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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꼴찌에게도 애정을 / 문화일보 [2011-09-01]

忍齋 黃薔 李相遠 2011. 9. 2.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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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희/소설가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여름이었다. 아직 한낮 따가운 열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아침저녁 바람에서는 가을 기운이 느껴진다. 오늘이 9월 첫날이니 일주일 뒤면 밤에 기온이 떨어져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다. 절기상으로도 가을이다. 처서가 지나고 백로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바람결에 찬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볕살이 싫었는데 벌써 바람결에 선득한 게 느껴지니 조상들의 지혜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하긴 농경사회에서 천기를 모르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되니, 천기를 읽는 것은 곧 삶과 죽음을 가르는 생존의 필수 지혜였다.

 

시기를 읽고 때를 아는 지혜가 꼭 농사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사람의 삶도 그때그때 때에 맞춰 경영하고 운용해 나가야만 나중에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자식 교육에 있어서 학문은 기본이요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소한 지혜와 덕목들을 가르치고 일러줬다. 자식들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남자아이에게는 육갑 짚는 법과 책력을 읽고 천기를 헤아리는 법을 가르치고 여자아이들에게는 내훈을 읽게 하거나 바느질을 가르쳤다. 조선은 사농공상, 선비를 우선으로 치는 선비의 나라였던 터라 학문 또한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덕목이었다. 있는 집에서는 독선생을 집안에 두고 아이들을 가르쳤고, 그렇지 않으면 서당과 서원에 보내 장차 큰일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격려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부모들이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가고 출세해 안정된 삶을 꾸려가기를 원하듯 선조들도 학문을 통해 인격을 수양하고 과거 급제를 통해 가문을 빛내주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통에도 우리 선조들은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지혜들을 일러주고 교육을 시켰다. 한데 지금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아이들은 오로지 공부에만 내몰리면서 다른 것은 전혀 배우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서는 시험점수를 잘 받기 위해 핏발 선 눈으로 교과서와 참고서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작 삶의 문제에 부닥치면 아이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지혜와 결단력이 없다. 그저 두려운 마음으로 우왕좌왕하면서 부모가 해결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긴 당장에 성적순대로 줄을 세우는 현실 앞에서 좀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며 차분하고도 여유 있게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사실 버거운 일일지 모른다.

 

한 친구의 딸이 있다. 그 아이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방학을 맞아 잠시 집에서 시간을 보낸 모양이다. 그런데 예전 같지 않게 아이가 풀이 죽어 있다고 했다. 심지어 학교에 대한 두려움까지 보이면서 방학 내내 울면서 지낸 모양이다. 이유인 즉슨 예전보다 성적이 떨어진 모양인데, 그런 연유로 선생님이 저한테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아이는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학교생활마저 재미가 없다고 했다. 친구는 그런 아이한테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고 일러주었지만 아이는 막무가내로 거부하더란다. 귀에 옹이가 박이도록 공부하라는 주변의 말에 아이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돼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공부만 강요받다보니 다른 것은 할 줄 모르는 바보 아닌 바보가 돼버린 것이다. 그러니 친구는 이 일을 어쩌면 좋을지 한탄했다. 공부만 아는 바보. 공부만 잘하는 바보, 공부도 못하는 바보. 왜 우리는 아이들을 다른 것은 할 줄 모르는 바보로 키우는 것일까.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는 그랬다. 생활을 보다 편리하고 이롭게 하지 못한 채 지식 그 자체로만 추구되는 교육은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저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한다. 인격 수양과는 거리가 멀고 생활의 지혜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그러니 정말 이제 어떡할까. 선조들처럼 인격 수양을 위해 학문을 하고 예의범절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들을 일러주는 그런 교육을 할 수는 없을까? 공부는 못하지만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을 잘 살아가는 엽렵한 아이로 키울 것인가, 아니면 바보로 키울 것인가. 선택은 부모들의 몫이다.



Samuel Sangwon Lee | Create Your Ba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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