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11_小說家殷美姬

<푸른광장> 심인 광고/문화일보 [2010-09-02]

忍齋 黃薔 李相遠 2010. 9. 24. 02:15
반응형

VADOSE DOT NET

 

<푸른광장>

심인 광고

기사 게재 일자 : 2010-09-02 14:22
은미희 소설가

얼마 전 일본을 다녀왔다. 쓰고 있는 새 소설이 일본과 관련이 있는 까닭에 요즘 들어 자주 일본을 다녀오게 된다. 한데 그곳에서 만난 지인이 내게 물었다. 새로 구성될 내각의 인물로 지명된 사람들이 누구이며, 또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물음이었다. 느닷없는 그 질문에 적이 당황스러웠다. 사실대로 말하자니 무언가가 찜찜했고, 거짓으로 대답하자니 그 또한 마뜩찮았다.

그는 일본인이고, 어쩔 수 없이 의식 저 깊은 곳에는 우월감이 자리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대답을 잘 해야 했다. 왜냐하면, 내 모국은 한국이고, 내 뼈와 정신을 준 나라도 한국이며, 또 나를 묻을 곳도 한국이다. 무엇보다 나는 한국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정직함을 이유로 적나라하게 부끄러운 속내를 드러내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지인에게 말했다. 일본으로 오는 통에 어떻게 돼 가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 대답에 지인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웃 나라 한국에서 벌어지는 자그마한 일도 일본은 시시콜콜 보도했다. 심지어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가십거리마저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관심을 보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침 신문에는 한국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걸 그룹 '소녀시대’의 일본 공연에 관한 내용이 있었고,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일본은 더 이상 껄끄러운 나라가 아니라고 보도하고 있었다. 또 40% 정도의 일본 가정에서는 김치를 즐겨 먹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스시와 우동, 라면이 인기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대로 다른 나라에 전달되고 있다는 점에서 무언가 기분이 석연치 않았다. 꼭 내밀한 집안일을 들킨 것처럼 무안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하긴 그 지인이 한국의 총리 후보에게 관심을 보인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본은 지금 새 총리 선출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공약을 지키지 못하고 사퇴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재의 총리가 자리를 물려받았고, 다시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자칫하면 1년 사이 3명의 총리가 생기게 될 형편이다. 그것은 일본인 스스로도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경제마저 중국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시름이 더 깊어지고 있었다. 높은 엔화에 기업인들은 비명을 질러대고 정치권에서는 연일 경제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젊은 일본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주변국의 정세나 변화에 민감해지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성장해 가면서 정치와 경제, 문화가 혈관처럼 얽히고설키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주변의 변화를 미리 감지하고 적절히 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니 어찌 무심할 수 있을까. 그저 주변 상관하지 않고 홀로 스스로 잘하고, 엽렵하게 살면 좋겠지만, 어쩌랴. 이제 세상은 좋든 싫든 공생·공존해야 할 운명인 것을.

그러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정치인의 자세와 인품과 자격으로 옮아갔다. 정치인의 첫 번째 덕목으로 청렴과 신념과 철학을 우선 조건으로 꼽는 나에게 그 지인은 말했다. 너무 청렴한 것도 정치인에게 결격사유가 된다고. 다시 말해 너무 올곧아 대쪽 같으면 사람이 떠나게 되는데, 정치인에게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은 나를 다른 생각으로 이끌었다.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네?

정치라는 것은 본디 인간을 위함에 있으니 인간미가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상식선을 넘지만 않는다면야 옆 사람을 돌아보는 정도의 배려쯤은 인지상정(人之常情),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을 생각하며 애써 이해해 줄 만하다. 하지만 인간미가 있는 것 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하고는 분명 다를 터. 확실한 건 리더는 사리(事理)에 밝고 공정하며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에 그런 사람이 없을까? 심인(尋人) 광고라도 내야 하나? 하지만 언젠가는 주변국에서 우리를 부러워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VADOSE DOT NET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