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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폭염 속의 각오/문화일보 [2010-08-05]

忍齋 黃薔 李相遠 2010. 8. 9.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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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폭염 속의 각오
기사 게재 일자 : 2010-08-05 13:55

 

은미희 소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연히 인터뷰 중인 대선배를 보았다. 내용인즉 새 책에 대한 이야기인데, 한여름, 폭염의 위세도 그 선생님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꺾지 못했다. 그 선배는 내가 막 문명을 얻기 시작했을 때, 당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신 분이다. 그러면서 어떤 자세로 작가 생활을 해야 하는지,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자분자분 일러주신 분이셨다. 게다가 그 선배는 작가로서 내가 힘들어할 때 이런저런 말씀으로 나를 달래주신 분이기도 하다. 나는 그 선배에게 참 많은 위로를 받았고 격려를 받았다.

이제 일흔둘. 좀 천천히 지내실 만한데도 선배는 당신의 몸이 편한 것을 탐탁지않게 여기셨다. 하여, 젊은 작가들보다 더 부지런히 쓰고 책을 읽었다. 쓰는 일이 어찌 즐거울 수만 있을까. 나 역시 쓰는 일이 점점 힘에 부치고 고통스럽기만 한데, 선배는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왕성하게 글을 쓰신다. 대략 2년에 두세 권 가량을 세상에 내놓으셨으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책을 많이 낸 작가를 꼽으라면 아마도 그 선배가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고마운 스승으로서, 대선배로서, 간간이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했건만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게으름의 소치였고, 무심함의 결과였다. 한데 텔레비전 속의 그 선배는 못 뵌 사이 더 연로해지신 듯했다. 카랑카랑하던 음성은 어느 결에선가 발음이 뭉개졌고, 눈가도 허물어져 있었다. 그 변화가 가슴에 묵직하게 얹혔다. 늘 청년 같던 분이셨는데 정말,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는 모양이다. 그토록 열심히 소설만 쓰는 그 선배 역시 세월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그 선배는 삶에 있어서 글이 무엇이냐는 진행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하셨다.

“살아 있는 한 글을 쓰고, 글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겁니다.”

살아 있는 한 글을 쓰다니. 아니, 글을 쓰는 한 살아 있다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얼마나 많은데, 글을 쓰기 위해 살까. 그 선배는 젊었을 적에 남쪽 도시에서 중학생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쳤었다. 그런데 소설이 쓰고 싶어 과감히 사표를 내던지고 험난하디 험난한 전업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당장에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가난은 선배로 하여금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었으리라.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그 엄혹한 현실 앞에서 선배는 편하게 자신을 부려놓지 못했고, 그때마다 벼랑 위에 선 심정으로 글을 썼다고 했다. 그 위기의 순간들이 선배의 오늘을 있게 했을 것이다. 절망의 순간들이, 좌절의 순간들이 오늘의 선배를 있게 했을 것이다.

나 역시 살기 위해 글을 쓴 적이 있었다. 한데 글을 쓰기 위해 산 적이 있었던가? 그 물음에 명쾌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그만큼 절망하지 않았고, 그만큼 절박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리라. 글쓰기에 대한 고통을 이야기하면서도 나는 내 모든 것을 글에 걸지 않았다. 글이 나오지 않을 때면 온갖 합당한 이유를 끌어다대며 게을러지는 나를 정당화시켰고, 주변을 탓하느라 미처 나를 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나무라는 선배에게 순한 표정으로 내심을 숨긴 채 세상이 변했다고 속으로 대거리를 했다. 선배는 죽을 때까지 글을 쓰겠다고 하셨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살아 있는 한 글을 쓴다 하셨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선배는 이제 당신은 즐기면서 쓰시겠다고 했다. 작가가 쓰는 일을 즐기지 못하면 독자 역시 그 책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늘 죽을 것만 같다고 엄살을 부렸었다. 그런 내가 선배에게는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을까. 그분의 말씀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선배의 삶을, 선배의 자세를 나는 따라할 것이다. 나는 그 선배의 삶을 내 지표로 삼기로 했다.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선배를 통해서 달콤한 성공의 열매는 결코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지고 있는 패를 모두 걸고 전력질주해야만 겨우 얻을 수 있는 게 성공의 열매라는 사실을 선배의 삶을 통해 목도했다. 그러니 나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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