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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품격있는 사회 / 문화일보 [2010-10-07]

忍齋 黃薔 李相遠 2010. 10. 1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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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품격있는 사회
기사 게재 일자 : 2010-10-07 13:41
은미희 / 소설가

국격을 높이자는 국가 홍보 캠페인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봤다. 국격을 높이자니. 어떻게 해야 나라의 격을 높일 수 있고, 또 왜 이 캠페인인가. 굳이 이런 동영상까지 만들어 계몽해야 할 정도로 국민의 의식에 문제가 있을까…. 그 생각에 심사가 복잡해졌다. 하긴 당장에 부끄럽고 민망하더라도 한번쯤은 그렇게라도 자신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품격 있는 사회. 말만 들어도 여유롭고 흐뭇하지 않은가.
 
체면과 체통을 중요시하고, 위아래 사람의 구별에 따라 예로써 대하며 인정이 많은 나라가 본디 대한민국이다. ‘나’보다는 ‘우리’가 먼저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인 것이다. 동방예의지국, 이 말은 동쪽의 해 뜨는 나라, 조선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잘살아 보자거나, 부자되세요라는 구호와 광고가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면서 우리는 너도나도 부자가 되고 잘살기 위해 ‘우리’를 버리고 ‘나’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타인의 수고로움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세상은 자신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도구로 바뀌어 버렸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나가 보면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뒷사람을 위해 자신이 사용한 흔적을 지우거나 정리하고 나오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 공중 시설물 또한 내 것처럼 아끼면 좋겠지만 그 또한 내 것이 아니므로 주의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옆 사람과의 대화는 물론, 휴대전화 통화 소리는 왜 또 그렇게 큰지….
 
며칠 전부터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지하철 안에서의 사건 또한 그렇다. 다리를 꼬고 앉은 10대 소녀를 할머니가 나무라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인데, 이 또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 아니겠는가. 국가 위기관리 차원에서 아이낳기를 장려하는 현실에서도 배부른 임신부들은 나이든 사람들이 무서워 노약자석에 앉지를 못한다. 그저 나이든 사람들은 아랫사람이 불손하다고 노엽고, 아랫사람은 그런 윗사람이 서운하기만 하다. 역지사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좋으련만 상대방을 생각하고 양보하는 순간, 자신이 손해 본다는 생각을 한다.
 
한데 꼭 이런 일만 있을까.
 
어느날 밤늦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침 수업이 끝난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우르르 버스에 올랐다. 다들 피곤에 절 대로 전 모습들이었다. 수다를 떠는 아이들로 차 안은 금세 시끌벅적했다. 바로 그때,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여학생의 손을 잡아끌고는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살짝 등이 굽은 할머니는 한눈에 보기에도 건강해 뵈지 않았다. 여학생은 놀란 표정으로 할머니에게 잡힌 팔을 빼려는데, 그 할머니가 우물우물 말했다.
 
“아이고. 이렇게 고생하는데, 앉아서 가야지. 우리 같은 노인네들이야 편하믄 뭐하겠어.”
 
그 소리에 나는 마음이 울컥해졌다. 어디 나뿐이었으랴. 할머니는 그렇게 자신을 쓸모없는 노인네라고 말씀하셨지만 모두는 알았다. 할머니의 수고와 노고가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고, 우리가 있으며, 내일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할머니가 살아온 지혜가 우리를 보다 더 현명한 사람으로 이끌어 줄 길라잡이라는 사실도. 하지만 할머니의 자리 양보에 그 여학생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두 손 저어 사양하며 끝내 서서 집으로 향했다. 그날 밤 그 버스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다들 훈훈했다. 그 할머니의 깊은 주름과 그 여학생의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버스 안에서 향기롭게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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