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광장> 인생의 보물창고 / 문화일보 [2011-03-03]
은미희 소설가
한국의 대중문화에 세계 젊은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한류’라는 바람으로 그들의 귀와 눈을 사로잡으면서 새로운 트렌드로 펴져가고 있는 것이다.
면적과 인구 대비를 생각해볼 때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만든 문화 산물들이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아가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 오늘 같은 일을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으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으니 오늘의 이 성과가 더욱 고마울 수밖에 없다.
한때 우리도 그런 적이 있었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잘사는 나라들을 동경해 그들의 문화를 무조건 따라할 때도 있었다. 또 그것이 마치 교양인의 잣대로 통용되던 시기도 있었다. 한데 지금은 그 모방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창조해내고 있으니, 우리 자신이 보기에도 참으로 대견하지 않은가.
실제로 내가 일본에 있을 때였다. 그곳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한국 드라마만도 여러 편이었고, 일본 내 오락 프로그램에서 내건 상품이 당시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던 ‘아이리스’ DVD였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걸 그룹들과 파워 넘치는 남자 아이돌 그룹들은 그들에게 환호의 대상이었다. 오히려 한국보다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연예인도 있었다.
타국에서 낯익은 얼굴과 눈에 익은 모국어를 보면서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했던가. 이는 연예계 종사자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투자, 적극적인 소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 한들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다면 그 콘텐츠는 생명력을 얻기 어려울 터. 그런 점에서 대중으로 이뤄진 문화 소비자 또한 강력한 문화 생산자인 셈이다.
어디 이게 대중문화뿐일까. 개인적으로 문화에 급수를 매기는 일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어찌됐든 다양한 부문에 걸쳐 우리의 문화와 예술인들에게 세계인이 주목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가슴 뻐근한 자긍심을 지니게 만든다. 그런데 이처럼 대중문화에 있어서는 새로운 부흥기를 만났으면서도 유독 문학 부문에 있어서만큼은 탄력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긴 문학이 외면받는다고 전체를 싸잡아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한 해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35%나 된다는 뉴스는 좀 아쉬운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불과 2, 3년 전만 해도 지하철 안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책보다는 갖가지 영상을 통해 무료한 시간들을 달래는 것이다. 그걸 겨냥한 전자책이 나와 있긴 하지만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어릴 적 우리 집에는 하루라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선생의 말씀이 족자로 걸려 있었다. 오래돼 군데군데 누렇게 얼룩이 지고 모서리가 해질 정도로 낡아 있었지만 그 족자는 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청년기에 이를 때까지 벽 한쪽에 걸려 내 게으름을 나무라고 책읽기를 독려했다. 학교에서도 독후감을 숙제로 내주었고, 독서록은 아이들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통과의례처럼 어떤 책은 그 시기의 아이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으로 자리하기도 했다.
책을 읽지 않는 성인들도 자녀들에게만큼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책하고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과도한 업무와 강도 높은 노동에 한가롭게 책을 들 여유가 없다는 변명에 수긍은 하지만 그럴수록 팍팍한 심사를 달래기 위해서 책 속의 세상으로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책 속에는 무한한 세계가 펼쳐져 있지 않던가. 책이 주는 선물은 참으로 다양하다. 크고 작은 지식에서부터 인생의 지혜까지. 누구도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것들을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보물창고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바라건대 다들 그 보물창고를 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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