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체성 찾는 추석이 되길
추석이 낼 모레다. 이쯤 되면 모두가 다 부산스러울 시기이다. 그간 소원했던 사람들을 찾아 인사 다니기 바쁘고, 주부는 추석음식 장만에 한창 손이 바쁠 때다. 틈을 내 벌초를 하고, 묵었던 청소를 하기도 한다. 일이 바쁘고 몸이 고단해도, 그리고, 여기저기 빠트릴 수 없는 인사치레에 가계살림은 빠듯해도, 한가위 명절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꼬박 반나절이 걸리는 귀향길도 부담스럽기만 하다. 달은 만월인데, 마음은 만월의 무게만큼 무거운 것이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 명절증후군이라는 달갑지 않은 병까지 수반하며 우리를 짓누른다.
하지만 내 유년의 기억 속에 갈무리 돼있는 추석은 설레기만 했다. 방앗간에 가 줄을 서 있다가 쌀을 빻아오고 밤늦도록 송편을 빚어 솥에 걸쳐놓은 채반에 솔잎을 얹고 그 위에 방금 빚은 송편을 올려 쪄내면 앙증맞은 반월의 떡이 우리를 즐겁게 만들었다. 여자아이들이 많은 집에서는 자신이 빚은 송편이 서로 예쁘다고 시샘을 냈고, 그 송편으로 미래에 맞게 될 신랑의 외모를 점치기도 했다. 먼저 송편을 쪄낸 옆집에서 맛이나 보라며 가져올라치면 어김없이 우리 집 송편과 비교하곤 했다. 어떤 집은 콩을 넣었고, 어떤 집은 깨소금을 넣었으며 어떤 집은 달콤한 설탕을 넣기도 했다.
어머니는 이웃의 마음 씀에 고마워하며 빈 접시를 보내는 법이 없었다. 달걀 한 꾸러미라도, 설탕 한 봉지라도, 아니면 종합선물 세트라도 꼭 들려 보내곤 했다. 그 자그마한 정성에 이웃끼리의 서운한 감정이 풀리고, 새로운 유대감이 생겨났다.
하지만 요즘 들어 송편을 빚는 집이 찾아보기 힘들다. 시장에 가면 원하는 만큼 살 수 있고, 차례 상에 올려놓을 부침개역시 종류별로 구입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일까. 이국의 과일에 귀한 생선들까지, 먹을 것도 더 푸짐하고 다양해졌다. 그러나 웬일인지 마음만은 옛날에 비해 더 허전하다.
내 어릴 때는 짚으로 엮은 달걀 꾸러미가 일반적인 선물이었다. 열 개를 한 줄로 묶은 달걀꾸러미는 부담스럽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을 나누어주거나 확인할 수 있는 대표 선물이었다. 어디 그뿐일까. 인공감미료가 대세였던 시절에 설탕은 비교적 고급에 속한 선물이었고, 소주나 청주 같은 술 한 병이면 어른들 선물로는 그만이었다. 부족했지만 마음만은 모두가 여유로웠고 넉넉했다.
또 어린 아이들이 추석을 기다리는 이유도 있었다. 설날과 추석 두 명절이면 빔이라 해서, 새로운 옷을 얻어 입었는데, 아이들은 그 빔 때문에 추석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달걀은 선물이 되지 못한다. 설탕역시 선물 목록에서 제외 된지 오래다. 대신 명장이 만들었다는 은제 함에 담긴 한과가 몇 십만을 넘고, 역시 명장이 만들었다는 나전칠기에 포장 된 송이버섯이 몇 백만 원씩 하면서 우리의 기를 죽여 놓는다. 그것도 모자라 사과박스 안에는 사과대신 돈 다발이 들려있고, 소주나 청주는 고급양주로 바뀌었으며, 아이들의 추석빔은 명품을 선호하는 풍토로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게다가 강강술래나, 소싸움 같은 추석의 고유한 놀이는 사라진지 오래다. 대신 놀이문화는 고스톱이 차지해버렸다. 어쨌든 좋다. 오랜만에 온 가족들이 모여 서로 얼굴 맞대고 패를 돌리면서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조상들께 차례도 지냈고 먹을 것도 푸짐하니 좋기만 하다. 선물이 뇌물로 변질되어버렸을지언정, 우리들 주변에는 아직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으려는 정겨운 이들이 많으므로 이것도 좋다. 모든 것이 그때보다는 넉넉하고, 여유로우니, 더 좋다. 하지만 왜 옛날이 그리울까. 달도 더 정다웠고, 덜덜거리는 완행버스와 완행열차도 애틋하다.
황금 같은 연휴에 들뜬 표정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하나도 부럽지 않은 이유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촌사람이라 그럴까. 그저 명분으로만 맞는 명절이 아니라, 우리를, 우리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그런 추석이 됐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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