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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그리운 세상/문화일보 [2010-07-08]

忍齋 黃薔 李相遠 2010. 7. 19.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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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그리운 세상 

기사 게재 일자 : 2010-07-08 13:57
은미희 소설가

두고 온 것들이 너무나 그립다. 일본으로 떠나온 지 이제 겨우 일주일 됐을 뿐인데, 한 십년은 되는 것 같다. 어쨌거나 한달 동안 이것저것 취재도 하고 가팔랐던 마음도 가라앉힐 겸 들어왔는데 내 몸이 벌써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맵디매운 김치 생각에 입맛을 잃고, 몸은 어딘지 무겁고 머리도 아프다. 그저 어떻게든 빨리 돌아가고픈 생각밖에 없다.

떠나오기 전에 야심차게 품었던 계획 같은 것은 그리움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다. 그동안 한 곳에서 붙박이로 살지 못했으니 어디서 살든 상관없고 관계없을 줄 알았다. 나에게 그리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내 몸이 그런 대로 순응하고 적응해줄 줄 알았다. 한데 이 무슨 반란이란 말인가. 친했던 친구들과의 수다도 그립고, 길을 가다 피곤하면 불쑥 커피숍에 들어가 혼자 마시던 커피도 그립고, 모국어도 그립다. 어디 그리운 것이 좋았던 기억들뿐일까. 나를 미워하던 사람도 그립고, 나를 힘들게 만들던 가족도 그립고, 나를 화나게 몰아붙이던 일들도 그립다.

분명, 병까지는 아니어도 그 목전에 이른 것 같다. 향수병. 일 앞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엄혹한 현실 앞에서 이 무슨 사치스럽고 치기적인 감상이냐고 질책한다면 할 말이 없고 부끄럽다. 하지만 나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실 앞에서 길을 잃었었다. 하여 무언가 길을 찾자는 심정으로 떠나왔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를 붙잡거나 주저앉히게 만드는 것들은 없었다. 한데 전화를 걸어온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현해탄을 건너온 그 음성은 창문 밖 햇살만큼이나 밝았다.

“한 달씩이나 외유를 하다니. 고독한 자유인이에요? 아니면 아무데도 매인 데 없는 외로운 방랑자예요?” 고독하고 외로운 방랑자라니? 자유로워 행복하냐고 지인은 묻지 않았다. 나는 그 말에 이렇게 답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고독하고 외로워 슬픈 방랑자예요.”

나의 이 몸살은 그 말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기실 나는 자유로워 행복한 게 아니었다. 아무도 나를 붙잡아주지 않고 매인 데가 없어 더 외로웠다. 그 지인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나는 한국에 두고 온 것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아픈 동생은 어찌 지내고 있으며, 지병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는 어떻고, 늘 가족들을 힘들게 만들던 오빠 내외는 무슨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니 그 모든 것들이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이 텔레비전에서 한국의 드라마를 방영해 주고, 짤막하게나마 뉴스를 통해 내 떠나온 곳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국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한때 안 듣고 안 보고 하는 것이 무언가에 치여 상처받았던 내 마음을 진정시켜 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돌아간다는 한시적 자기유폐였기에 가능했었다. 한달도 안 돼 이럴진대 정말, 탯줄을 묻은 나라를 떠나 사는 사람들은 어찌 지낼까? 아니, 떠나는 그 심정들은 오죽했을까? 물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막막하고 두렵고 외로웠을 것이다. 인간에게도 귀소본능이라는 것이 있는데 반대로 역행하는 삶은 더 팍팍하고 힘들 것이다.

여하튼 한국에서 지지고 볶고 살 때는 몰랐다. 그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미웠고, 나를 위축되게 만드는 세상이 싫었다. 그것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내 소원이었다. 아등바등 내 능력에 비해 더 많은 것을 갈구하는 내 욕망이 상처받는 것도 싫었다. 한데 떠나와 보니 그 모든 것들이 그립다. 삶은 그런 것인 줄 모른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은 하찮게 보이고,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은 찬란하게 보이는 그런 어리석음의 연속인지 모른다. 눈을 멀게 만드는 그 장난에 속지 말 일이다.

무엇보다 소중하고 귀중한 것은 내가 가진 것들이고, 내 주변의 것들임을 알아챈다면 삶은 그 나름대로 소박하지만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 잘되었으면 좋겠다. 고백하건대, 나의 꿈은 한곳에 오롯이 붙박여 사는 정주민이 되는 것이다. 지역이나 사람한테서나 말이다.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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