 12주 동안 외출·외박·면회가 금지된다./김상훈 객원기자 kishkim@chosun.com

 

이날 오후 3시30분. "대공 비상"이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막사에 있던 병사 4명이 지붕 위로 뛰어올라갔다. 사수(射手)가 발칸포에 앉아 본부에서 내리는 좌표(아현동 방향)를 향해 포신을 돌렸고, 탄약수는 탄약고에서 빠른 동작으로 포탄을 빼냈다. '모의 훈련'이라 실제 사격을 하진 않았지만 정식 교전 상황에선 분당 최대 3000발이 비행체를 향해 날아간다. 사정거리는 2.2㎞ 남짓. 이 같은 상황 발동에서 사격을 마치기까지는 1분 안팎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빌딩 GOP' 병사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하루 2번씩 '즉각 사격 훈련'을 1년 내내 반복한다.

'D진지'는 1985년 빌딩 건립과 함께 생겼다. 막사는 82㎡(25평)짜리로 이 안에 상황실 겸 식당, 소대장 숙소, 세면실, 사병 내무반이 오밀조밀 자리잡고 있다.

바로 눈 앞에 도심 풍경이 밤낮으로 비치지만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바로 아래층으로도 마음대로 내려갈 수 없다. '탈영'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부대 생활은 82㎡ 넓이에 갇힌 채 이뤄진다.

사실상 '수인(囚人)'에 가까운 군 생활이라 본부에서는 '빌딩 GOP' 병사들을 12주마다 교대해준다. 중대장 서광일(31) 대위는 "진지에 있는 동안은 외출이나 외박, 면회도 금지된다"며 "정신적 스트레스가 커질 가능성이 있어 12주마다 교대해 준다"고 말했다.

 

▲ ‘빌딩 GOP’에서 근무하는 병사가 20㎜ 발칸포를 점검하고 있다./김상훈 객원기자

 

'빌딩 GOP'는 유격이나 혹한기 훈련 등이 없는 대신 전투 체육이나 구보 같은 야외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다. TV 시청과 독서만이 유일한 소일거리다. 김효권(22) 일병은 "책 읽는 걸 좋아하지 않으면 부대 생활이 괴롭다"고 전했다.

병사들은 12주 근무가 끝나면 지상 부대로 복귀, 6주 정도 교육을 받고 다시 빌딩이나 산악 방공 진지로 투입된다. 인원 교대는 인적이 드문 새벽에 이뤄진다.

보통 '빌딩 GOP'의 경우, 매일 새벽 밥차로 식재료를 공급하고, 부대원들이 자체적으로 조리를 해 식사를 해결한다. 하지만 'D진지'는 빌딩주가 "화재 우려가 있다"며 조리시설 설치를 막아 부대 설립 이후 줄곧 지하 1층 직원 식당에서 돈을 주고 밥과 반찬을 타와 부대 안에서 먹는다. 현재 한 끼에 드는 비용은 1인당 3500원. 전 군에서 가장 '비싼 밥'이다.

매일 '사식(私食)'을 먹는다는 것 말고는 '빌딩 GOP' 근무의 장점은 별로 없다. 여름엔 땡볕이 바로 머리 위에서 내리쬐고, 겨울엔 칼바람이 휘몰아친다. 지난달에는 초속 20m 강풍이 불면서 간이 초소의 용접이 떨어져 나가 초소가 빌딩 아래로 고꾸라지는 것을 근무자들이 겨우겨우 붙잡아 위기를 넘긴 일도 있다.

봄엔 황사(黃砂)를 코앞에서 들이켜고 한강 인근 공원에서 불꽃놀이라도 하면 바로 옆에서 펑펑 터져 아찔하다고 한다. 가끔 번개가 막사 지붕 위를 강타하기 때문에 조마조마할 때도 많다.

10방공단장 전석근 대령은 "도심 한가운데서 갑갑한 생활을 견디는 젊은 병사들이 불편한 점은 없는지 살피기 위해 자주 초소 순시를 한다"며 "진지마다 간부들이 전담 결연(結緣)을 통해 병사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 63빌딩 방공포대에서 병사들이 포를 점검하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입력 : 2009.03.18 05:18 / 수정 : 2009.03.1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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