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11_小說家殷美姬

책읽기- 무크타르 마이의『무크타르 마이의 고백』

忍齋 黃薔 李相遠 2010. 7. 1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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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무크타르 마이의『무크타르 마이의 고백』

 

소설가 은미희 

 

 “나는 여성으로서 나 자신을 존중하고, 존재하는 법을 배웠다.” 이 존재의 선언은 파키스탄 출신의 여성인권운동가 무크타르 마이가 『무크타르 마이의 고백』이라는 자신의 수기 속에 남긴 말이다. 이 한 줄의 글귀를 보고 나는 그저 또 한명의 페미니스트가 세상에 내놓은 편 가르기 선언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이 책을 대했을 때의 내 느낌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갈수록 성적 정체성과 역할이 모호해지는 시대에 새삼스럽게 여성, 남성, 찾는 일이 조금은 구태의연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너무나 당연한 말을 그렇듯 비장한 어조로 표현하는 그녀의 태도에 대해서도 한편으로 심술이 났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모든 사물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 가치를 부여받지 않던가. 여성으로서 자신을 자각하는 것보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 세상을 좀 더 이악스럽고 엽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비판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수기를 읽고 가슴 한 쪽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인식이 소중한 것임을 알았다.

 

 그녀에게 여성인권 운동가라는 타이틀은 너무 거창하고, 어울리지 않다. 그녀는 단지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 뿐이다. 평범한 진리가 철저히 무시되는 사회가 있다. 특히 인간의 문제와 관련되었을 때, 그것은 존재자체를 위협한다. 무크타르 마이는 그 암흑과도 같은 세상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자라났다.

 

그곳에서 여자로 산다는 일은 죄를 짓는 것과 다름없다. 죄도 아주 큰 죄인 것이다. 가난한 노동계급의 맏딸인 무크타르 마이가 자신의 수기를 통해 나에게 일러준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란, 삶의 기술이 아니라, 삶 자체가 소중한, 생존의 가치였다.

 

그동안 나는 늘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더 가지지 못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해 안달했었고, 욕심껏 채워지지 않은 세상 것 때문에 번번이 좌절하고, 절망 했었다. 이 어리석은 욕망에 갇혀 나는 바닥으로 바닥으로 주저앉았고, 심지어는 사는 일에 대한 회의까지 생겨났다.

 

 무크타르마이는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준 것은 뜻밖에도 솟구치는 분노였다고 토로했다. 동생대신 남자들에게 집단으로 윤간을 당하는 죄 값을 치룬 그녀는 유린당한 몸으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후두드 법이 있던 파키스탄 사회에서 몸을 더럽힌 여자는 역설적이게도 죽어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죽음보다 삶을 택함으로써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에게 복수한 것이다. 여성을 부속물로 여기는 사회로부터, 야만으로부터, 집단광기로부터 무크타르 마이를 지켜준 것은 그 누가 아닌 자신이었던 것이다. 삶이 찬란하지 않아도 되었다. 살아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이미 존재의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 여성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무크타르 마이를 절망으로부터 구해준 것이 분노였다면, 나를 암흑으로부터 구해준 것은 『무크타르 마이의 고백』이었다. 나는 그녀의 절망을 통해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암흑의 세상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얼마나 감사해야하는지. 더불어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더 나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무크타르 마이. 그녀는 참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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